
FIFA 세계랭킹을 보더라도 1위인 스페인과 14위인 칠레, 15위인 네덜란드의 순위를 모두 더해도 호주의 순위인 62위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세 팀이 티켓 두장을 놓고 치열한 승부를 벌이는 가운데 승점 자판기가 되는 호주는 별책부록과 같은 처지였다.
호주 역시 이번 월드컵 보다는 내년 1월, 자국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듯했다. 지난 2006년부터 아시아 축구연맹(AFC)에 가입한 호주는 2007년 처음 나선 아시안컵에서 8강에 오른데 이어, 2011년 대회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두 번 모두 일본에게 패해 탈락했다.
AFC 가입 전부터 아시아 축구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예상을 가능케했던 호주는 내년에 열리는 아시안컵에서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첫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월드컵보다는 아시안컵에 중점을 둔다는 평가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호주가 보여준 경기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호주는 지난 14일, 칠레와의 첫 경기에서 초반 어설픈 모습을 보이며 연달아 두 골을 내주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전열을 가다듬은 후에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전반 35분 팀 케이힐의 만회골로 따라붙은 호주는 경기가 끝날때까지 칠레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비록 후반 추가시간에 장 보세쥬르에게 한 골을 더 내주며 1-3으로 패했지만 호주가 보여준 경기력은 피파 랭킹에서 50계단 가까이 차이나는 팀 간의 수준 차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19일 펼쳐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는 더욱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다. 결과적으로 호주는 2-3으로 패하며 32개 팀 중 가장 먼저 귀국행 짐을 싸야 하는 팀으로 결정이 났다. 그러나 디팬딩 챔피언 스페인을 5-1로 격침시켰던 네덜란드는 경기 내내 호주의 공세에 쩔쩔매야 했다. 호주로서는 네덜란드를 잡을수도 있었던 경기였다.
호주는 전반 20분, 아르옌 로벤의 환상적인 개인기에 당하며 먼저 선제골을 내줬다. 그러나 실점 후 이어진 공격에서 케이힐이 놀라운 발리슛으로 엄청난 동점골을 뽑아내며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이후 경기 흐름은 호주가 주도했다. 전반 30분 메튜 레키가 페널티박스 오른쪽에서 낮게 깔아준 패스를 바로 슈팅으로 연결한 마크 브레시아노의 찬스나, 2분 뒤 세트피스 상황에서 매튜 스피라노비치가 골 에어리어 정면에서 마주했던 상황은 득점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이 두 번의 찬스 중 한 번만이라도 호주가 침착하게 마무리를 지었다면 경기의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호주는 이러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후반 9분, 기어이 역전에 성공했다. 교체로 투입된 올리버 보자니치가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올린 크로스가 네덜란드의 수비수 대릴 얀마트의 손에 맞으며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이다. 마일 제디낙이 침착하게 이 페널티킥을 골로 연결하며 호주는 네덜란드를 앞서나갔다.
그러나 전통의 강호 네덜란드는 로빈 반 페르시의 동점골과 멤피스 데파이의 역전골로 승부를 뒤집었다.
호주에게는 그 이전에도 찬스가 있었다. 2-2 동점이던 후반 22분, 후방에서 공을 돌리던 네덜란드의 패스를 매트 맥카이가 가로채 토미 오어에게 연결했고, 오어는 골키퍼와 수비수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사이 반대편에 있던 레키를 향해 크로스를 올려줬다. 그러나 머리나 발을 갖다대서 방향만 맞추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상황에서 레키가 가슴으로 방향을 바꾼 슈팅은 골키퍼 야스퍼 실리센의 정면을 향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히려 이어진 상황에서 데파이의 중거리 슛을 허용했다. 데파이의 골 장면에서는 매튜 라이언 골키퍼의 방어가 다소 아쉬웠다. 그러나 라이언 역시 이 경기에서 로벤을 비롯해 데용 등의 슈팅을 선방해내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결국 승부를 뒤집지 못하고 2연패를 당하며 16강행이 좌절됐지만 호주는 '패배의 품격'을 보여주며 기존의 한국·일본과 중동으로 대표되던 아시아 축구의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