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김태혁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두 달 전 세월호 참사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자 이를 즉각 수리했던 정홍원 국무총리를 유임시키기로 했다.
안대희·문창극 연쇄낙마에 더이상 인사청문회를 통과할만한 새 총리후보를 내세울 수 없다는 스스로의 ‘인사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한국 헌정사는 물론, 세계 정치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황당 결정이다.
이에대해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시급히 추진할 국정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문제로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큰 상황”이라며 “박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정홍원 총리의 사의를 반려하고 사명감을 갖고 계속 헌신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윤수석은 “앞으로 청문회를 통해 새 내각이 구성되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 총리와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가 함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비롯한 국가개조를 강력히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수석은 “그동안의 인사시스템 보강을 위해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고 인사비서관과 인사혁신비서관을 두기로 했다”며 “인사수석이 인재발굴, 관리를 총괄하며 인사위원회에서 실무간사를 맡게 될 것”이라며, 종전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위원장을 맡았던 인사시스템을 변경키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대통령 인사에 대한 국민적 실망
정 총리 유임 결정은 새 총리를 찾아 세월호 참사때 드러난 ‘관피아 폐단’ 등을 싹쓸이하겠다던 박 대통령의 호언을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것이어서, 세월호 유족 및 야당 등은 거센 반발을 하고 있다.
이는 동시에 총리 후보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국민적 실망과 반발을 심화시키는 등 일파만파의 파장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전날 박 대통령과의 원내대표단 회동때 정홍원 유임 방침을 전달받은 새누리당도 멋쩍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산적한 국정 현안의 추진을 위한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으로 이해한다”면서 “정부의 중단 없는 국정추진을 위해서 적극 협조해 나갈 것”이라고 짧게 당의 입장을 밝혔다.
조중동 역시 사설을 통해 한 목소리로 정 총리를 유임시킨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레임덕에 빠진 정권 말기를 보는 듯” “절제와 판단력을 상실” 등의 적나라한 표현까지 동원하며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조중동이 보수정권 초기에 ‘레임덕’까지 거론하면서 정권을 강력질타하고 나선 것은 초유의 일로, 박 대통령은 보수진영에서조차 차갑게 외면을 당하는 양상이다.
기억력 테스트하는 듯한 인사 단행
‘동아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정홍원 유임을 “국민의 상식과는 거리가 먼 결정”이라며 “국민의 눈높이가 달라진 것도 사실이지만 5000만 국민 가운데 총리감 하나 못 구한다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고 힐난했다.
사설은 더 나아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4개월 됐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나 민심은 레임덕에 빠진 정권 말기를 보는 듯하다”며 현상황을 ‘레임덕’으로 규정한 뒤, “총리 하나 뽑지 못하는 무기력 무소신 무책임의 ‘3무(無) 정권’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사설은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참극(慘劇)’을 지켜보면서 일각에서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실망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수그러들지 않았는데도 대통령은 마치 국민의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듯한 인사를 단행하고 말았다”는 탄식으로 글을 끝맺었다.
자사 주필 출신 문창극 낙마후 박 대통령과 날선 대립을 하고 있는 ‘중앙일보’도 사설 ‘흔들리는 대통령 … 국정의 위기’를 통해 정홍원 유임에 대해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대통령이 이렇게 비정상적인 일을 할 만큼 급한 사정이 있는지, 그런 사정이 다른 분야엔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그런 사정이 없다면 대통령은 무슨 심리로 이렇게 결정했는지, ‘식물총리’였다가 유임된 총리가 국정의 동력을 살려낼 수 있을지··· 의문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사설은 안대희-문창극 낙마의 '최종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음을 강조한 뒤, “대통령이 정 총리를 유임시킨 건 정치권과 사회에 대한 일종의 시위로 보여진다”며 정 총리 유임을 대통령의 오기로 해석한 뒤, ‘국가개조의 중요성, 정권의 새로운 기운, 원칙의 실천, 인재발탁 능력의 입증은 중요하다. 대통령이 이런 것들을 미뤄놓고 항변과 시위에 매달리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질타했다.
野, 박 대통령 대국민 사과 촉구
사설은 더 나아가 “이런 비정상적인 결정이 내려질 정도로 정권 핵심부는 중심을 잃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정치인 시절엔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다. 친박계가 공천 학살을 당하거나 자신이 커터칼 테러를 당해도 정치인 박근혜는 중심을 지켰다. 그런데 취임 이래 계속된 인사 참사와 세월호 사태에 충격을 받자 대통령은 절제와 판단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조선일보’도 사설을 통해 “정 총리를 유임시키기로 결정함으로써 대통령의 국가 개조 약속은 시작부터 허언(虛言)이 되고 말았다”며 “적폐 청산이나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도 모두 허사(虛事)가 되고, 결국엔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사설은 또한 “지난 60일 동안 가시방석에 앉아 떠날 준비를 해 왔던 정 총리가 마음을 다잡고 일을 한다고 한들 과연 국민의 믿음을 다시 끌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이번 결정으로 총리의 역할과 기능을 평가절하해버린 꼴이 됐기 때문‘이라고 탄식했다.
사설은 “청와대가 총리 교체를 비롯한 인사 쇄신을 통해 국정을 혁신하겠다는 약속을 내팽개치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아니다.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달 25일 개혁성과 청문회 통과 가능성을 기준으로 빨리 총리 후보를 지명하겠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유임 결정을 한 것을 보면 처음부터 새 후보를 찾을 의지가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며 “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정 총리를 유임시킬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순리”라며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책임지는 정부의 마지막 모습 기대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 역시 정 총리 유임에 대해 “매우 안타깝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둘까 매우 걱정을 많이 했는데 현실이 돼버렸다”고 개탄했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말하며 “세월호 피해자와 국민들께 이런 결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난감하다”고 탄식했다.
김의원은 “책임을 지는 일에도 고통이 따른다. 정홍원 총리의 사임은 정 총리의 인격이나 성실함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부가 보여준 세월 참사 부실대응의 총책임자로서 사퇴하였다. 그것이 세월 참사 유가족과 국민들의 정서였다”고 강조했다.
정의원은 이어 “인물을 고르고 검증을 하고 청문회를 통과시켜야 하는 청와대의 고충도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정 총리 유임은 커다란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인사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서 책임지고 떠나려했던 총리를 유임시키는 것은 책임회피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거듭 비판했다.
그는 나아가 “정 총리의 유임결정 이유에 대해 대통령께서 직접 밝혀주셔야 한다”며 “총리 유임이 이런 식의 깜짝 발표로는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고 박 대통령에게 직접 해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해선 “총리 인사와 관련해서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동안 인사문제를 놓고 치른 사회적 갈등의 비용은 누군가는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책임지는 정부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즉각 퇴진을 촉구했다.
정 총리의 사표 수리는 ‘국민과 약속’
새정치민주연합도 한목소리를 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새 총리 한 분 추천할 능력이 없는 무능한 정권이라는 것을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기홍 새정치연합 수석대변인은 “정 총리는 세월호 사태 책임을 지고 세월호 이후 우리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사퇴한 분이다. 이런 분을 유임시키는 것은 과연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이후 국민들이 바라는 근본변화를 이끌 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한다”고 개탄했다.
유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태 이후에 정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국민과 약속을 했는데, 그 사표를 반려한다는 것은 국민들과의 약속을 다시 한 번 저버리는 일”이라며 “박 대통령은 정 총리의 유임이라는 미봉책을 거두어들이고 새로운 총리,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세월호 이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총리를 지명할 것을 촉구한다”며 정총리 유임 철회를 촉구했다.
“朴대통령, 국민들에게 선전포고한 것”
정의당은 더욱 분개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경악 그 자체”라고 황당해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변인은 “오늘 박근혜 대통령의 정홍원 총리 유임 결정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전면 거부한 것이다. 결국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고 내각사퇴를 요구했던 국민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질타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국민들이 문창극이라는 어이없는 인사를 보고 ‘차라리 정홍원이 낫다’며 답답한 마음에 한숨 쉰 것을 대통령은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인가”라고 어이없어해 하면서 “왜 정홍원 총리가 물러나기로 했던 것인지 설마 박 대통령이 잊은 것은 아닐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총체적인 무능을 보여줬던 정부가 최소한의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정홍원 총리가 물러나기로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라고 일갈했다.
이 대변인은 “국민들이 바꾸라고 말했다면, 국민들이 만족할 때까지 바꾸는 것이 정권의 의무이다. 그런데 국민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것”이라며 “이제 대한민국의 총리는 없다. 결국 대통령에게 김기춘 실장만 있으면 만사형통인 나라이다. 도저히 이 정권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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