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지난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3단계 강등하며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이 됐다. 이에따라 전세계 경제전문가들이 이탈리아가 제2의 그리스가 될수도 있다는 우려감을 전하고 있다.
무디스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탈리아의 장기자금 조달 리스크가 증가했다”며 신용등급을 기존 ‘Aa2’에서 ‘A2’로 하향조정했다.
무디스는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적자 위기로 전반적인 금융환경이 악화됐다”며 “이에 따라 이탈리아와 같이 공공부채 수준이 높은 국가의 장기자금 조달 위험이 커졌다”고 등급 조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글로벌 경제전망이 밝지 않아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이 하락할 위험성도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이탈리아 정부의 공공부채를 삭감 목표를 이루는데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무디스는 이탈리아의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유지했다. 이에 따라 향후 3개월 내 추가 등급 강등의 가능성이 남게 됐다.
이와 관련 “이탈리아와 유로존의 경제적 위험성을 반영해 ‘부정적’ 등급을 유지했다”며 “불확실한 시장 여건과 투자심리 악화가 이탈리아의 국채시장 진입을 억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지난달 20일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도 이탈리아의 경제성장 전망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해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단기 국가신용등급을 ‘A-1+’에서 ‘A-1’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 이탈리아 정치권 추가긴축시행 놓고 갈등 지속
이탈리아는 그간 다른 남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이번 재정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되지 않았다. 유로지역내 산업 경쟁력과 금융부실, 유동성 부족, 해외자본의 갑작스러운 이탈 등에서 다른 남유럽 국가에 비해 비교적 유리한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에 이어 무디스까지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이탈리아 문제는 유로존 위기에 새로운 복병으로 떠올랐다.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5.3%로 양호한 편이지만, 공공부채 규모는 GDP 대비 118.2%인 1조9000억유로로 그리스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이탈리아는 올해 말까지 1113억유로 규모의 국채를 매각하거나 만기 연장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오는 14일 71억5000만유로의 국채만기가 도래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추가 긴축 시행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긴축 재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이탈리아가 노동과 서비스 시장 규제를 등을 풀어 잠재 성장률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같은 시도는 반대 세력에 막혀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S&P는 “이탈리아의 취약한 연정과 의회 내 정책분열 등이 대내외 거시경제 환경에 확고히 대응하는 정부 능력을 계속 제한할 것”이라며 추가 긴축책이 힘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이탈리아 정부가 내놓은 600억유로 절감도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탈리아가 재정을 유지할만한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탈리아공업총연합은, 내년 이탈리아 경제성장 전망을 기존의 1.3%에서 0.6%로 하향조정했다.
이탈리아 재무부도 올해 이탈리아의 성장률을 기존에 제시했던 1.1%에서 0.7%로, 내년엔 1.3%에서 0.6%로 낮춰잡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는 0.6%, 내년엔 0.3%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줄리오 트레몬티 이탈리아 재무장관은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 후 “이탈리아가 제로 성장을 하더라도 균형재정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 부실채권 매입과 은행자본 확충돼야
이탈리아의 신용등급 강등은 '그리스 위기의 전이'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이탈리아 등 주변국으로 전이될 경우 가뜩이나 신용경색 우려가 번지고 있는 유럽 은행권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유럽 주요 은행들이 유로존 내에서 경제규모 3위 국가인 이탈리아의 국채를 상당부분 소화하고 있는 만큼, 이번 신용등급 하향 등을 계기로 유럽 은행들이 위기에 몰리면 국내 증시에서 유럽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전세계 더블딥(이중침체) 우려와 유로존 채무위기가 부각됐던 지난 8월 이후 유럽계 자금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7조6000억원 이상 대거 이탈했다. 증시에서만 봐도 8월 급락장에서 8월 3조5600억원을 빼간 이후 9월에도 9700억원 이상이 유출됐다. 추가 자금 이탈시 가뜩이나 흔들리고 있는 증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증시 전문가들은 유럽계 자금이탈은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이탈리아의 신용등급 강등은 이미 예상됐던 악재인 만큼 이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0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먼저 이탈리아의 등급을 ‘A+’에서 ‘A’로 강등한 바 있고, 무디스 역시 지난 6월부터 지속적으로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경고하며 이탈리아에 대한 평가 작업을 계속해왔다. 예상치 못한 악재는 아니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번 무디스의 이탈리아 신용등급 하향조정이 지난달 S&P의 신용등급 강등 때만큼 큰 충격파를 불러오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이번달 내내 유로존 이슈와 관련해서는 험난한 길이 펼쳐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전문가들은 “현재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우려는 그리스 위기가 이탈리아, 스페인 등 주변 국가로 전염될 것이라는 우려, 국채 위기가 은행 위기로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번질 것에 대한 우려 이 세 가지”라며 “이 세 가지 전염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부실채권 매입과 은행의 자본 확충 등”이라고 진단했다.
동시에 “이탈리아 신용등급 강등 소식 자체만으로 유럽계 자금의 위기의식이 크게 짙어지는 등의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달 중순까지 예정된 각국 의회의 유럽재정안정기구(EFSF) 승인 이후 부실채권 매입과 은행 자본 확충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주요 20개국(G20) 회담에서 최종 확정이 되기 전까지는 ‘유럽 금융혼돈’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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