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최양수 기자] 글로벌 기업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이라로 불리는 애플 창립자이자 전 CEO인 스티브 잡스가 지난 5일 향년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애플은 “비전을 지닌 창의적 천재를 잃었다”며 “세계는 한 위대한 인간을 잃은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세계적인 IT업계의 성장에는 잡스의 아이디어가 작용됐던만큼 그의 부재를 인한 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 사망

가족 역시 별도 성명을 통해 “그는 가족 곁에서 평화롭게 숨졌다. 여러분의 추모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또한 “추모 기간 우리 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주길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잡스는 2004년 췌장암에 걸린 뒤 긴 투병이 이어졌다. 그는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2005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강연에서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나름의 생각과 결론을 말했다. 이 강연은 프레젠테이션의 귀재인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후 2009년에는 간이식 수술까지 받았다. 투병 기간에는 장기 병가도 수차례 냈으며 올해초에는 3번째로 병가를 내고 애플의 일상적 경영을 당시 팀 쿡 최고운영책임자에게 맡겨 왔다. 지난 8월 24일 애플 CEO직의 자리를 팀 쿡에게 넘기고 경영에서 물러난 바 있다. 그 후 그는 건강악화로 두 달만에 사망했다.
◇드라마 같은 인생 역정
오랜 투병 생활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 스티븐 잡스의 생은 드라마와 같다고 표현한다.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직후 바로 입양됐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자라며 컴퓨터 기술를 배웠고, 1969년에는 애플을 공동 창업한 스티브 워즈니악과 가까워졌다. 오레곤주에 위치한 리드 대학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댈 능력이 없어 한 학기만을 다니고 대학을 자퇴한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차고에 컴퓨터 가게를 차려 판매에 나섰고 이것이 애플사의 시작이다. 1976년 애플 창업했으며 창업 4년만인 1980년 주식 상장을 하게 됐다. 25세의 나이에 20억달러 규모의 자산가가 됐다.
그러나 1985년 경영진과의 마찰로 한때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1986년 애니메이션 업체인 ‘픽사(Pixar)’를 인수하고, 컴퓨터 업체인 '넥스트(NeXT)'를 차린다. 1993년에는 하드웨어 제조를 접고 소프트웨어 개발만 하는 등 규모를 축소했다.
1995년 픽사와 디즈니가 손잡고 제작한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Toy story)’가 대박을 터뜨리며 다시 부활을 했다.
그리고 잡스 퇴출 이후 부진의 늪을 헤매던 애플이 경영난에 처했을 때 다시 복귀해 6개월만에 회사를 흑자로 바꿔놓는다. 1998년부터 아이맥과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애플을 세계 최고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끌어 올렸다. 그가 개발한 제품들은 글로벌 IT 업계에 파란을 일으킴과 동시에 세계인의 생활을 한 단계 진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잡스 사후 IT 업계 전망
스티브 잡스의 사망으로 글로벌 IT업계에 폭풍이 불고 있다. 글로벌 IT업계에 미친 잡스의 영향이 컸던 만큼 '잡스의 공백'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당분간 글로벌 IT업계에서는 잡스가 내놓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처럼 혁신적인 제품이 출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애플의 성장에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그의 독특한 상상력이 있었던 만큼 후유증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내 IT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IT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미 잡스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견돼 왔고, 준비돼 왔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곧 가라앉아 국내 업계 미치는 영향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애플과 글로벌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들에는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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