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염유창 기자] 이웃 간의 사소한 다툼으로 치부됐던 ‘층간 소음’ 문제가 결국 끔찍한 범죄로까지 이어졌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져야 할 설 연휴 동안 층간 소음으로 인한 방화와 살인이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 9일 서울 면목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 문제로 실랑이 끝에 형제 두 명이 흉기로 살해됐고 목동의 다가구주택에서는 한 남성이 역시 층간 소음 때문에 이웃집에 불을 질렀다. 설 연휴에 발생한 충격적인 방화·살인 사건은 층간소음 문제가 단순한 이웃 간 불화가 아닌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층간소음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 층간소음에 방화·살인까지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다툼을 벌이다 2명을 살해한 40대 남성이 도주 닷새만인 지난 13일 검거됐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설 연휴기간 부모 집을 방문한 30대 형제를 살해하고 달아난 김 모(45)씨를 이날 오후 8시25분께 수원에서 검거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지난 9일 오후 5시40분께 서울 중랑구 면목동 한 아파트 화단에서 A(33)씨와 B(31)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김 씨가 윗집에 소음 문제를 항의하러 올라갔다가 노부부의 아들들과 말싸움을 벌인 끝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는 범행 직후 도주해 서울 신림동과 목동, 경기도 의정부 등으로 옮겨 다니다 수원 영통전화국 앞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전날 체포영장과 통신기록 등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김 씨가 내연녀와 통화한 기록 등을 확인하고 김 씨를 추적해왔다. 경찰은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은 A씨 형제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수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한편 설 연휴 일가족 6명이 모여 있던 이웃집에 불을 지른 박 모(49)씨가 구속됐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12일 박 씨를 현주건조물방화치상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날 박 씨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담당한 서울남부지법 이원근 영장전담판사는 “혐의내용을 박 씨가 모두 인정했다”며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박 씨는 영장실질 심사에서 “20년 전부터 살고 있었으며 2002년부터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최근 일주일간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잤고 사건 당일 환청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어 “석유는 화가 나 10개월 전 불을 지르고 싶다는 생각에 준비했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지난 10일 오후 1시30분께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다세대주택 2층에 거주하던 홍모(67)씨의 집에 인화성 물질이 든 유리병을 던져 불을 내 홍 씨 등 일가족 6명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홍 씨 부부는 손과 발 등에 2도 화상을 입었으며, 30대인 홍 씨의 딸과 아들 그리고 두 살배기 손녀도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날 불은 건물 2층 일부와 집기 등을 태워 2100여 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내고 약 17분 만에 진화됐다.
경찰 조사결과 홍 씨와 같은 건물 1층에 살고 있는 박 씨는 누수 문제로 홍 씨에게 소송을 걸어 보상금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층간소음 해결책 없나
최근 아파트 층간소음을 둘러싼 이웃 간 갈등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아파트 층간 소음은 단순한 이웃간 다툼을 넘어 살인사건까지 번지고 있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층간소음 때문에 분쟁조정 과정이라는 절차가 생겼고, 그 피해보상 금액도 한층 커졌다. 그러나 여전히 관련법규도 없는 실정이라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은 전무한 상태다.
환경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가 지난해 3~12월 접수한 층간소음 민원은 총 7021건이다. 더욱이 센터 개소 전인 2005~2011년 전국 지자체에 접수된 민원이 1871건에 불과하며, 이 중 층간 소음으로 인정돼 소음 발생자에게 배상 책임을 지운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 동안 정부 및 행정당국은 층간소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층간 두께를 늘리는 것 외에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그나마 최근에는 층간소음 문제가 대두되면서 건설사에서 아파트 시공단계부터 바닥재와 천장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상황이지만 이미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처럼 층간소음 분쟁이 도를 넘어선 사회적 문제로 야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층간소음 분쟁을 조정할 법 규정과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센터 등에서 민원을 접수하기는 하지만 화해를 권고하거나 조정하는데 그칠 뿐 강제적인 구속력은 없다. 경범죄특별법상 ‘인근 소란’이 있지만 규정이 모호하고 범칙금 처분이 전부다. 아파트 시공사나 위층 주민을 상대로 하자보수 또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려고 해도 승소 가능성은 전무하다.
2004년 이전 완공된 아파트는 피해 인정기준 신설 전이라 근거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패소했고 신설 후에도 기준(낮 55㏈ 이상, 밤 45㏈ 이상)이 너무 높아 인정된 사례가 없다. 때문에 환경부는 올해부터 층간소음 피해 인정 기준을 낮 40㏈ 이상, 밤 35㏈ 이상으로 낮췄다.
이와 함께 층간소음 피해에 대한 법적 기준을 세우는 ‘주택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개정안에는 층간소음에 대한 책임이 입주자에게 있다는 것을 명시하고, 정부가 공동주택 주거생활 소음 기준을 정하도록 명시했다.
아울러 국토해양부도 신규 아파트에 대해 주택건설기준을 개정, 내년 3월부터 바닥구조 기준을 강화키로 했다.
현재는 바닥두께(벽식 210㎜, 무량판 180㎜, 기둥식 150㎜) 또는 바닥충격음(경량충격음 58㏈, 중량층격음 50㏈) 중 하나를 만족시키면 되나 이를 동시 충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업계 및 관련 전문가들은 기준 강화 등의 대책만으로는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층간소음은 각자 성향과 처한 상황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달라 명확히 하기가 힘들며, 완전히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강화된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개정 기준 적용시 비용이 평균 7~10% 더 들 것으로 추정된다.
윤대현 서울대 정신과 교수는 “층간소음은 대개 이웃 간 사소한 다툼으로 치부되지만 언제든지 강력사건의 도화선이 될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문제는 각자 성향과 처한 상황에 따라 층간소음이라고 느끼는 정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라면서 “층간소음은 각박한 현대사회가 불러온 하나의 병리적 현상으로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0㏈은 불가능하고 낮출 수는 있다. 단 비용이 그만큼 높아진다”며 “층간소음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새 규정에 맞춘다고 해도 모두가 만족하긴 힘들다. 따져볼 것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바닥두께 기준 등 관련 규정을 강화·신설하는 것이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소음 문제가 발생해도 기준에 맞춰 시공한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 할 수 없었다”면서 “현실에 맞춰 소음 규정을 더욱 강화하는 등 규정 강화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