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서승아 기자] 최근 충북 보은군 보은읍 성주리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을 찾은 채모씨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본군의 총칼에 무참히 학살당한 동학혁명군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성지에 '욱일승천기' 모형의 화단을 만들다니 말이 됩니까?"
공원 돌계단 곳곳에 떨어진 돌조각과 말라비틀어진 풀이 그대로 방치된 모습은 사나웠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채씨의 분노가 폭발한 건 이 공원 정상 부분 기념탑 뒤에 조성한 화단 때문이었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공원 때문에 착잡해진 마음을 애써 참으며 기념탑이 있는 정상까지 오른 채씨는 아연실색했다.
일본군의 총칼에 죽어가는 동학혁명군을 형상화한 기념탑 뒤에 버젓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 모형의 화단이 조성돼 있지 않은가.
채씨는 “무기도 없이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숨진 동학혁명군들을 기리는 장소에 일제 전범기인 ‘욱일승천기’ 모형의 화단을 만들다니 정신이 있는 것이냐”며 “이 ‘욱일승천기’를 당장 파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을 삭이지 못한 채씨는 보은군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글을 올려놨다. 그는 “이 화단을 없애지 않는다면 당신들(보은군)을 일제의 첩자로 알고, 여러 경로를 통해 전국민적 선전전을 펼치는 한편 군청에서 농성할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이 ‘욱일승천기’ 모형의 화단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한 건 비단 채씨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5일 이곳을 찾은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단’의 도법 스님 일행도 화단을 둘러본 뒤 “‘욱일승천기’를 연상케 한다”며 “다른 곳도 아닌 동학공원에 이런 모형의 조경이 말이 되느냐”고 개탄했다.
문제의 화단이 있는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은 국·도비 38억여원과 군비 42억여원 등 모두 94억여원을 들여 10만여㎡ 넓이로 2006년 완공했다.
보은동학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조명한 김석중의 '토비대략'은 "북실마을에서 벌어진 야간전투에서 393명이 숨지고, 관군과 일본군에게 마구잡이로 참살당한 농민군이 2200명이나 된다"고 서술해 놓았다.
한국 최초의 민중혁명으로 평가받는 동학혁명은 추운 겨울에 벌어진 이 북실전투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정부와 군은 1894년 12월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최후의 전투를 벌이다 모두 참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 깊은 이곳에 동학혁명군들을 기리기 위해 공원을 만들었다.
공원 안에 기념탑·돌성·집회광장·산책로·정자·전시 통로·화장실·주차장 등이 들어서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탑과 주변 조경 등은 현상공모를 통해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A 작가의 작품이다.
보은동학의 역사적 사실에 관한 독창적인 표현과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과 조화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문제의 이 화단은 동학농민혁명 때 호소문이나 격문 등을 쓸 때에 누가 주모자인가를 알지 못하도록 많이 사용했던 '사발통문'(沙鉢通文)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 김모(56)씨는 “화단의 모습은 살펴보니 언뜻 보기에 활활 타오르는 태양이나 태양의 빛이 뻗어 나가는 느낌도 든다”며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의미하는 ‘욱일승천기’ 모형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는 만큼 화단모형 변경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군과 작가의 제작 의도는 분명히 ‘욱일승천기’와 상관없지만 여러 사람이 문제로 지적하는 만큼 작가의 충분히 의견을 나눠 개선방향을 찾겠다”고 논란을 일축시켰다.(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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