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이로 인해 국내 경제에 핵폭풍에 비유되는 충격 여파가 밀려오면서 환율 급등 규모와 주가 하락폭이 역대 최고 수준까지 치솟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나 하루만에 금융시장이 제 모습을 찾으며 빠르게 안정됐다. 그럼에도 언제 또다시 도발할지 모르는 북한발(發) 변수가 남아 있어 국제 경제시장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북한은 지난 9일 중앙통신사를 통해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사실을 공표하면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후 국내에 이 소식이 전해지자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에는 말 그대로 '핵폭탄급' 충격이 전해져 당일 코스피지수는 추석연휴 전보다 32.60포인트(2.41%) 급락한 1,319.40에 거래를 마쳤다.또한 코스닥지수는 9.11테러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 무려 48.22포인트(8.21%) 급락해 연중 최저치인 539.10에 거래를 마감했다.
또 핵실험 소식에 놀란 개인투자자들이 무려 6,019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내다 팔면서 개인 순매도 규모가 33개월만에 최대 규모치를 기록했으며, 하락 종목수 역시 전체의 93%인 780개를 기록, 연중 최고치에 임박했다. 이어 유가증권시장에서 16조원, 코스닥시장에서 5조원, 총 21조원이 넘는 돈이 하루만에 허공으로 증발했다.
금융시장에도 역시 충격이 전해져 1994년 '서울불바다' 파문 등 역대 북한이 제기했던 리스크중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원·달러 환율은 14.8원 폭등한 963.9원에 마감하면서 역대 환율급등 규모중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경제 전반에 큰 동요가 일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추석연휴로 생산과 수출에 차질이 생기는 등 북한 핵실험 파장이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의 전망이 밝지 않다"면서 "북한 핵실험까지 악재로 작용하면서 우리 경제는 사면초가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1994년 한반도 위기때와 달리 사재기 현상도 발생하지 않았고, 다음날 주식시장은 하루만에 폭락세에서 벗어나 안정 궤도에 오르고 전날 큰 폭으로 오른 환율도 하락세로 반전하는 등 더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제 금융시장 역시 발표 직후 동요가 있었지만 마감 때는 상승세를 기록했을 정도로 북핵의 영향에 무덤덤한 모습을 보였다. 일본은 북한 핵실험이 발표된 9일이 '체육의 날'로 증시가 휴장돼, 다음날인 10일 거래가 시작됐는데 도쿄증시의 닛케이 평균은 전주 말보다 0.25% 상승한 16477.25를 기록, 오히려 상승세를 탔다.
또 미국, 유럽 증시도 9일 개장 직후 다소 하락세를 보였지만, 장 후반에 들어서면서 상승세로 반전했다. 중국 증시도 '핵실험으로 외국인 자금이 한국과 일본을 떠나 중국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상하이 증시 주가가 1.89% 급등하다 다음날 0.01% 하락하는 등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처럼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북핵의 영향이 금새 잠잠해진 것은 북한의 핵 보유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어 핵 실험이 새로운 악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창중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북핵 문제와 관련된 악재가 이미 주가에 선(先) 반영 됐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투자심리가 안정을 찾는 모습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여기에 9일 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발표한 만큼 이번 사태가 북한에 대한 군사 제재와 같은 최악의 사태는 피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증시 충격이 완화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당분간 달러의 강세가 점쳐지면서 수출업체로서는 달러로 받은 수출대금을 원화로 환산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어 지금 당장으로선 호조를 맞은 셈이나 핵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해외 딜러들의 동요나 신인도 하락으로 타격을 입긴 마찬가지다.
더욱이 앞으로도 강약을 거듭하면서 북핵 여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 외환시장의 불안한 흐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증권 이상재 거시경제팀장은 "북핵을 계기로 그동안 글로벌 달러가치에 비해 고평가됐던 원화가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전개되는 갈등의 정도에 따라 상승폭이 달라질 수 있지만 불안이 고조된다면 1000원선으로 복귀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추가 핵실험의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점도 또 다른 변수로 꼽히고 있다. 일반적으로 핵무기 실험은 2회 이상 실시되고, 국가정보원이 첫 번째 핵무기 실험 이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도 이상 징후를 포착한 것을 근거로 정보당국과 전문가들은 추가 핵무기 실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신기남 국회 정보위원장은 "추가 핵실험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며 "북한이 더 위력이 센 실험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김영수 교수는 "북한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도 추가 핵실험으로 긴장관계를 더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그래야 세계의 여론이 '대화로 풀어라'는 분위기로 가고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기도 쉽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11일 일본 공영 NHK 방송은 일본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을 북한의 2차 핵실험 강행으로 추측한 오보를 냈다. 이에 따라 아시아 대륙에서부터 미주까지 북한지역에서의 진동 여부를 관측하는 긴박한 상황이 연출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비록 소동에 그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지만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로 인해 일시에 투자심리가 냉각되는 등 가까스로 호전된 국제경제 시장에 찬물을 쏟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헤프닝이 진짜 추가 핵실험이었다면 비록 1차 실험 때보다는 충격이 덜하지만 이보다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2차 핵실험으로 코스피지수 1300선이 위협받을 수 있으며, 국가 신용도의 하향조정을 막을 수 없게 돼 자칫 국내 투자 자금마저도 해외로 유출될 수 있는 상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영익 대표는 "1차 실험 때보다는 아니더라도 2차 핵실험은 적지 않은 파장이 있을 수 있다"며 "2차 실험이 강력한 대북 경제제재 등과 맞물리며 1300선을 위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2차 핵실험이 외국인 투자심리를 더욱 냉각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삼성투신운용 양정원 주식운용본부장은 "2차 핵실험은 외국인 투자자들에 한국증시의 리스크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대만이나 중국 등이 있는데 한국증시에 왜 투자하느냐는 회의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원동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11일 일본언론 보도의 사실 확인이 안된 시점에서 "北 2차 핵실험이 사실이면 신용등급에 큰 영향"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가 북한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비록 국제 금융시장이 진정되기는 했지만 앞으로 북한 핵실험에 대한 주변국들의 대응조치 내용과 제재 강도에 따라 또는 사태의 장기화에 따라 국내외 금융시장이 등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해상봉쇄 등의 조치에 나서고 북한이 강경하게 대응하는 등 양측이 극단적으로 움직이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굉장할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제 방안을 두고 연일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핵실험이 '성공'으로 밝혀지게 될 경우, 이는 핵무기의 실질적 보유를 의미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강국의 보다 강력한 제제안이 불가피해지게 된다.
게다가 한국 정부도 안보리의 결정에 동참의사를 밝힌 만큼 금강산 관광 등 그동안 유지해 왔던 남북경협사업에도 영향을 미쳐 대북 압박의 수위는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경제 상황은 빠르게 달라질 수 있다. 우선 국내 금융시장은 추가적인 조정을 피할 수 없게되고, 국내 외자의 이탈과 국제신용등급 하락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뜩이나 침체된 한국경제는 직격탄을 맞게된다.
그리고 기존의 고유가, 세계경기 둔화에 이어 북핵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3가지 악재가 겹쳐 정부가 발표한 올해 5% 성장 목표도 사실상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불안심리가 커지면 장기적으로 투자가 위축돼 경제성장률이 둔화될 뿐 아니라 소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도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제제가 결정될 경우 북한 붕괴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른 국내 불안요인이 확대돼, 해외 이전 기업들이 늘어나는 등 경제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기에 만에 하나 경제봉쇄 과정에서 무력충돌이라도 일어날 경우엔 국내가 입는 경제 타격은 더 심해진다. 말 그대로 'Sell Korea'라는 우려가 현실화 돼, 외국인 투자자들이 급격히 투자자금을 뺄 가능성이 있기 때문.
문제는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아주 없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일본 조미평화센터 김명철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를 통해 "경제제재만으로도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인다"며 "이번 북한의 핵무기 실험은 '경량 핵실험'이었고, 더 큰 규모의 추가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혼란스런 국제 정세 속에서 북한의 행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지금, 북한의 고립화는 곧 우리의 경제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신속하고도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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