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나라가 ‘사찰’로 시끄럽다. 국가 권력이 표면상 ‘공직자 감찰 기관’을 내세워 ‘민간인’, 아니 “국민을 사찰했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우파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개인주의’의 나라 미국이었다면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가 된다. 실제로 ‘도청’과 같은, 어딘가에선 ‘흔한’일로 쫒겨나야만 했던 미국 대통령도 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우리들도 ‘사찰’의 주체가 될 때가 있다. 바로 ‘인터넷’에서 그렇다.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과 SNS의 활성화는 점점 더 ‘사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얼마 전 일어났던 담배녀 사건과 같은 이슈가 발생하면 네티즌들은 ‘인터넷’을 뒤져 사람을 찾아낸다. 소위 ‘신상털기’다. 그런 방식으로 찾아낸 신상을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멘트와 함께 인터넷 상에 게시, 마녀재판을 주재한다. 그곳엔 원칙과 이성은 없다. 오로지 비난과 감정의 배설만이 존재한다.
혹은 다른 사례도 있다. 최근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SNS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 ‘이성 친구’를 사귀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이들은 SNS상에 공개된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하면 ‘신상’을 캐거나 사진을 ‘수집’한다.
이쯤 되면, 혼란스럽다. 과연 어디까지 ‘사생활’의 범위인가. 다른 이용자가 ‘공개한’ 정보를 다른 곳에 게시한다면 이는 ‘사생활 침해’가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 모든 문제는 사실, 우리가 단 한번도 ‘사생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가져보지 못했다는 불편한 진실을 일깨워 준다.
지난 세기 한국사회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우리의 물질적 삶은 풍요롭게 만들었지만 우리의 사고와 철학, 사회 인식의 발전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우리가 입는 옷은 점점 비싸졌지만, 우리 머릿속, 마음속에 있는 양식은 점점 빈곤해졌다.
‘사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일찍이 ‘개인’을 중요시 했던 서구 사회는 근대에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사생활’의 개념으로 발전했고 사회에서 보호받아야할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전쟁이후 반공, 유신, 안보와 같은 가치를 내세운 ‘감시’가 일상화 되어 왔다
변화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급속한 인터넷의 보급은 우리사회의 발달 속도를 증가시켰고 ‘민주화’로 일궈낸 사회의식 발전의 시기를 또다시 놓치고 말았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먹고 살기 바빠 그랬듯, 이제 서른 줄에 접어든 우리 세대가 ‘입시’에 바빠 그랬듯, 지금의 아이들은 ‘스마트폰’과 'SNS'에 바쁘다.
그게 문제다. 우린 너무 바쁘다. 한가롭게 누워 ‘철학’이나 논하고 있질 못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사회가 직면한 모든 갈등과 문제의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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