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기아차·현대重·KCC 등 범 현대가 전폭 지원
한라그룹이 8년만에 그룹의 모태인 ㈜만도를 재인수하며 예전의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 외환위기 때 잃어버린 기업을 재인수하는 첫 사례여서 사실상의 모기업 부활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라그룹 계열사인 한라건설 정몽원 회장은 지난 21일 홍콩에서 만도의 대주주인 센세이지(JP모건, UBS캐피털 합작 투자사)와 지분 72.4%를 6515억여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한라건설은 앞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만도 임원이 보유하고 있는 9.7%의 지분도 876억원 가량에 인수할 예정이어서 2대 주주에서 만도의 주인으로 올라서게 된다.
한라그룹은 고(故)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고(故) 정인영 회장이 1962년 세운 현대양행 안양공장(만도기계)이 모태다. 1980년 현대양행으로 부터 독립한 이후 1996년에는 계열사 18곳을 거느린 재계 12위 그룹으로 성장했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때 부도로 그룹이 무너지는 고난을 겪었다. 한라건설과 한라콘크리트, 투자컨설팅회사인 한라I&C 등이 살아남았지만 그룹으로서의 면모는 심한 상처를 받았다.
때문에 2006년 영면에 든 고(故) 정인영 한라건설 명예회장은 생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 왔다고 한라건설 관계자는 전했다.
컨소시엄에 KCC·산업銀·국민연금 참여
뜻이 이뤄진 것은 8년이 지나 아들인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53) 대에서다. 정 회장은 선세이지와 6515억원(미화 약 6억8000만 달러)에 지분 전량(72.4%)을 매입하는 사전 계약을 21일 체결했다.
이번 계약 이후 한라건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사들 간 인수비율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후 참여사들의 승인 절차를 거쳐 센세이지와 컨소시엄 참여사들 간 계약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컨소시엄에는 KCC, 산업은행, 국민연금관리공단 사모펀드가 참여하고 있다.
인수금액 면에서도 기존 타 기업의 예보다 좋은 값에 되사들여 평가가 좋다. 8년전 몸값이 6000억원 가량(당시 미화 4억4600만 달러)인데, 이번에 6515억원에 되사게 되었다.
이는 만도가 국내 2위의 자동차 부품제작사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 사모펀드인 KKR과 자동차 부품업체인 TRW 등이 만도를 1조~1조2000억원에 인수하려 했지만, 기술 유출을 우려해 난색을 표해 협상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한라그룹이 만도에 정성을 들인 이유는 고 정 회장이 직접 1962년 현대양행을 창업한 만큼, 모기업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크게 작용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현대양행(현 두산중공업)을 빼앗기게 되어 겨우 만도만 살아남았고, 이것이 그룹의 모태가 됐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구조조정때 그룹 와해
한라그룹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자산 6조2000억원, 매출 5조3000억원에 계열사 18곳을 거느린 재계 12위 그룹이었다. 이듬해 IMF로 온 나라 경제가 흔들리는 통에 한라중공업에 무리하게 투자한데다 계열사 간 상호출자로 자금난에 문제가 생겨 한라건설과 한라콘크리트, 한라I&C 등만 남고 그룹이 와해되는 불운을 맞게 된다.
당시 대다수 기업들이 마찬가지였듯 한라그룹도 모기업 만큼은 내놓지 않으려고 동분서주 했지만, 외환위기로 인한 매서운 구조조정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들게 된다. 정몽원 회장은 이 과정에서 계열사 상호지원 혐의로 징역 4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가 지난해 사면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한편 살을 에는 뼈아픈 구조조정을 거친 한라그룹은 2003년 건설경기가 되살아나면서 한라건설이 본궤도에 오르자 만도를 되찾으려는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한다. 맞춤해 2005년 센세이지가 만도를 내놓겠다는 뜻을 밝혔고 정몽원 회장은 인수 작업에 돌입한다.
인수에 여러 곳이 뛰어들었지만 만도의 최대 매출처이자 친인척 기업인 현대·기아차그룹을 설득하느냐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은 작은아버지인 정인영 회장이 일군 회사인 만큼 한라그룹을 되살리기 위해 만도의 인수를 측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2006년 정인영 회장이 별세한 이후 소위 범 현대가로 불리는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 KCC 등이 한라그룹을 지원하는 분위기로 반전되면서 한라의 만도 인수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는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고(故) 정인영 회장의 동생이자 현존 현대가의 맏형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72)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정상영 회장 "만도되찾아 형님 한 풀어야"
한라건설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이 지난해 7월 정인영 회장 1주기에서 "만도를 반드시 되찾아 형님(정인영)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정몽구 회장을 설득해 그룹을 지원하자는 묵시적 동의를 얻어낸 것이 큰 힘이 됐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도 '범 현대가 회복'이란 취지에 동의했다고 알려졌다. 정상영 회장은 한라를 돕기 위해 KCC를 컨소시엄에 포함시키기까지 했다. 정상영 회장의 지원은 한라건설이 만도를 되찾아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또 만도가 만드는 자동차 부품의 70%를 납품받는 현대·기아차 역시 인수기업 결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해 미국 사모펀드인 KKR과 자동차 부품업체인 TRW은 무려 1조~1조2000억원을 써냈지만 현대·기아차의 동의를 얻지 못해 뒤돌아서야 했다.
범 현대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정몽원 회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생전에 정인영 회장이 강조한 깨끗한 기업문화를 일구고 중공업 정신을 이어받아 만도인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이 같은 범 현대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회사 노조의 동참, 최대 매출처인 현대·기아차의 지원사격에 센세이지는 손을 들 수박에 없었다. 5000억 원 가량이나 낮은 금액을 써낸 한라건설에 만도를 8년 만에 되돌려 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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