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추기경, 개성공단 방문 … 평화·화해 기원

김태혁 / 기사승인 : 2014-05-25 0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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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경쟁위주 메마른 삶 탓”

작년 방북 장성택 갑작스러운 처형으로 무산
물질만능·성공 위주의 메마른 삶이 우리를 지배


[토요경제=김태혁 기자] 천주교 서울대 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이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신부 등 7~8명이 지난 21일 하루 일정으로 개성공단을 찾아 우리 측 기업인과 신자들을 만난다.


지금까지 문익환 목사 등 우리 종교인들의 방북은 종종 있었지만, 천주교 추기경이 북한 땅을 밟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염 추기경의 방북은 남북관계가 북한의 4차 핵실험 위협 등으로 경색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그 파장에 관심이 모아진다.
염 추기경은 우선 이날 오전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방북해 개성공단에 도착한 뒤 공단관리위원회의 브리핑을 들을 예정이다.
개성 기업인·신자 평화와 화해 기원할 예정
이어 입주기업, 부속병원 등을 방문해 공단에서 근무 중인 기업인·신자 등과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기원할 계획이다. 평양 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는 염 추기경의 방북은 천주교 측의 요청으로 이뤄졌으며, 이번 방북은 3~4개월 전부터 추진돼 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염 추기경은 지난 2월 추기경 서임식 참석 뒤 이탈리아 로마에서 “지난해 개성공단이 폐쇄됐을 때 개성공단 신자들의 모임인 로사리오회에서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주길 부탁한 적이 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지난해 7월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미사를 명동 서울대교구 주교관에서 로사리오회 신자들과 봉헌한 적이 있다”며 “나는 현재 평양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어 담당 지역인 개성공단을 방문하고자 했고 미사를 드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염 추기경은 “공단 방문이 긍정적으로 진행되다가 무산됐는데 우리는 언제든 도움이 된다면 그곳을 가보고 싶다”고 바라기도 했다.
이번 염 추기경의 방북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추기경이 북한 지역인 개성공단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한반도 특히 북한 문제에 큰 관심
서울대교구는 염 추기경의 개성공단 방문을 지난해부터 추진해왔다. 염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이면서 동시에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다. 염 추기경은 지난해 말 성탄절 미사를 개성공단에서 드리려 했다. 남북한 양측의 승인을 받아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당시 북한 2인자 장성택의 갑작스러운 처형에 따른 정국 변화로 무산됐다.
역대 교황들도 한반도 문제, 즉 북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여왔다.
한국을 2차례 방문한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은 물론 현 프란치스코 교황도 취임 직후인 지난해 부활대축일 메시지에서 “아시아, 특히 한반도에 평화를 바란다”며 “대립을 극복하고 새로운 화해의 정신이 자라기를 기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8월 방한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교황의 방북에 대비해 염 추기경이 사전 준비작업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통일부 고위 관계자는 “교황의 방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위로의 말보다 그냥 경청했다”
정부 관계자는 또 추기경의 이번 방북이 남북 관계 개선과 연결될 가능성에 대해선 “정치적으로 곧바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순수하게 종교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했다. 다만 한 관계자는 “북한이 종교 행사를 허락한 것은 남쪽 정부가 아닌,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선전 전술일 수 있다”면서 “종교적인 자유가 보장돼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방북전에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미사를 봉헌을 조규만 주교(교구 총대리)와 명동대성당 사제단이 공동 집전 한 것이다.
염 추기경은 미사 봉헌에 앞서 “성 목요일과 부활 성야, 부활 대축일에 미사를 지내며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기도해오다 교황 요한 23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식에 참석차 로마에 가게 됐다. 이후 작년부터 예정된 사제 피정이 예수의 탄생지인 이스라엘에서 열려 이곳에서 많은 묵상과 기도를 바쳤다”고 근황을 전했다.
염 추기경은 미사 강론 직후 비공개로 안산에 마련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을 만난 이야기를 전했다. “안산 합동 분향소로 향했다. 합동 분향소에 놓인 수백 명의 영정사진을 마주했는데, 영정 속 어린 학생들은 마치 지금이라도 운동장에서 천진난만한 미소로 친구들과 뛰놀 것만 같았다”면서 “그 슬픔을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영정 앞에 친구나 가족들이 써놓은 절절한 편지를 잃으며 너무 가슴이 아팠다”며 비통해했다.
오랜 세월 쌓여온 공직사회의 잘못된 관행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어디 있겠나. 졸지에 가족을 잃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는 유가족들을 만났지만,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고 그냥 그들의 말을 들었다. ‘살릴 수도 있었는데…’하며 울부짖던 한 어머니의 억울함을 깊이 공감했다. 분향소를 떠나며 무죄한 이들의 죽음에 대해 살아있는 우리가 모두 책임이 있음을 통감했다. 결코, 이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문제점도 지적했다.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는 인재(人災)’라고 표현한다. 승객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린 직업윤리의 부재, 오랜 세월 겹겹이 쌓여온 공직사회의 잘못된 관행들,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 불감증, 재난대응시스템의 허점 등 많은 부족함이 그 실체를 드러냈고 결과적으로 세월호 침몰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세월호의 참사는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결국 물질만능주의, 성공주의, 경쟁 위주의 메마른 삶이 우리를 지배해 온갖 사회병리적인 폐해가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짚었다.
정부·지도자·교회·개개인 모두 진정한 회개 필요
염 추기경은 다시는 이러한 참혹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의 철저한 원인 규명과 조치를 요청했다. 또 사회 부조리를 바로 잡고 국민들에게 약속한 제대로 된 재난대응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번 참사의 가장 밑바닥에는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인명 경시 풍조와 물질만능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작년 불법이민자들의 섬인 이탈리아 람페두사에서 언급한 미사 강론 일부도 낭독했다.
자기반성도 했다. “우리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도 가난한 자세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기보다 외적 성장이나 사회적 성공만을 중시한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고 고백했다.
모두의 겸손한 자세도 요청했다. “우리 모두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본래 모습 회복하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정부도, 지도자들도, 교회도, 개개인도 진정한 회개를 하는 계기가 돼야 하겠다”고 전했다.
염 추기경은 강론을 마치며 구조작업 중인 민관군 잠수사들과 현장에서 애쓰는 모든 이들에 감사함을 전하고 다시 한 번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과 유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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