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유승열 기자] 은행원 10명 중 9명은 과도하게 부여된 목표를 맞추기 위해 고객의 이익보다는 실적에 도움이 되는 상품을 판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은행의 KPI(핵심평가지표) 제도를 전면 폐지하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3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을지로 노조 본부에서 개최한 '금융공공성 강화 및 금융소비자 보호방안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87%가 고객의 이익보다는 은행의 KPI(핵심성과지표) 실적평가에 유리한 상품을 판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실적평가에 유리한 상품을 판매한 사례(복수 선택)를 살펴보니 75%가 가족·친구·지인 등에게 강매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어 '고객 의사와 무관하게 은행 전략상품 위주로 판매했다'(65%), '고객 의사와 무관하게 KPI 점수가 높은 상품을 추천했다'(59%)는 등 순이었다.

이밖에 상품 쪼개기(49%)를 하거나 은행원이 자기 돈으로 상품을 신규 가입(40%)하는 사례도 있었다.
응답자들은 고객 이익보다 실적평가를 기준으로 상품을 판매한 이유(복수응답)로 ▲ 과도하게 부여된 목표 66% ▲ 은행 수익을 우선시하는 평가제도 56% ▲ 단기 실적 위주의 평가제도 54% ▲ 캠페인·프로모션·이벤트 등 추가 목표 부여 50% 등을 꼽았다.
응답자들은 은행권이 개선해야 할 과제(복수 선택)로 단기성과 위주의 KPI 제도 (81%), 지나친 경쟁(70%) 등을 지목했다.
금융노조는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고액자산가 등 부자 고객과 VIP 고객에게는 우대금리를 적용하거나 각종 수수료를 면제해 사실상 '노 마진' 영업을 하고 일반인이나 서민 고객에게는 일반 금리 적용해 이익을 많이 남기는 차별적 영업이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비단 이같은 과당경쟁으로 인한 폐해는 이전부터 있어왔다는 게 금융노조의 설명이다.
지난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도입을 앞두고 은행권에서는 자동차와 골드바, 해외 여행 등을 경품으로 내걸어 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더욱이 ISA의 절반이 1만원 이하의 '깡통계좌'로 조사되며 과도한 마케팅이 논란이 됐었다. 최근에는 가입 대상이 확대된 개인형 퇴직연금(IRP) 고객을 잡기 위한 경쟁 과열 조짐도 일었다.
유주선 금융노조 사무총장은 "KPI 평가 항목이 은행별로 적게는 40~50개에서 100개에 이른다"며 "KPI가 손쉬운 경영의 수단이 되버렸다"고 우려를 표했다.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산업의 과당경쟁은 IMF 외환위기 이후 계속해서 강도가 높아져왔고 이제는 오로지 수익만 추구하며 금융기관 본연의 공공성을 외면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며 "과당경쟁은 금융소비자와 노동자, 은행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금융산업 만악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은 단기 실적의 극대화를 강요하고, 노동자는 고객의 이익보다는 실적 기준에 따른 영업을 위해 장시간노동에 내몰리고, 소비자는 원하지도 않는 금융상품에 가입했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를 입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노조는 현행 방식의 KPI를 전면 폐지하고 성과지표 전체를 새롭게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세부 상품판매 평가서 제외 ▲금융공공성·소비자보호 항목과 중·장기 실적 비중을 확대를 주장했다. 또 ▲평가항목별 목표달성 인정비율 제한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 ▲프로모션 폐지 ▲단기실적 중심의 경영진 평가방식 개선 ▲경영진 과도한 성과급 지급 축소 ▲경영진에 대한 장기 평가 기준 마련 등을 요구했다.
한편 금융노조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요구를 올해 산별교섭에서 논의하고, 국회 등과 관련 대책 수립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내달 4일 국회에서 이용득,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의원과 토론회 갖고 공론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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