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세상읽기] 은발 스타의 로맨스, 정직과 예의 사이

정해용 / 기사승인 : 2011-12-09 13: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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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한 사나이의 회고록이 끈적한 여운을 던지고 있다. 지난 세기 이 나라를 대표하는 영화배우 중 한 사람이었으며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고 최근에는 고향에서 자기 취향의 멋진 집을 지어놓고 말을 타며 전원생활을 즐기기도 한 강신성일. 흔한 말로 ‘사내다운’ 한 생을 지낸 그를 우리 시대의 풍운아라 부르기는 조금도 과하지 않다.


최근 회고록을 펴낸 그의 맺음말이 세간에 불씨가 되었다. 과거에 사랑하던 여인을 공개하며 ‘생애에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밝힌 일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만나 사랑을 불태웠던 일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일이 무슨 죄랴마는, 문제는 신성일이 엄연히 아내를 둔 남자라는 데서 불거진다. 사회적으로 ‘불륜’이라 부르는 혼외 연애와 정사에 관한 얘기를 이렇게 공공연히 밝힐 수 있느냐 하는 비난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아내 외에 누구를 사랑한다는 자체가 부도덕이라는 원론적 비난도 많다. 어떤 신문 기사는 아예 ‘추악한 발악’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이에 앞서 그는 어느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그의 독특한 연애관을 피력했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애인에 대한 사랑은 별개다. 지금도 아내를 사랑한다.’ ‘지금도 애인이 있다.’ ‘연애를 하고 싶다.’ 일련의 발언들이 그에 대해 무언가를 궁금하게 했다. 지난 5일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의 고백은 그에 대한 답인 셈이다. 과연 충격파가 컸다. 이미 25년 전 교통사고로 숨진 옛 애인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가 지운 사실까지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남자들의 외도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다. 단순히 따분한 부부관계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한번쯤의 일탈을 즐기는 차원의 외도. 가장 흔한 케이스다. ‘화류 객정은 일 년이요, 본댁 정은 백년’이라는 노랫말도 있지 않던가. 그 ‘객정’은 오기도 쉽게 오고 가기도 쉽게 간다. 관계가 바람처럼 가벼워서 일명 ‘바람’이라고 하는 외도다.


그런데 만약 좀 더 진지한 관계라면. 바람보다 무거운 관계는 쉽게 오지도 않지만 쉽게 지나가지도 않는다. 나름으로 진지하게 사랑의 불꽃을 피우는 것이므로 ‘바람’보다는 ‘내연관계’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가벼운 바람에서 시작하여 무거운 내연관계로 진전되는 수도 있겠지만, 이 단계에 이르러 남자는 비로소 ‘사랑’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가족이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을 때 ‘바람’을 피우던 사람은 금방 정리하고 돌아설 수가 있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쉽게 돌아서지 못한다. ‘모든 것을 잃는 한이 있어도 지키고 싶다’는 비장한 결심으로 가정까지 버리는 사람들의 경우가 바로 여기 해당하는 것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신씨가 옛 연인을 가리켜 공공연히 ‘내 생에 가장 사랑한 여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이런 진정성을 주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남녀의 관계가 얼마나 진지하고 진정한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측량기기는 없다. 더구나 사랑의 무게를 어떤 저울을 써서 잴 수 있단 말인가. 다만 당사자들이 그렇게 굳게 믿고 있다면 그런 것이고, 조금이라도 스스로의 감정에 미심쩍은 마음이 숨어있다면 순간의 착각일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닐까.


나름 진지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흔히 갖는 심리가 있다. 그 관계를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자랑은 아니더라도 누군가 제삼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진지한 연애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아무리 은밀한 사랑을 하려고 해도, 그것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아닌 한 결국은 누군가에게 털어놓게 되고 누군가로부터 동의를 구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심리다. ‘가난과 사랑은 이마에 표시가 된다(숨길 수 없다).’는 서양 속담도 있다.


만일 내가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나를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어하거나 말하고 싶어하지 않고 감쪽같이 비밀을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진중한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보다는 내심 충분히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자, 다시 이 시대의 풍운아 신성일에게로 눈을 돌려서 수다를 마무리 해보자. 그래서 그가 잘했다는 거냐 잘못했다는 거냐. 이 대답을 감히 어떻게 하겠는가. 시앗을 보면 부처님도 돌아앉는다는데, 멀쩡한 부인을 두고 화려한 연애이력을 고백한 남자에게 세상의 조강지처들이 ‘잘했다’ 할리는 만무하다. 당장 죽어도 좋을 연애를 한 번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남녀들(사실 남자들 대다수는 그게 평생소원일 터이고 세상 여자들의 절반도 그런 꿈을 가졌을 것이라 사료된다)은 내심 부러움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그 누가 감히 대놓고 ‘잘했지 뭐, 부럽잖아?’라고 말하겠는가. 좀 너그러운(?) 편의 여론은 그렇다. “잘난 남자가 그럴 수 있다고 쳐. 하지만 멀쩡히 곁에 있는 부인의 위신은 뭔가.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한 거 아냐?”


신씨의 공개적 고백이 여느 사람들보다 용기 있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뉴스에 몰린 댓글들을 보자니 어떤 의미로든 그도 손해 깨나 볼 것 같다.



정해용 상임논설위원(peacepre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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