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한은행, 최고(最古) 갈등

황지혜 / 기사승인 : 2007-01-15 00:00:00
  • -
  • +
  • 인쇄
우리은행 108주년 기념식 '민족은행' 운운 신한은행 "학계서 인정한 최고령은 신한"

지난해 은행가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 중 하나인 토종은행론은 치열한 영업경쟁 속에서 나온 경영 전략이었다. 올해 역시 시중은행들이 신년사를 통해 영업 강화에 나서겠다고 기약한 만큼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다.이런 가운데 최근 우리은행이 '민족은행' 카드를 꺼내면서 신한은행과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국내 최고(最古) 자리를 두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 4일 우리은행이 창립 108주년을 맞아 본점 강당에서 연 기념식에서 황영기 우리은행장이 꺼낸 발언이 발단이다.

이 자리에서 황 행장은 "우리은행은 '민족 정통은행'으로서 우리 민족의 핏줄에 흐르고 있는 도전과 개척 정신을 살려 금융강국의 꿈을 위해 세계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이날 기념식에 맞춰 배포된 자료를 통해 우리은행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은행은 고종황제의 내탕금(황실 자금)을 기초로 상인층이 중심이 돼 만든 대한천일은행"이라고 못 박았다.

대한천일은행은 한일은행과 합병을 선언하고, 한빛은행으로 이름을 바꾼 우리은행의 전신이다.

우리은행은 또 대한천일은행은 영친왕(英親王)이 제2대 은행장으로 취임한 역사적 기록을 간직하고, 108년전 창립정관에 '조선인(朝鮮人)만이 주식을 매매할 수 있다'는 규정을 명시할 정도로 금융주권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민족 정통은행이라고 소개했다.

더불어 대한천일은행 창립인가서를 이달말쯤 국내외 900여개의 우리은행 점포에 부착하는 방안도 마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신한은행 측은 탐탁지 않은 눈치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우리가 최고령 은행이라고 하는 것은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일"이라며 우리은행이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반응이다.

지금까지 학계 및 은행권에서는 대한천일은행 보다 2년 앞서 1897년에 설립한 한성은행(조흥은행의 전신)을 최초 민족 은행으로 보고 있다. 이후 조흥은행으로 이어져 국내 최장수 은행 기록을 세우다가 109주년이 되던 해인 지난해 신한은행에 통합돼, 이제 신한은행이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13일에는 한성은행 1호 지점(현 신한은행)인 수원지점을 방문, 개점 100주년 행사를 개최했다. 그러나 우리은행 관계자는 "한성은행은 설립후 2~3년간 폐쇄됐다가 재설립되면서 맥이 한 번 끊긴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우리은행측의 논리는 한성은행이 영업 부진으로 한때 휴업했다가 1903년 2월에 다시 설립되는 과정에서 일본계 자금을 수혈 받아 '공립한성은행'으로 개편돼 일제의 수탈 도구로 이용된 만큼 이를 민족은행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천일은행도 설립 초기 황실이나 고위 관료들이 주로 이용하는 특수은행으로 운영 돼오다 경영이 악화되자 일본인의 도움으로 25만원을 무이자로 융자받으면서 경영실권이 일본으로 넘어갔다.

결국 이번 역사 논쟁 역시 과거부터 계속돼 온 두 은행간 지지부진한 영업전의 일환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이번에 언급된 '민족은행'은 지난해 논쟁 대상이었던 '토종은행론'을 연상시킨다.

지난해 황 은행장은 연초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은행처럼 경영권 소유자와 대주주가 내국인인 토종자본이 지배하는 은행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른바 '토종은행 육성론'을 불러 일으켰다.

이와 함께 우리은행은 '국내 유일한 토종은행임'을 공식 선포하고 영업전에 임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늦어도 2008년까지 예금보험공사의 지분매각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연금과 군인공제회, 교원공제회 등 연기금 등 국내자본이 앞장서 우리은행을 인수해야한다는 포석을 깔아놓음과 동시에 예보가 지분의 78%(지난해 8월 기준)를 소유한 우리금융지주를 제외한 대부분 시중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50%를 웃돌고 있음을 겨냥한 전략이었다.

국민은행과 하나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이 80%를 넘었고, 신한금융지주 역시 재일동포 지분 17%까지 포함하면 외국인 지분이 80%에 달한다.

이에 신한지주의 라응찬 회장은 토종자본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대립 양상이 짙어졌다. LG카드 인수전에서도 우리은행이 대주주인 예보의 반대로 중도에 포기하기 전까지 팽팽한 대립관계를 유지했다.

이후에는 은행권 순위를 놓고 일전을 벌였다. 황 행장이 지난해 7월 월례조회를 통해 직접 수치를 거론하며 "은행의 규모는 여수신 규모로 봐야 하며 8월말 현재 우리은행의 총대출이 91조, 신한은행이 85조로 6조원 앞서고 있다"며 우리은행이 은행권 2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자 신한은행측은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다며 황 행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한 관계자는 "지금 우리은행과의 여수신 규모 차이는 크게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며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여기에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모두 여자농구단을 보유하고 있어 농구단간의 맞대결이 벌어지는 날이면 양사 직원들이 경기장에 나가 영업현장에서의 경쟁 못지 않은 응원전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두 은행간 지나친 경쟁이 이런 필요 이상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라이벌 은행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을 뭐라 할 수 있지만 같은 업계에서 굳이 서로의 감정을 자극해서 좋을 것은 없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우리은행 관계자 역시 "이번 일도 두 은행간 경쟁의식을 지나치게 의식해 외부에서 부풀려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부담스러워 했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