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권력투쟁' 시작됐다

전성훈 / 기사승인 : 2011-12-26 11: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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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3대 세습 공식화…장남 김정남 등 '내부충돌' 우려도

◇前 미 국가정보국장, "몇 달 내 北 권력 내부 분열 가능성 확신"


미국의 데니스 블레어 전 국가정보국 (DNI) 국장은 북한 집권 엘리트 내부에서 이르면 앞으로 몇 달 안에 분열이 일어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블레어 전 국장은 21일 미국의 소리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후계자 김정은이 그동안 권력을 얻지 못했고, 아버지인 김 위원장이 지난 1994년 권력을 차지했을 당시 갖고 있던 경험과 기량을 갖고 있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이 안정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경제 체제를 변화시키지 않고, 군부에 대한 훈련과 공급을 유지하는 등 기존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위험과 문제는 변화를 주기로 결정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앞으로 몇 년 안에 북한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레어 전 국장은 "김정은이 권력 이양 작업은, 김정은이 모든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현재 여러 가지 면에서 권력을 갖고 있는 노령의 구세대 지도자들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이양하기로 결정할 경우, 3년 안에 세력을 굳히고 김 위원장이 가졌던 모든 권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김정은으로의 권력 이양은 순조롭지 못했으며, 김정은을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대장으로 임명한 것은 거의 절박한 움직임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북한에는 모든 종류의 경쟁과 분열이 발생할 소지가 있어 김정은이 새로운 지도자가 되기 위한 강력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블레어 전 국장은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의 상황은 김 위원장이 나라를 이끌 때보다는 오히려 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블레어 전 국장은 "김정은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거론된 것보다 더 많이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며 "꽤 개방된 사회에서라도 한 인물이 권력을 차지했을 때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정일 동생인 김경희 배경


원천적으로 장 부위원장의 힘의 근원은 부인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동생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과 1972년 결혼한 뒤 89년 당 3대혁명소조부장, 95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승승장구했다. 중간에 당직을 떠났던 그가 다시 2005년 말 당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하고 당 행정부장에 오른 것도 김경희 부장이 버티고 있었던 덕분이다. 김경희 부장은 2010년 9월 김정은과 함께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대장’ 칭호를 받은 데 더해, 당 대표자회에선 정치국 위원에 올랐다.
바로 이 점이 장 부위원장의 독자적 행보를 제한하는 굴레라는 시각도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장 부위원장은 김일성 가계에서 인척이긴 하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곁가지’에 불과하다”며 “김일성 혈통이 권력의 정당성을 좌우하는 북한 체제에서 장 부위원장이 ‘수양대군’이 되기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경험이 많은 장 부위원장이 국정의 일부를 맡아 담당할 순 있겠지만, 이미 친위세력을 확보한 김정은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억측”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후견인 장성택은 누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제일 주목받는 인물 중 한 명이 장성택(65) 국방위 부위원장 겸 노동당 행정부장이다.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 당정치국 위원 겸 경공업부장의 남편인 그는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후견인으로 알려져 있다.
장성택은 행정부장으로 공안업무를 책임질 뿐 아니라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국방정책에도 개입하고 있고, 나선 및 황금평 특구 개발을 담당하는 북·중공동지도위원회의 북측 위원장으로 외자유치 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장성택의 측근들은 곳곳의 요직에 포진해 있다. 김정은의 후계구도가 확실해진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에서 당비서들인 최룡해·태종수·김평해·박도춘·문경덕 등이 정치국 후보위원이 됐다. 모두 '장성택 라인'으로 불리는 인사들이다. 아울러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해 리영호 군총참모장, 김정각 군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보위부 제1부부장 등 장성택의 측근 인사들이 실세 기관을 장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장성택이 향후 김정일의 3년상(喪) 동안 김정은의 홀로서기를 지원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김정일 사망으로 힘의 공백 상태가 발생한 상황에서 장성택이 김정은의 후견인이라는 섭정 역할에서 벗어나 새 권력 창출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장성택이 탄탄한 인맥을 바탕으로 권력기반을 강화해 나가자 2004년 김정일이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라는 죄명을 씌워 장성택의 모든 직무를 정지시킨 적이 있었다. 당시 장성택을 추종하던 측근들도 대부분 지방으로 쫓겨가 막노동을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김정일이 2006년에야 복권시킴으로써 2년간 장성택은 '산송장'으로 지낸 전력(前歷)이 있다.
그런가 하면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가 최고 권력을 쥘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무부의 고위 관계자는 "김경희가 김정은의 실질적 후견인이고 장성택은 대리인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씨 왕조의 혈통을 잇고 있는 김경희가 수렴청정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시대’를 이끌 최측근 6인방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후계자인 김정은의 측근 인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정은의 핵심측근 중에서는 고모부 장성택 당 행정부장(65ㆍ국방위 부위원장)과 고모인 김경희 당정치국 위원(65ㆍ경공업 부장)이 ‘오른팔’로 꼽힌다. ‘로얄패밀리’인 두 사람은 후계자 수업을 받았지만 정치적인 뿌리가 약한 김정은을 위해 당분간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사망 이후 촉발될 수 있는 위기 상황을 미리 통제하고, 후계체제 공고화 작업을 수행하는데 앞장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후견인’으로 알려진 장성택을 경계해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장성택의 권력이 워낙 막강하고 이른바 ‘장성택 라인’이 곳곳 요직에 포진된 만큼, 장성택이 김정은의 뒤에서 실세를 휘두르는 막후정치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김정은이 믿을만한 인물이 고모인 김경희라고 보는 것도 이때문이다.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일의 유일한 여동생인 김경희가 실질적인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 ‘현지지도’를 나설때마다 김경희가 함께한 사례가 많았던 것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군부 중에서는 리영호 군 총참모장(69)이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 노동당 3차 대표자회에서 구세대인 오극렬의 자리를 대신해 급부상하며, 김정은 시대를 이끌어갈 핵심 군부로 자리매김했다. 일찍이 김정일 위원장은 후계체제 구축을 고민하며 20대 김정은에게 충성할 김정일의 사람들을 전진 배치했다. 2009년부터 꾸준히 70, 80대 군부 원로를 은퇴시키고, 앞으로도 김정은을 보좌할 60대 전후의 젊은 군사들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그중 리영호가 김정은의 ‘왼팔’로 낙점돼 후계체제를 준비해왔다.
리영호는 김정은과 ‘포사격술’을 공통분모로 공감대를 구축했다. 고위 탈북자들은 리영호를 ‘각종 포에 해박하고 포 사격에 천재성을 보이는 지휘관’으로 평가한다. 북한 당국도 그동안 북한 주민에게 김정은을 ‘포 사격의 귀재’로 표현, 우상화 작업을 실시해왔다.
군부에서 김정은의 측근으로 주목받는 또다른 인사는 김영철 정찰총국장(65)이 있다. 인민무력부 산하에 설치된 정찰총국은 2009년 2월∼4월 노동당의 35호실과 작전부가 합병된 조직으로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다.
당 관료 중에는 최룡해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62)이 김정은의 측근인사로 분류된다. 그는 지난해 당대표자회 직후 찍은 기념사진에서 첫줄에 앉은 김정은 바로 뒤에 서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이 ‘대장’ 계급을 달 때 같이 대장 계급을 단 세 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최룡해는 당시 정치국 후보위원, 비서국 비서, 당중앙군사위 위원 등 ‘3관왕’을 차지해 ‘김정은 시대’를 함께할 인물로 주목받았다.
리용호 외무성 부상(57)도 실세 중의 실세다. 지난 남북 비핵화 회담도 리용호가 주재하는 등 외교문제 관련 김정은과 가장 가까운 인사로 손꼽힌다.


◇김정은 버팀목은 핏줄 김경희·장성택, 과외선생 이영호


김정일 사망 발표와 함께 발표된 '국가장의위원회' 명단은 곧 김정은(27) 체제를 떠받들 파워엘리트들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때 장의위에 포함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군부를, 부주석 이종옥·박성철·김영주 등 노 간부들은 노동당·내각을 김정일 체제로 안착시키는 버팀목 역할을 했다.
김정은을 서열 1번으로 하는 232명의 김정일 장의위 명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장성택·김경희(모두 65세) 부부와 군부 최고실세인 이영호(69)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군 총참모장이다.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국방위 부위원장인 장성택은 김정일의 매제로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함북 청진 출생인 그는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와 모스크바 유학을 하며 친해졌고 김일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골인했다. 2008년 김정일이 건강 이상으로 쓰러졌을 당시 김경희와 함께 김정은 후계 태동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도 장성택을 '고모부'라며 잘 따른다는 첩보도 있다. 당 경공업부장을 맡고 있는 김경희는 김정일이 병상에서 복귀한 2008년 말부터 군부대와 공장 등의 현지지도를 대부분 수행하며 보좌했다. 당초 알코올 중독 등으로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으나 적극적인 공개 활동을 벌여 왔다. 두 사람이 김정은 체제의 후견인을 맡게 될 것이라는 점에 토를 다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이영호는 지난해 9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은과 함께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발탁되면서 주목을 끌었다. 강원도 통천 출신인 그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으며 군 작전통으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정부 당국자는 “직제에 없던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자리를 만들어 김정은·이영호를 나란히 앉힌 건 이영호에게 노동당과 군부에 기반으로 한 후계수업의 과외선생을 하라는 김정일의 뜻”이라고 풀이했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내부적으로 다져지던 2009년 2월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군부실세 오극렬(80)도 주목할 인물이다. 김정일 후계구축 때부터 군부 내 확고한 지지기반을 쌓아 왔다는 게 고위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장성택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려나 지난해 당 대표자회 때 제대로 된 직위를 얻지 못한 채 당 중앙위원에만 이름을 올린 걸 두고 세력을 잃었다는 관측도 있다. 정치국 후보위원인 당비서 박도춘(67)과 최용해(61)도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 체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인물로 꼽힌다.
장의위 명단에 오르지 않았지만 후계구도에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인물도 있다.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40)으로, 김정은 체제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는 지난해 김정일이 막내동생인 김정은을 사실상 후계자로 내세우자 외신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3대세습 후계는 잘못됐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김정은은 2009년 4월 초 국가안전보위부를 동원해 김정남의 평양 근거지인 우암각 별장을 급습해 세력 견제를 시도하는 등 김정남과 껄끄러운 사이”라며 “평양 판 '왕자의 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관계가 악화된 상태”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철(30)은 호르몬계 이상으로 인한 건강 문제 등으로 후계에 대한 미련을 애당초 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퍼스트레이디' 김옥의 운명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함에 따라 그의 네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김옥(47)의 앞날에도 관심이 쏠린다.
1980년대 초부터 2004년 김 위원장의 셋째 부인 고영희가 사망할 때까지 김 위원장의 서기실(비서실) 과장 직함으로 김 위원장의 업무를 특별보좌하다 네번째 부인이 된 김옥은 김 위원장 생전에 북한의 국정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들어 김 위원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간의 면담에 참석하거나 김 위원장의 방중에 동행하는 등 공식적인 자리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2010년부터는 공식석상에 `퍼스트레이디'로 모습을 내놓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의 5월과 8월 중국방문에 따라가 각종 공식석상에 등장하면서 존재를 과시했고, 올해도 5월 방중, 8월 방러·방중에 동행했다.
김옥은 고영희 사망을 전후로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으면서 단순히 부인으로서가 아니라 김 위원장의 국정운영을 보좌하고 국정 전반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8월 러시아 극동지역 최대 수력발전소인 부레이발전소를 둘러보는 자리에서는 방문록에 서명하는 김 위원장에게 무언가 조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에 김옥은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김일성 주석의 아내 김정숙은 6·25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인 1949년 9월, 김 주석보다 45년이나 먼저 사망했기 때문에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아내가 홀로 남은 전례를 찾아볼 수는 없다.
다만 김옥이 자신의 측근을 통해 삼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한 만큼 차기 지도자인 김정은에게 `아군'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분석이다.
1980년대부터 김 위원장의 업무를 특별보좌하며 일찍이 권력의 생리에 눈을 떴다는 점, 아버지인 김효가 김 위원장의 각별한 관심 속에 오래전부터 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부분도 김옥이 김 위원장 사후에도 일정 정도의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김옥은 지난 2007년 4월 군 창건 75주년 열병식의 최종 리허설을 지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 같은 권력을 계속 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 당 행정부장과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변수다.
복수의 대북 전문가는 김 위원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다 2004년 초 `분파행위'를 이유로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장성택이 2년이나 중앙정치 무대로 복귀하지 못한 데는 김옥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김옥은 사실상 2인자인 장성택이 지위를 회복하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장성택의 복귀를 막는 동시에 후계자 선정문제에 개입해 후계자인 김정은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키웠다는 것이다.
이 경우 김 위원장의 부재로 인해 김정은·김옥과 장성택·김경희 간의 갈등으로 북한 권력구도에 일대 혼란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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