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의를 하거나, 투서를 하거나, 무기력함을 탄식하며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하고 마는 것이다. 건의하는 것은 실명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다. 건의하는 문화가 활성화되면 살아있는 이상적인 조직이다. 건의문화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오너 즉 조직의 책임자가 건의하는 사람의 응석어린 내용도 포용하는 열린 리더십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건의하는 사람이 왕따가 되고 불이익을 받는 분위기속에서는 불가능하다.
건의문화가 사라진 조직속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것이 바로 투서다. 투서는 익명으로 한다. 익명이기 때문에 악의적이다. 못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으로 상급자나 회사의 부조리를 외부 권력기관에 주로 투서를 한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특히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나쁜 것이 없다. 회사의 이미지도 나빠지고 경영자를 외부에서는 무능하게 본다. 조직원 상하간에 믿음이 상실되어 한마디로 비극이다.
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투서라도 하지만 대개의 사람은 무사안일하게 되고 체념상태에 이른다. 이는 투서보다도 더 나쁘다. 잘못된 것을 묵인하는 꼴이 되어 조직은 병들어 결국 망하게 된다. 투서를 막고, 체념하여 무기력하게 조직생활을 하는 것도 막는 방법이 바로 건의문화의 활성화다. 하의상달의 소통이 바로 건의다.
정정당당히 건의하는 사람을 표창하고 건의가 채택이 되지 않더라도 건의를 많이 하는 사람을 우대하여야 한다. 이런 조직은 생산성도 높아 진다. 의사소통이 원활하면 삐칠 일도 없고, 투서할 일도 없게 된다. 특히 회사가 합병하게 되면 상대적 박탈감으로 타조직에서 온 상사에게 건의를 포기하고 투서를 생각하게 된다. 인사에 불만을 가진 소극적인 사람일수록 심하다.
누가 건의를 하여 내용을 살펴보면 별것도 아니고,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로는 건의내용이 엉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유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건의는 정정당당하고 멋있는 하의상달의 소통 수단이다.
경영진이 열린 마음을 갖고 직원들 의견에 귀를 열고 있으면 투서는 사라진다. 감사실이 억울하게 생각하는 조직원의 대변인 역할을 충실하게 하여도 외부기관에 투서하는 일은 줄어든다. 손쉽게 감사실로 투서를 하게 된다. 억울하고 화가 나면 별짓 다하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하여튼 투서는 비겁한 것이다. 투서는 소통의 부재에서 화풀이로 하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건의는 아름답고 정정당당한 것이다.
<약력>
제 4·5대 민선 충주시장
前한국농어촌공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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