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투자 우회적ㆍ노골적 압박에 주판알 튕기는 재계

김사선 / 기사승인 : 2019-07-01 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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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총수들과 간담회...현지 투자 기업 극찬 "대미 신규 투자 적극 촉구"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오전 10시 숙소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의 회동에서 한국 기업의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면서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오전 10시 숙소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의 회동에서 한국 기업의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면서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토요경제=김사선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달 30일 한국 기업인과의 간담회를 통해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인을 극찬하며 노골적 혹은 우회적으로 대미(對美) 투자 확대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여 재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한국을 직접 찾은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경제를 한국 대기업이 살려달라(?)는 당부를 면전에서 받은 까닭에 사실상 어떤 투자를 해야 할지에 대한 '답안지 작성'을 노골적으로 요구받은 한국 기업들이 주판알을 튕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간담회에서 혹자의 표현대로 한국 기업에 대한 역대급 '극찬'과 '투자 청구서'를 동시에 내밀었다.


재계 총수를 직접 불러 '사업 천재'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전략과, 대미(對美) 투자를 확대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우회적 메시지를 한꺼번에 던지는 이른바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읽히는 대목들이다.


이를테면 트럼프 대통령은 사의의 의미를 표한다며 간담회 앞자리에 앉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 SK그룹 최태원 회장, CJ그룹 손경식 회장 등을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격려이긴 하지만 투자 부담감을 확실하게 준 형국이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칭찬을 많이 받으며 '체면을 확실하게' 살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에 보답하듯 추가 대미(對美) 투자를 언급했다. "젠틀맨 신동빈"이라는 극찬(?)을 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몇 가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몇 가지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앞서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에 위치한 에탄크래커(ECC) 공장에 총 31억 달러(3조 6000억원)를 투자한 롯데그룹은 화학 분야와 호텔 분야를 다음 카드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신동빈 회장 외에도 현대차, 삼성전자, CJ, 두산, SK그룹을 빠짐없이 언급하며 "이 기업의 총수들도 모두 뛰어난 분으로 대미 투자를 통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고 언급, 미국에 대한 또 다른 투자를 강도높게 압박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지난해부터 앨라배마 공장에 3억 88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난 5월 엔진헤드 제조설비 증설을 마치고 가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이 투자 적기" "적절한 기회" "적극적으로 확대"라는 수식어를 던진 미국 대통령의 제안에 현대차의 고민 역시 깊어지게 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간담회에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최대 25% 추가 관세를 면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던 까닭에 현대차 역시 이에 화답하기 위한 추가 투자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J그룹은 당장 투자규모나 지역 등을 결정하지 않았지만 큰 틀에서 최대 10억 달러(약 1조 1500억원)대 식품·유통(물류) 사업 추가 투자 의사를 밝혔다.


31억이라는 롯데그룹과 비교하면 다소 적은 금액이지만 미국 현지에서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러 현지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CJ그룹의 투자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10억 달러 이상 투자 가능성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언급된 삼성전자 역시 내년까지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 15억달러를 투자해 생산 설비를 확충할 계획이고 미국 서부, 텍사스, 동부 등 미 전역에 진출한 SK그룹은 역시 트럼프 대통령과의 간담회가 아니더라도 오래 전부터 미국에 추가 투자를 단행할 가능성을 피력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조지아에 2022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16.5GWh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는 상황이고, 구체적으로 최태원 회장은 지난 1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사내 행사에서 "미국 전기차 공장에 최대 50억달러를 들여 6000명을 고용할 수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프라 투자와 함께 건설 경기 살리기에 나서면서 두산그룹의 건설장비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밥캣 역시 미국의 건설경기 부흥에 주체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두산은 지난 2007년 5조원을 투자해 당시 미국 중장비 생산 기업인 밥캣을 인수한 바 있다.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사실상 '세일즈 자리'였다고 입을 모으며 당분간 '젠틀맨' 대열에 들어서기 위해 투자 확대를 위한 국내 대기업들의 주판알 튕기기가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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