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그 후 3년 “뻔뻔한 살인자들”

전성운 / 기사승인 : 2012-01-20 15:05:31
  • -
  • +
  • 인쇄
집에서 쫓겨나 차가운 감옥으로

지난 20일은 용산참사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3년 전인 2009년 1월20일 새벽 용산 남일당 건물과 그 주변은 경찰의 진압 시도와 점거농성 중이던 철거민의 저항으로 아비규환 같은 상황이었다. 그때 망루에서 시뻘건 불길이 솟아올랐고 “사람이 있다”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제 일처럼 생생한 용산의 그날은 아직도 우리 눈에, 귀에, 머릿속에 새겨있다.


그날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을 죽인 정부는 대책을 세운다고 소란을 피웠지만 현 정부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지금껏 달라진 건 없다. 남의 목숨을 빼앗아 가면서 서둘렀던 철거 이후에도 용산 남일당 건물 일대는 여전히 허허벌판이다. 그러나 당시 구속된 철거민 8명은 중형을 선고받은 채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 있다.


▲ 용산 참사 3주기, 사건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악화 됐다. 악인은 출세했고 쫓겨난 사람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다.

지난 20일로 현대사의 비극인 ‘용산참사’가 벌어진지 꼭 3주기가 됐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철거민들은 여전히 차가운 감옥에 있고 유족들은 여전히 울부짖고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살인’은 유족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지만 재개발 사업과 철거민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곪아가고 있다.


◇ 3년전, 정부는 살인을 저질렀다


이명박 정권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2009년 1월19일 용산4지구 철거민 40여명이 “정부의 재개발 정책 반대”,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이튿날인 20일 경찰이 강제진압에 나섰고 난데없이 불길이 일었다. 옥상은 불바다로 변했고, 고 이상림씨를 비롯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숨졌다. 당시 부상자만도 23명에 달했다.


사건 이후 비난여론이 들끓었지만 무시하던 정부는 결국 2월10일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으로 여론을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당시 농성했던 철거민들에 대한 정부의 형사처벌은 계속 진행됐다.


검찰은 용산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이충연씨 등을 상대로 “참사 당시 망루 4층에 끝까지 남아 경찰특공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다량의 인화물질을 쏟아 부은 뒤 화염병을 던져 경찰특공대 소속 김남훈 경사를 숨지게 하고 경찰특공대원 13명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특수공무집행 방해 치사 등)를 적용했다.


이들은 같은 해 3월12일 시작된 1심 재판부터 3심까지 차례로 유죄가 선고받았다. 수많은 시민단체들과 인권관련 기관에서 “경찰이 철거민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며 철거민들을 변호했지만 대법원은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었고, 2010년 11월 대법원은 결국 이충연씨 등 철거민 7명에게 징역 4∼5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 책임지는 사람 없어 ‘참사는 현재진행형’


3년이 지난 지금,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220-1번지 남일당 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한 모습이다. 남일당 건물 일대인 용산 4구역은 지난해 초 철거가 마무리돼 텅 빈 땅으로 남아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을 뿐이고, 주변에 들어선 고급 주상복합 단지는 공터의 몇년 후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었다.


주변 상인과 경찰은 “이제는 별일 없이 조용하다”는 반응이다. 한 식당 주인은 “한동안 시끌시끌했지만 요즘은 조용하다. 가끔 손님들이 ‘그때 여기서 있었지’하고 얘기하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인근 파출소의 경찰관도 “3년이나 흐르다 보니 관심을 두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이제는 그 앞을 지나도 용산참사 현장인지 잘 모를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점거농성 참가자와 희생자 유가족에게 참사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용산참사로 숨진 고 이상림씨의 처 전재숙(69)씨는 “아직 할 일이 있다. 참사 진상 규명도 아직 되지 않았고 아들도 여전히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말을 꺼냈다. 전씨는 “해가 가도 바뀐 것은 전혀 없다. 있는 사람만 옹호받는 세상이다”라고 한탄했다.


참사 당시 사망한 고 윤용헌씨의 처 유영숙(53)씨는 “재판 결과들을 보면 참사 당사자들만 탄압받는 것 같다. 진압 총책임자인 김석기가 이번 총선에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치가 떨렸다”고 말했다. 아들의 눈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있던 유씨는 “둘째 아이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눈에 이상이 와 지금 두번째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며 “아들이 ‘아빠가 돌아가신게 믿기지 않는다. 그냥 여행가신 것 같다’라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외면도 그들에겐 서글픈 일이다. 설을 앞두고 정부는 “생계형 범죄와 관련된 955명을 사면하겠다”고 밝혔고 용산 철거민들은 “실형을 선고받은 동료들이 특사로 풀려나올 것”이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정부는 건설 입찰 비리 관련 행정제제 3472건에 대한 제제를 특별사면으로 풀어줬고, 그 소식이 알려지자 철거민들은 “개발사업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가둬둔 채 개발 비리를 저지른 건설자본만 특혜를 줬다”며 분노했다.


지금도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용산참사 유족들과 철거민들은 성명서를 통해 “무리하고 성급하게 공권력을 투입한 진압 책임자 김석기는 이명박 정권의 보은인사로 오사카 총영사가 되더니 8개월 만에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한나라당 경주지역 예비후보로 등록했다”고 비난했고, “법정에서 밝혀진 진실을 외면하고 검찰의 왜곡된 주장만을 받아들여 철거민들에게만 중형을 확정 판결한 양승태 판사는 대법원장으로 임명됐다”며 한탄했다.


◇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시급하다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정부의 재개발 정책 역시 유족들에겐 멍에로 남아있다. 용산4구역 개발은 참사 발생 3년이 지나도록 진척되지 않고 있다. 상도동, 명동, 북아현 뉴타운지역에서는 아직도 용역과 주민들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용산참사 이후 강제철거식 재개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하면서 재개발과 관련한 의미 있는 정책변화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세입자 재정착과 관련한 대책은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용산 3주기 추모준비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장례를 치르면서 용산참사는 갈등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아직도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데다 수많은 개발지역 현장은 여전히 또 다른 '용산'으로 남아있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칼국수집 ‘두리반’에서 열린 공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전면철거 방식의 현행 재개발 사업 속 개발에 대한 조급증과 그에 따른 폭력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누가 도시의 주인이고 어떻게 도시를 민주주의적으로 개발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야한다”고 전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강제퇴거금지법의 제정이다. 강제퇴거금지법이 제정되면 그동안 브레이크 없이 진행되던 재개발 사업을 더뎌지게 해 개발업체와 세입자들이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강제퇴거금지법이 있었으면 용산참사도 없었고, 북아현동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민이 영하 10도의 거리에서 노숙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며 “불쌍해서 아파해주는 것이 아닌, 나와 사회적 이해가 일치해 개발에 맞서는 사회적 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