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최봉석 기자] 2019년은 재계가 세대교체에 박차를 가한 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대기업 그룹사들을 중심으로 한 3·4세 경영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면서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전쟁이 펼쳐졌다.
과감한 조직개편과 세대교체로 위기 돌파를 위한 기류가 형성된 것인데, 다사다난했던 경제 흐름과 관련 정책들 속에서 1세대와 2세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3·4세대가 바통을 이어받는 그림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올해는 재계 큰 별들이 여럿 졌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구자경 전 LG그룹 회장이 타계했다.
먼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세계 경영' 신화에서 해외 도피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지난 9일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67년 자본금 500만원을 갖고 대우실업을 창업한 김 전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철학으로 거침없이 사세를 확장시켜 대우그룹을 1990년대 재계 2위로 키웠다. 그러나 외환위기 여파로 대우그룹은 2000년 초 해체됐고 분식회계 혐의를 받자 수년간 해외로 도피하다 귀국 이듬해인 2006년 유죄 선고로 복역했다. 2008년 특별사면 됐다. 말년에 베트남에 터를 잡고 해외 청년사업가 양성 사업에 주력했다.
국내 항공업계를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4월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한 병원에서 향년 70세 나이로 폐 질환 때문에 별세했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장남으로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대한항공 사장, 한진그룹 부회장, 대한항공 회장 등을 지내고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라 그룹 경영을 주도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키는 등 스포츠 지원에도 힘을 쏟았다. 지난해 말 폐 질환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던 중이었으나 3월 열린 대한항공 주총에서 사내이사직을 박탈당한 데 대한 충격과 스트레스 등으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다.
LG그룹 2대 회장인 고(故) 구자경 전 LG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14일 94세 일기로 별세했다.
고 구인회 창업주의 장남인 구 명예회장은 1947년 부친이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에 들어가 회사를 함께 일군 1.5세대 경영인이다. 부친 별세 이듬해인 1970년 회장에 올라 한국 기업 럭키·금성이 글로벌 기업 LG로 성장하는 토대를 닦았다. 그는 1995년 사명을 LG로 바꾸고 '세대교체'를 선언하며 물러났다. 최근 수년간 노환으로 투병하다 지난해 5월 장남 구본무 회장을 먼저 보낸 지 1년 7개월 만에 눈을 감았다.
이처럼 한국기업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잇따라 타계하자 재계는 올 한해 비통한 마음을 계속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다. 격동기 한국경제를 견인했던 1·2세대 경영인들이 비록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대기업 그룹사들을 중심으로 한 3·4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탄력을 받으면서 이른바 '헝그리 정신'의 창업가 정신의 분모 속에서 그룹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젊은 피' 수혈 작업이 본 궤도에 올랐기 때문.
일단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그룹이 세대교체를 이미 마친 데 이어 올해 연말 정기인사에 GS, 한화, LS 등 주요그룹 오너 3·4세들이 잇따라 경영일선에 전진배치 됐다.

재계 8위 GS그룹의 허창수(71) 회장은 지난 3일 그룹 정기 임원인사를 앞두고 용퇴했다. 그룹 회장 임기가 2년 이상 남았지만 "글로벌 감각과 디지털 혁신 리더십을 갖춘 새로운 리더와 함께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며 이 같이 결정했다.
후임 회장인 허태수(62) GS홈쇼핑 부회장은 허 회장의 막냇동생으로, 그룹 전반에 IT기업의 혁신 문화를 전한 디지털 전도사로 알려져 있다.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인 허윤홍(40) GS건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4세 경영'이 본격화했다. 지난해 말에는 GS칼텍스 허동수 회장의 장남인 허세홍(50) 대표가 사장으로 승진했다.
한화그룹에서도 '3세 경영'에 시동이 걸렸다. 지난 2일 발표된 인사에서 김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6)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5년 전무로 승진한 지 4년 만에 부사장에 올랐다. 김 부사장은 내년 1월 출범하는 한화케미칼과 한화큐셀의 합병법인인 한화솔루션(가칭)의 전략부문장을 맡는다. 태양광을 비롯해 석유화학, 소재까지 아우르는 핵심 직책이다.
재계에서는 김 부사장이 한화그룹의 화학 계열사 전반을,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가 금융 계열사를, 삼남인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이 건설·리조트 부문을 이끄는 승계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김동원 상무는 이번에 승진하지 않았지만, 최고디지털전략책임자(CDO)로서 회사의 미래 전략 수립을 지휘하며 입지를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폭행 사건 이후 경영에서 물러나 개인 사업을 하는 김동선 전 팀장의 복귀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LS그룹에서는 고(故)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장남인 구본혁 LS니꼬동제련 부사장이 3세들 중 처음으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구 부사장은 최근 인사에서 예스코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또한 LS그룹 3세들이 모두 승진했다.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장남 구본규 LS엠트론 전무가 부사장으로,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장남 구동휘 ㈜LS밸류매니지먼트부문장(상무)는 전무로, 구자철 예스코 회장의 장남 구본권 LS니꼬동제련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한진그룹 3세대인 조원태(44) 한진그룹 회장은 선친 고 조양호 전 회장 별세 후 곧바로 경영권을 이어받아 4월 회장에 취임했다. 조 회장은 최근 단행한 첫 임원인사에서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꾀했다. 조 전 회장 시절 임명됐던 임원들이 물러나고 1960년대생 임원들이 대거 중용됐다.
LG그룹은 지난해 6월 구본무 회장이 별세함에 따라 다소 갑작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져 '뉴LG'로의 전환 작업이 한창이다.
LG가(家) 4세인 구광모 당시 상무가 40세의 나이로 회장에 취임했다. 구광모 회장은 취임 후 첫 연말 인사에서부터 젊은 총수의 면모를 보여주는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LG화학 최고경영자(CEO)에 3M의 신학철 수석부회장 영입, 비핵심 사업에서의 철수와 자동차부품·인공지능·로봇 등 신성장동력으로의 집중 등이 대표적이다.
물류계열사 판토스 지분 매각, 서브원의 MRO(소모성 자재 부문) 사업 분할, LG CNS 지분 일부 매각 등을 통해 사업 전문화와 함께 '일감 몰아주기' 논란도 해소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뉴LG' 체제를 위한 쇄신은 지난달 28일 단행된 구 회장의 두 번째 인사에서도 대대적인 세대교체로 이뤄졌다.
LG디스플레이 한상범 부회장이 실적 부진으로 퇴임한 데 이어 LG전자[066570]를 이끌어온 '가전신화' 조성진 부회장 등 회사를 대표하던 인물들을 교체해 파격을 선택했다.
코오롱그룹도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이웅열 회장이 회사를 떠나겠다고 선언하면서 '4세 경영' 신호탄을 올렸다. 이 인사로 이 회장의 장남 이규호 ㈜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고, 코오롱 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됐다.
다만, 올해 공정거래위원회는 구광모 회장을 총수로 지정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웅렬 전 회장도 총수로 유지했다. 이규호 전무는 올해 만 35세로 아직 어리고 계열사 지분도 거의 없는 상태여서 실제 경영권을 물려주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총수에 오른 오너가 3세·4세는 삼성전자 이재용(51) 부회장, 현대차그룹 정의선(49) 수석부회장, 두산그룹 박정원(47) 회장 등이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 투병 이후인 지난해 5월 이 회장을 대신해 그룹 총수로 지정됐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공정위가 지정한 공식적인 총수는 아니지만,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하며 경영을 이끌고 있다.
이처럼 3세와 4세 경영이 본격적으로 문을 연 상황에서 주요기업들은 올해 공격적인 투자를 전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경제 위기론과 한일 무역 갈등 여파에도 불구하고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확대는 물론, 기업 차원에서도 고객과 사회로부터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6월 전자계열사 사장단을 소집해 주재한 '글로벌 경영환경 점검·대책 회의'에서 "지난 50년간 지속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어려운 시기에도 중단하지 않았던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라며 지난해부터 잇따라 내놓은 중장기 투자·고용 방안의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리고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10월 10일 충남 아산의 탕정사업장에서 총 13조 1000억원 규모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투자 계획을 밝혔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지난해초 항소심 집행유예 선고로 석방된 이후 대규모 투자 방안을 계속 내놓으며 '미래먹거리' 발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4월에는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연구개발(R&D) 및 생산기술 확충에 총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 5000명을 채용하는 내용의 '반도체 비전 2030'을 선포했다.
현대자동차는 향후 6년간 미래차 기술 등에 61조 1000억원을 투자해 2025년 자동차부문 영업이익률을 8%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중장기 계획을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이원희 사장 주재로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밝혔다.
이를 통해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과 서비스를 양대축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해서 지능형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기존 사업 역량 제고에 41조 1000억원, 전동화·모빌리티·자율주행 등 미래기술 관련에 약 2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LG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LG화학을 통해 지난 7월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인 '구미형 일자리'에 5000억원을 투자했다. LG화학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구미국가산업5단지 내 부지 6만여㎡에 500억원을 투자해 연간 이차전지 양극재 6만t을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한다. 공장 건설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고용인력은 1000여명에 달할 전망이다.
구미 지역은 이차전지나 소재산업과 연관된 기업, 기반산업이 많아 시너지 효과 창출이 예상된다. 더불어 LG화학 구미 공장을 건설하는 과정에 지역의 수많은 협력업체, 지역기업이 참여함으로써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을 이뤄 나간다는 계획이다.
효성은 지난 8월 탄소산업과 효성 전주공장에 2028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탄소산업 메카로 만들고 나아가 제조업 르네상스 전진기지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지난 5년간 공정과 성능 면에서 효성의 탄소산업이 글로벌 수준에 상당히 접근했기 때문에 올해 초 증설 투자를 결정하고 현재 골조를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효성은 2028년까지 10개 라인 증설을 완료하면 연간 2만 4000t의 탄소섬유를 생산, 세계 3위의 시장점유율(10%)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 중이다.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 2300개 이상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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