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보석, 콜롬비아 카르타헤나(Cartagena)

박진호 / 기사승인 : 2014-07-21 12: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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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역사가 시간을 지나 보석으로 응결된 도시

[토요경제=박진호 기자] 북미와 남미를 잇고 있는 파나마와 맞닿아 있는 콜롬비아(Colombia)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남미의 국가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정확한 정보도 없는 가운데 치안이 불안하고 여행을 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는 그저 먼 나라일 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약과 관련한 마피아 조직, 테러리스트들의 무장투쟁 등으로 우리 정부 역시 대부분의 제역에 ‘여행 자제’나 ‘여행 제한’을 권유하고 있다.


콜롬비아의 치안
외국을 여행할 때 ‘안전’에 대해 조심하는 것은 당연한 사항이지만 반면, ‘사람이 사는 곳’ 이라는 역지사지의 생각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콜롬비아는 국제적인 마약 유통 조직의 실명이 국제 사회에 거론되고 미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전쟁을 선포할 만큼 국제적으로 ‘안전’과 ‘치안’에 대해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지난 1993년 12월, 콜롬비아와 미국의 군경에 의해 사살된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는 ‘콜롬비아의 마약왕’으로 불리며, 콜롬비아 최대 마약 밀매 조직 ‘메데인 카르텔’을 창설하고 자택에 비행장, 사설 군대, 동물원까지 소유하기도 했다. 이러한 범죄세력 외에도 좌익 게릴라 세력인 ‘좌익무장혁명군’(FARC), 그리고 ‘극우민병대’(AUC) 등으로 인해 정치상황이 불안하다.
그러나 이러한 반정부 세력들도 대체적으로 관광객들의 안전에 대해서는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 아이러니한 나라가 콜롬비아다. 꾸준한 관광수익 증대가 정부와 국가는 물론 결국 자신들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불안한 치안 속에서도 주요 대도시는 비교적 안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및 파나마 국경지역을 비롯한 콜롬비아의 상당 지역에 대해서는 여행 철수 권고까지 하고 있지만 보고타, 메데진, 까르타헤나, 부카라망가, 산타마르타, 바랑키야, 아르메니아, 뻬레이라, 마니살레스 등 대도시에 대해서는 ‘여행 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남미의 열정을 담았다
최근 콜롬비아가 우리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것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이었다. ‘인간계 최강병기’라 불리던 스트라이커 라다멜 팔카오(Radamel Falcao)의 결장에도 불구하고, 하메스 로드리게스(James Rodriguez)가 5경기에서 6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오르는 등 인상적인 경기를 보여줬다.
조별리그 C조에서 3전 전승을 기록하며 조 1위로 16강에 오른 콜롬비아는 16강에서 우루과이를 2-0으로 제압했다. 8강에서 개최국 브라질에게 1-2로 패하며 탈락했지만, 8강에서 그치기에 아쉬운 팀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월드컵 종합에서도 전체 순위 5위에 올랐다. 또, 골을 넣을 때마다 선수들끼리 모여 펼치는 흥겨운 단체 군무 세레머니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남미의 열정과 흥겨움을 그대로 담아냈던 콜롬비아 대표팀은 친절하고 우호적인 콜롬비아의 문화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역사를 품은 도시 카르타헤나
우리나라에 가장 잘 알려진 콜롬비아의 도시는 수도인 보고타이다. 그러나 여행 경험자들은 콜롬비아로 떠나려는 여행자들에게 메데진(Medellín)과 카르타헤나(Cartagena de Indias)를 추천한다.
메데진은 아름다운 공원과 근대적인 공원이 인상적인 콜롬비아 제 2의 도시이며, 해발 고도 1,500m의 안데스 산맥 고원 지대에 위치한 안티오키아 주의 주도다. 또한, 콜롬비아 뿐 아니라 남미 여행 전체를 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손꼽히는 카르타헤나는 콜룸비아의 북쪽, 카리브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주요 인류사를 써왔던 카리브해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그 역사도 깊은 카르타헤나는 풍부한 사냥감과 온화한 기후 조건으로 일찍부터 문명이 발전됐고, 남미 원주민들의 문화도 발달했다.
1533년 에스파냐의 정복자 페드로 데 에레디아(Pedro de Heredia)에 의해 유럽의 식민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는 항구의 발전과 함께 슬픈 식민 역사가 이어지게 됐다.
카르타헤나는 카리브해에 위치하고 있지만 만의 내부에 위치하고 있어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는 천혜의 조건으로 인해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San Juan), 쿠바의 아바나(Habana)와 함께 대서양의 주요 항로 거점 항구로 자리 잡았으며, 콜롬비아와 페루 일대의 광산에서 채굴된 금과 은을 유럽으로 운반하고 노예매매의 거점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로 인해 유럽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사략함대가 도시를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고, 도시 전체에 방어시설이 건설됐다.
성벽과 낭만의 공존
이 때문에 카르타헤나에는 11㎞에 달하는 성벽, 음식 및 무기 저장고, 요새를 연결하는 지하 터널이 건설되었으며, 현재에도 ‘카르타헤나 성벽’(Cartagena Walls), 혹은 ‘스페인 성벽’으로 불리는 ‘라스 무리오스’(Las Murallas)를 볼 수 있다. 성벽에서는 마을과 카리브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해안에는 지난 1985년에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카르타헤나 항구와 요새 유적지가 있고, 산펠리페데바라하스 요새(Castillo San Felipe de Barajas)와 종교 재판소(Palacio de la Inquisición) 등이 위치하고 있다. 과거 식민 역사의 전쟁이 이어졌던 방어시설의 안쪽으로 마녀 재판이 펼쳐졌던 종교 재판소, 그리고 노예 매매가 성행했던 마차 광장(Plaza de los coches) 등, 도시의 모든 관광 자원들은 자신들의 슬픈 역사와 상처를 끌어안고 있다. 슬픔과 아픔의 역사가 긴 시간을 건너 뛴 현재에 이르러 이제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도시의 새로운 이름이 되었다.
카르타헤나는 성벽과 관광자원 외에도 알록달록한 화려한 색상의 도시 자체로도 관광객의 발길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스페인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들어선 거리는 원색의 화려함이 장악하고 있다. 모든 개발이 대항해 시대에 이루어진 만큼 처음 카르타헤나의 정복에 나섰던 스페인의 정취가 도시 전체를 덮고 있다. 현재 볼리바르의 주도인 카르타헤나의 이름 역시 스페인의 항구 도시인 ‘카르타헤나’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따라서 카르타헤나의 정식 명칭은 스페인의 카르타헤나와 구분하기 위해 ‘카르타헤나 데 인디아스’다.
남미의 열정은 유럽에서도 정열을 상징하는 스페인의 정신과 만나 카르타헤나에서 그 정점을 이뤘다. 그래서 카르타헤나는 ‘남미 속의 에스파냐’로 불린다. 특히 구 시가지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정취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으며, 남아메리카 전체에서 가장 광범위한 방어시설을 도시 전체에 구축하고 있다. 또한, 가장 근대화 된 도시의 역사로 유서 깊은 이름이기도 하다.
콜롬비아 북부의 관광과 산업 중심도시인 카르타헤나는 라파엘 누네즈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Rafael Núñez)을 통해 전 세계의 주요 도시들과 연결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갈 수 있는 직항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미국이나 스페인을 거쳐서 가야한다.
한 여름의 더위를 견뎌낼 수 있고, 형형색색의 도시를 즐길 줄 아는 이들에게 카르타헤나 이상의 축복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카르타헤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중독성이 강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그것은 ‘마약왕’의 나라라는 달갑지 않은 이름이 주는 이미지의 ‘중독’과는 별개의 것이다.

사진 : Hanami Sohn / HANAMI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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