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사교육 열풍의 '허상'...역효과 심각

김세헌 / 기사승인 : 2014-01-10 17: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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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뢰벨·몬테소리 교구품, 실제 교육철학과 ‘엇박자’...‘得보다 失’

[토요경제=김세헌기자] 내 아이를 위해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고자 힘쓰는 이 시대의 부모들. 누구보다 똑똑하고 야무져 보이는 신세대 부모들 역시, 한편으로는 과다 경쟁의 스트레스와 정보의 신뢰도에 대한 불안감으로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특히 영유아를 둔 엄마들은 학습력만 비대해지는 불균형한 아이가 아니라 감성, 창의력, 학습력 등이 골고루 성장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울 수 있는 비법을 찾기 위해 영유아 사교육으로 관심을 돌리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영유아 사교육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영유아사 교육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회적 우려 또한 높아지고 있다.


◇ 대부분 영유아가 ‘사교육’ 경험…영어 편중 ‘우려’


우리나라 영유아를 자녀로 둔 부모들 대부분은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 우남희 동덕여대 교수(아동학과)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신생아기 부모를 제외한 영·유아·아동기 부모들은 자녀 한 명에게 최소 1개에서 최대 7개까지 사교육을 시키고 있다. 평균적으로는 약 3.01개를 시키고 있었으며 영아기가 평균 1.53개로 가장 적고 아동전기가 평균 3.82개로 가장 많았다.


신생아기 부모들이 최초로 자녀에게 시킬 사교육으로는 ‘한글’이 30.0%로 가장 많았으며 영어 18.3%, 종합학습지 5.0%, 신체놀이 3.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실제로 영유아 부모들이 자녀에게 최초로 시킨 사교육의 종류와 거의 일치했다.


영·유아·아동기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최초로 시킨 사교육의 종류를 빈도수가 높은 순서대로 나열하면 한글 30.5%, 영어 12.3%, 종합학습지 11.8%, 신체놀이 9.8% 등의 순이었다.


하지만 사교육이 필요하다는 어머니 61명을 대상으로 사교육을 한 가지만 시킨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묻자 가장 많은 59.0%가 ‘영어’를 꼽았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진행하는 특별활동의 상당수는 ‘영어’ 교과에 치우치고 있으며 영유아 연령이 올라갈수록 이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특히 정부의 억제 정책과 경제불황 등으로 사교육비가 감소 추세로 돌아서자 사교육업체들이 영유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영유아 시기는 일상생활 속에서 신체와 정서, 사회성, 인지 등의 조화로운 발달을 이루기 위한 전인교육이 필요한 시기이고, 이에 따라 공통 보육·교육과정인 누리과정에서도 기본 생활 습관과 바른 인성을 기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유아 사교육, 특히 관련 상품은 지적 발달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발달단계를 뛰어넘은 학습을 시키는 등 영유아 교육의 본질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영유아 사교육이 ‘선행교육’과 ‘과잉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영유아 발달 단계에는 맞지 않고, 이것이 학습효과 뿐만 아니라 정서적 발달, 사회적 발달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면서 그 심각성은 날로 더해지고 있다.


◇ 도넘는 매체광고, 영유아 사교육 ‘부채질’


언론매체에서 유포되는 영유아 교육정보가 사교육업자를 중심으로 한 시장논리에 따라 교묘하게 확대 재생산, 부모의 소비욕구를 부추기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주요매체들에서 노출되는 영유아 사교육 광고성 콘텐츠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TV 매체 속 광고에서는 육아정보박람회 홍보가 중심을 이루고, 홈쇼핑에서는 유아교육교재에 대한 물량적 홍보가 주를 이루고 있다. 또 영유아 부모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은 일부 육아전문잡지 역시 사교육 상품의 직간접적 홍보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안교육 연구·활동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사교육포럼에 따르면, TV 매체 속에서 드러나는 영유아 교육 상품 실태를 살펴본 결과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총 30개의 광고가 방송됐다. 이중 유아교육박람회를 홍보하는 광고가 16건, 학습지를 포함한 교재교구 광고가 14건이었다.


유아교육박람회 광고가 주를 이룬 것은 박람회를 통해 영어교육, 한글교육 등 유아교육 제품과 관련 도서, 교육용 완구, 유아용품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과 박람회를 통한 관련 업체의 매출증대도 상당함을 엿볼 수 있다.


또 TV 홈쇼핑에서도 전집과 학습지 판매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쇼핑호스트들은 출판사 브랜드를 강조하고 있으며, 팝업북이나 사운드책 위주의 책 홍보를 통해 소비자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자사 계열사에 나온 제품에 더 많은 홍보와 채널 편성을 통해 수익을 높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카페와 파워블로거의 영향력이 막대한 인터넷매체를 통한 기업의 홍보성 광고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블로그나 인터넷 상품평을 믿고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계층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상화에서 파워블로거로부터 제공되는 영유아 사교육 상품은 이른바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고 있다. 실제로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육아카페 3곳인 ‘강남엄마vs목동엄마, 베스트맘 따라잡기’ ‘맘스홀릭 베이비’ ‘임출카페’의 경우 이러한 현상은 더 심각하다.


3개 유명 인터넷카페의 2~5일간 부모들이 관심있는 교육 콘텐츠 관련 문의 주제를 살펴본 결과, 가장 많은 부분이 ‘전집류’였다. 특히 영어 전집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월령별로 놀이와 놀잇감에 대한 관심도와 조기교육을 비롯한 학습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관련 게시판 대부분은 부모들이 체험단으로 선정된 상품 다수의 홍보성 글이 상당 부분 차지해 카페가 단순히 부모들의 육아정보 나눔을 넘어 상업성을 강하게 띄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사교육 업계 한 관계자는 “사교육 기업들은 유아 영어교육 관련 상품을 직간접적으로 광고하며, 부모는 자신의 자녀 교육 경험을 근거로 유아기 영어 교육이 효과적이라는 담론을 유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유아 영어교육의 주제는 어머니의 역할에 관한 것”이라며 “자녀의 영어 실력과 흥미는 어머니의 노력에 달려있다는 담론을 통해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죄책감과 좌절감을 느끼도록 하는 억압기제로써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영유아 사교육 상품 ‘교육이론 왜곡’ 심해


놀이학원과 영어학원, 프뢰벨과 같은 다수의 영유아 사교육 상품들은 다중지능이론, 뇌기반학습이론 등을 언급하며 상품을 홍보하고 있지만 이론 차용 과정에서 왜곡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유아사교육포럼에 따르면, 놀이학원은 ‘다중지능이론’, 영어학원 유치부는 ‘이머전 교육’, 교재 교구 상품은 ‘다중지능이론’, ‘뇌기반학습이론’, ‘프뢰벨과 몬테소리의 교육이론’ 등을 주로 차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이학원의 경우 대부분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을 차용하고 있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은 ‘인간의 지능은 단일한 요소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며 이에 따라 인간의 지능이 언어, 음악, 논리수학, 공간, 신체운동 등 독립된 8개의 지능과 1/2개의 종교적 실존지능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다양한 영역의 지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신체활동을 비롯해 음악활동, 표현미술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영어학원 유치부에서는 이머전 교육을 실시하면서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배울 수 있고 이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습득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 영어학원 유치부에서는 영어 외에도 수학과 과학 미술, 체육 등 모든 교과를 영어로 가르치고 원내에서는 영어만을 사용하게 하는 이머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또 단순 영어습득 외에도 인성과 창의성 등의 교육을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재 교구 상품의 경우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나 뇌기반 학습이론, 몬테소리와 프뢰벨의 교육이론을 많이 차용하고 있고 지능과 감성 계발 모두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으나, 대부분이 지능 위주, 뇌발달 위주로 구성돼 있고 스마트 앱과 멀티 학습기기 등을 결합한 상품도 상당히 출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놀이학원의 경우 교과화된 프로그램 중심의 집단수업으로 이뤄지며 한자와 영어 등 다분히 학습적 의도가 많아 편향된 지적교육을 비판한 다중지능이론과는 거리가 멀다는 설명이다. 또 영어학원 유치부에서 강조하는 결정적 시기 이론 등은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선아 숙명여대 교수(아동복지학과)는 “최근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 사교육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다중지능이론이 수학, 음악, 미술 등으로 교과화하기에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이라면서 “다중지능이론은 사실 수와 문자 등의 추상도구 사용이 가능한 유아기 이후의 시기에 유용한 것으로 유아기에 적용하기에는 이르다”고 강조했다.


또 영어학원 유치부는 ‘어릴수록 자연스럽게 외국어 습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결정적 시기 이론, 생득적 언어습득장치 이론 등을 차용하고 있는데, Chomsky, Penfield, Lenneberg 등의 이론은 논리적 추론에 근거한 것으로 실험적 연구에 의해서는 지지되지 않는 바가 많으며 특히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반면 연령대가 높고 모국어 수준이 높은 아동이 영어교육효과를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프뢰벨과 몬테소리의 교육철학을 차용했다는 교재와 교구 상품들의 경우도 해당 교육자 이름을 내세워 상품을 개발했으나 교육자와 직접적 관련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몬테소리가 애초 장애학생을 위해 개발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몬테소리 교육법은 영재교육이나 조기교육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형국이다.


뇌기반학습이론을 차용했다는 교재와 교구 상품들은 아동의 뇌발달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것보다는 똑똑한 아이를 기르기 위한 효과적 방법으로 인식, 뇌과학 연구가 잘못 해석되고 성급하게 적용돼 오히려 뇌발달에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현재 영유아사교육시장에서 발빠르게 유아교육전문가를 접촉해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면서 “이론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지만 이론을 차용하는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영유아 시기에는 상상적 사고, 이를 위한 우연적이고 비체계적인 일상경험, 또래와의 상호작용 등이 가장 중요한데 놀이학원 등의 사교육 상품에서는 영유아가 경험을 선조직화해 연령과 단계에 따라 배치하고 교과나 시간별로 분절이 이뤄져 일상과 교과, 인성과 학습의 분리가 있어난다”고 설명했다.

◇ 실정에 맞는 영유아 사교육 관련 법제정·교육환경 필요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의 구조는 팔아야할 상품이 명확한 상태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학습이론을 차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유아시기의 경우 이러한 이론들은 초보 엄마에게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해외 사례와 같이 영유아 발달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989년 채택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어린이는 한 개인으로 법적으로, 시민으로, 사회적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고, 어린이 자신이 경험의 근원이며 지식구성자로서 권리가 있다. 미국 소아과학회(AAP) 2011년 권고문에 따르면 2세 미만 아이들의 미디어 사용 억제를 권하고, 체계화되지 않은 놀이시간이 어떤 전자 미디어 노출보다 두뇌 발달에 중요함을 언급하고 있다.


반면 우리 헌법에는 아동 존재의 언급 자체가 이뤄져 있지 않으며, 아동의 사교육 시간과 방법, 강도 등에 대한 아동의 권리 차원의 접근이 미흡한 실정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는 “영유아 사교육과 관련해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하며, 부모들의 건강한 양육정보 나눔과 확산이 절실하다”며 “특히 영유아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남희 동덕여대 교수는 “유아들의 발달에 맞지 않는 과도한 조기 교육은 유아들의 정서적, 인지적 문제뿐 아니라 정신 병리적인 문제까지 일으키고 있다”며 “아이들이 발달에 맞게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마음껏 뛰놀며 그 나이에서 배워야 할 예의범절과 인성교육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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