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탤런트 정유미(28)는 지난해 가을부터 겨울까지 시청자들을 울린 SBS TV ‘천일의 약속’의 ‘노향기’다. 이후 5개월여 만에 같은 방송사 수목극 ‘옥탑방 왕세자’의 1인2역 ‘세자빈 화용’과 ‘홍세나’로 돌아왔을 때 시청자들은 멘붕, 즉 멘탈붕괴를 겪어야 했다.
그토록 순수하고 착했던 향기는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여동생에게 세자빈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실수를 가장해 여동생의 얼굴을 인두로 지지거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여동생을 몰래 트럭에 태워 정처 모를 곳으로 떠나보낸 세나가 남아 있었다.
물론 그런 몹쓸 짓은 어른 ‘화용’이나 세나가 한 것이 아니라 어린 화용이나 세나(김소현)가 했던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의붓 여동생 ‘박하’(한지민)가 돈 많은 친엄마를 못 만나도록 온갖 훼방을 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친딸인 것처럼 위장하거나 용태용의 할머니 ‘여 회장’(반효정)를 사고로 죽게 하고도 모른 척한 것 등은 어린 세나 저리가라였다.
“사실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우려해주셨죠. 남들은 좋은 이미지를 얻고 싶어서 애쓰는데 왜 하느냐구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나도 악역을 해보고 싶은데, 하면 잘할 수 있는데 왜 나한테는 기회가 안오는 것일까. 너무 순둥이 같아 보여서인지 그런 연기를 해볼 여지 조차 안 주시는 것 같아 답답했어요. 그런데 기적처럼 제안이 왔고, 시놉시스도 너무 재미있었으니 앞뒤 재지 않고 바로 결정했죠.”
정유미는 화용과 세나를 만났을 때 그 강렬함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300년 전의 화용이나 현재의 세나 모두 같은 악녀라는 것에 끌렸어요. 만약에 제 자신이 악녀 역할을 한다는 것이 꺼려졌다면 세나의 악행이 이어질 때 살살하려고 했을 거에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답니다. 그래서 처음 어린 화용이나 세나가 했던 그 악녀적인 이미지를 이어가려고 노력했지요.”
우습게도, 욕을 먹으면서 흐뭇해 했다. “일부 시청자들이 ‘홍세나 때문에 보기 싫다’, ‘홍세나는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욕할 때 섭섭하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놓였어요. ‘아, 내가 제대로 하고 있구나’ 싶었거든요. 당연히 ‘욕 먹어야’ 되는 캐릭터였으니까요.”

물론 정유미도 사람인 만큼 마음 한 구석에 불안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작가님이 마지막회에서 세나가 박하에게 간 이식을 해주는 것으로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했답니다. 세나 못잖은 악행을 저질렀던 용태무는 방송에는 개과천선한 장면이 아예 나오지 않거든요. 원래는 유치장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찍었는데 20회에서 300년 전 사건을 풀어가야 해서 그만 편집돼버렸어요. 그 때문에 (용)태무를 연기한 (이)태성이는 끝까지 악인으로 남게 된 거죠. 저는 시청자들로부터 용서를 받을 기회를 갖게 돼 태성이에게 미안해지네요.”
이번에 제대로 된 악역 연기를 보여준 정유미의 다음 바람은 역시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해 연기의 폭과 깊이 면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다. 착한 캐릭터로 최대한 빨리 되돌아 오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고향인 부산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는 할머니를 위해서다.
“할머니께서는 제가 영화 하는 것보다 TV드라마에 나오는 것을 더 좋아하세요. 멀리 떨어져 있지만 TV를 켜면 나오니 반가우신가 봐요. 대하 드라마 나오기를 정말 바라신다니까요. ‘옥탑방 왕세자’ 촬영을 마친 뒤 사인회를 하러 부산에 갔다가 할머니를 뵈었는데 역시나 할머니께서는 여전히 ‘향기 할머니’로 불리고 싶어하시지, ‘세나 할머니’로는 불리고 싶어하지 않으시더라구요. 그래서 할머니가 더 많이 자랑하실 수 있도록 착하고 예쁜 캐릭터를 하고 싶어요. 그래도 세나를 하면서 향기 때보다 예쁜 옷도 많이 입고, 고운 세자빈으로 꾸미고 나온 것은 만족스러워 하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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