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핵심 주택정책인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주변시세에 비해 저렴하지만 주택시장 침체가 워낙 심각한 탓에 장점이 별로 부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권을 제외한 수도권 보금자리주택은 대거 미분양으로 남았다. 이런 상황 탓에 얼마 전 민간 아파트처럼 선착순 분양하는 보금자리주택도 등장했다. 고양 원흥지구, 인천 서창2지구, 의정부 민락2지구, 호매실지구 등에서다. 이 지역 보금자리주택은 계약자가 층ㆍ향을 고를 수 있다.
심지어 이미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살 수 있는 보금자리주택도 있다. 무주택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공적자금 지원을 받아 추진된 보금자리주택의 원래 취지가 크게 퇴색한 것이다.

◇ 화려한 과거는 가고…
보금자리주택의 출발은 화려했다. 지난 2009년 10월 처음 분양을 시작한 이래 청약 접수 때마다 수십 대 일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등, 높은 인기를 보였다.
보금자리주택의 인기는 민간 주택업체에게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주변 시세의 50~85%로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니 당해낼 방법이 없었던 것.
분양대행사 이삭디벨로퍼 이기점 팀장은 “수도권 곳곳에서 분양 대행을 하면 수요자들이 반드시 보금자리주택과 비교했다”며 “수도권에서 분양한 민간 아파트는 대부분 보금자리주택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보금자리주택 공급 이후 주택 수요자들의 인식은 크게 달라졌다. 비교 대상이 되는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를 비싸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더 이상 서둘러 집을 살 필요를 못 느끼게 된 것이다.
정부는 매년 15만 가구씩 2018년까지 150만 가구의 보금자리주택을 선보이겠다고 약속하고 실제로 지난해까지 43만 7000가구(수도권 30만 1000가구)를 공급했다. 좋은 입지에 시세보다 싼 아파트가 계속 분양되고 앞으로도 쏟아지는데 굳이 지금처럼 침체된 주택시장에서 민간 아파트를 살 이유가 없는 셈이다. 최근 집을 사지 않고 전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주택업계의 한숨은 깊어졌다. 미분양은 해소되지 않았고 집값 하락세는 계속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등 건설ㆍ주택단체들은 죽어가는 시장을 살리려면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줄여야 한다고 정부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정부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시장 환경은 달라지고 있었다. 국내외 경기 상황은 나빠지고 수도권 집값 하락세는 계속 이어졌다.
보금자리주택 청약 수요도 2차 지구 사전예약 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강남 내곡지구와 세곡2지구는 첫날 모두 마감됐지만 경기권 4개 지구는 3순위까지 1000가구 이상 미달된 것이다. 지난 2011년 11월 고양 원흥지구 본청약에서는 사전예약 당첨자의 절반이 넘는 994명이 청약을 포기했다. 올 초엔 ‘로또’로 통한 위례신도시 보금자리주택도 사전예약자의 21%가 본청약을 하지 않았다.
사업 주체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업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는 이미 100조 원을 넘었고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위한 토지보상금에 큰 부담을 느꼈다. 대표적인 예로, 3차 지구인 광명시흥은 보상비만 9조 원에 달해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남 감북도 보상 문제로 지구계획수립이 1년 연기됐다.
◇ 사업주체 추가… ‘폭탄 떠넘기기’?
그럼에도 정부는 하반기 보금자리지구 2곳 추가 지정 등 연 15만 가구 보금자리주택 공급 계획을 변함없이 밀어붙일 모양새다. 최근 정부는 민간 건설업계가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8월부터 민간이 공공택지뿐 아니라 기존 보유 택지에서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자원공사ㆍ철도공사ㆍ철도시설공단ㆍ제주개발센터ㆍ대한주택보증ㆍ농어촌공사ㆍ공무원연금공단, 이렇게 7개 공공기관에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하도록 사업시행자를 늘리면서 민간도 포함시켰다. 이들 공공기관은 역세권 개발ㆍ제주도내 주택건설ㆍ시공 중 부도가 난 택지 활용 등 설립 근거법령에 따라 시행할 수 있는 보금자리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당초 정부의 입법예고안에 포함됐던 수자원공사는 제외됐다.
보금자리주택 공급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공기업과 민간 건설업체를 동원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잇달았다. LH가 자금난으로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없게 되자 부담을 넘기려고 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민간 건설사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택시장을 LH가 다 망쳐놓고 이제 와서 민간이 좀 맡아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남권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사업성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다. 보금자리주택이 처음 공급될 때하고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민간이 보금자리주택사업을 하기엔 규제도 많다. 민간은 정부 추진 사업과 달리 그린벨트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 상수원보호구역, 자연보전권역의 대규모 토지 등에서도 제한을 받는다. 사업대상지 토지를 3분의 2 이상 미리 확보해야 하고 공기업 등 공공 시행자가 자본금 50% 이상 출자하는 기준도 따라야 한다.
물론 보금자리주택인 만큼 분양가는 주변시세의 80% 수준에 묶어야 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민간택지 조성비가 공공택지보다 높은데 주변시세의 80%를 맞추면 사업성이 있겠느냐”며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로 보금자리주택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공기업도 비슷한 입장이다. 한 공기업 본부장은 “솔직히 왜 우리가 보금자리주택의 시행기관이 됐는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공기업 담당 부장은 “우리 회사는 주택사업과 전혀 관련 없는 업무를 하는 회사”라며 “보금자리주택사업은 우리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공기업 부장은 “LH 부채의 상당한 비중이 보금자리주택에서 온 게 아니냐”며 "사업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억지로 들어가야 할까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공사’)가 급증하는 부채로 인해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보금자리 주택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내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2011년 기준 LH공사의 부채는 130조원으로 총 국가부채의 3분의 1에 해당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그는 “LH공사가 재정난으로 채권발행조차 어려워지자 정부가 LH공사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LH공사법 개정안’을 2010년 날치기 통과시켰다”고 주장했다.
임 의원은 LH공사 측의 부채 주 요인은 주택공사 시절부터 수십 년간 추진해온 국민임대주택사업의 적자구조에 있다는 지적에 대해 “총부채 130조 원 중 기타(신도시 및 택지개발사업)사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45% (58조 7000억원)로 가장 크고 임대주택사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9%(38조4 000원), 보금자리주택사업이 15% (19조7000억원)순”이라고 반박했다. 또 “LH공사는 임대주택사업 적자구조를 앞세우고 부채에 악영향을 끼치는 보금자리주택사업을 계속해서 추진해 왔다”고 말을 이었다.
임 의원은 “보금자리주택사업은 민간경쟁시장에는 엄청난 물량공급과 환상을 심어 더욱 큰 혼란을 조성했다”며 “서민주택 취지에 맞지 않는 보금자리주택은 폐지하고 하루속히 분양전환이 가능한 공공 임대아파트 등 임대아파트 위주로 사업을 전환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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