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에 휘말렸던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이 일단 한숨을 돌렸다.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의원총회 결과 제명을 면한 것이다. 이로써 ‘종북 논란’과 ‘계파 갈등’의 중심에 섰던 두 의원은 당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두 의원이 ‘의원직’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 소식을 들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측에서 자격심사 수순에 돌입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두 의원이 당적을 유지하게 됐다는 소식이 새누리당에는 큰 호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간발의 차로 제명 무산… ‘버티기’ 일단 성공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의 제명안 처리를 위해 열린 통합진보당 의원총회에는 13명의 의원이 모두 참석했다. 시작부터 신당권파와 구당권파 간 기싸움이 팽팽했다. 심상정 원내대표가 이석기 의원에게 악수를 세 번이나 청했지만, 이 의원은 “됐습니다”라며 거절했다. 오전 8시에 시작된 의총은 의원들의 상임위원회 참석과 삼성 백혈병ㆍ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 일정을 이유로 10시45분께 정회됐다.
이후 의총은 오후 3시30분경 이상규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다시 열렸다. 의총 시작과 함께 이석기 의원은 구당권파인 김미희 의원과, 김재연 의원은 서기호 의원과 함께 등장했다. 하지만 오후에도 회의가 3번이나 정회되는 등 진행에 진통을 겪었다. 의원들은 회의 내내 무거운 표정으로 서로 대화도 잘 나누지 않았다. 김재연 의원은 눈시울을 붉힌 채 잠깐 의총장을 나오기도 했다.
오후 6시30분쯤 제명안이 무기명투표로 표결에 부쳐졌다. 결과는 출석의원 12명 중 찬성표 6표, 무효표 1표, 기권 5명으로 부결됐다. 의총 직후 심상정 원내대표가 침통한 표정으로 먼저 의총장을 빠져나갔다. 제명안 처리 결과를 묻는 취재진에게도 일절 답하지 않았다. 노회찬 의원은 다른 일정 때문에 의총장을 먼저 빠져나갔다.
이어 이석기 의원이 의총장을 나와 “진보가, 진실이 승리했다”고 주장하며 심경을 밝혔다. 김재연ㆍ김제남 의원은 의총이 끝난 후에도 20분가량 의총장에 머물렀다. 김재연 의원이 먼저 의총장을 나와 어두운 표정으로 “당이 상처를 딛고 통합과 단결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늦게 의총장을 나온 김제남 의원은 이후 지인과 만나 울먹이면서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직자들은 이를 두고 “사실상 그가 무효표를 던졌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구당권파와 신당권파는 두 의원의 제명안 처리가 무산된 데 대해 반응이 엇갈렸다. 구당권파는 ‘당의 통합’을 새삼 강조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 청구를 진행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반면 신당권파는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신당권파 측 박원석 원내대변인은 사퇴 의사를 밝히며 “당의 방침을 의총에서 결정짓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한편 통합진보당은 심상정 원내대표를 비롯한 신당권파 측 원내지도부가 사퇴하면서 또 다른 난관을 맞았다.

◇ 당원 자격 사수했지만… 의원직 유지는 미지수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에 휘말렸던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이 통합진보당 의원총회 결과 제명을 면했지만 국회 차원의 자격심사를 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새누리당은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내곡동사저 특검, 언론사 파업 청문회 등에 앞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를 통해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를 먼저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홍일표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의원 제명안으로 빨리 가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홍 원내대변인은 “진보당의 결정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는데 그동안 민주당이 진보당 눈치를 보느라 의원 제명안 상정을 주저해 왔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으니 민주당이 빨리 협조해야 한다”며 자격심사에 이은 의원 제명 절차를 속히 밟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민주당 역시 자격심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의총 결과에 대해 “유감이다. 국민이 오늘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두 의원은 당 비례대표 경선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국회 차원의 자격심사 대상이다.
일단 강창희 국회의장 역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다면 자격심사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자격심사에 합의한다면 강 의장은 현행 국회법에 따라 두 의원을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하게 된다.
윤리특위는 두 의원을 비롯해 통합진보당 의원들을 징계대상자와 관계의원 자격으로 출석시켜 관련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두 의원은 직접 해명하거나 다른 의원을 통해 하여금 소명할 수 있다. 이 경우 두 의원은 해명이 끝난 후 회의장에서 퇴장해야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윤리특위는 강 의장에게 징계 심사보고서를 제출하게 되고, 강 의장은 접수한 심사보고서를 즉시 본회의 표결에 부쳐야한다. 본회의는 심사보고서를 바탕으로 두 의원의 국회의원 자격 유무를 의결로 결정하되 제명이 확정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제명 찬성표를 던져야한다.
그러나 자격심사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은 윤리위에서 자격심사를 완료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리고 통과가 된다 해도 국회 본회의에서 3분의 2 이상 의원들의 찬성이 있어야 결정이 난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또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두 의원 자격심사 시도를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와 내곡동사저 특검, 언론청문회를 무산시키기 위한 작전으로 보고 있다.
◇ 이ㆍ김 ‘버티기’에 부담 느끼는 민주당… 야권연대 ‘삐걱’
통합진보당 이석기ㆍ김재연 의원 제명안 부결 사태로 인해 야권연대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예고되고 있다. 대선을 불과 140여 일 남겨 놓은 상황에서 외연 확대가 절실한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경선 부정을 저지르고 종북 의혹을 받고 있는 구당권파 인사들이 버티고 있는 정당과 선을 그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줄곧 제시한 야권연대의 기준점은 이석기ㆍ김재연 두 의원의 제명이었다. 가뜩이나 장외 주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중도층을 파고드는 상황에서 구당권파가 포함된 통합진보당과 손을 잡을 경우 대선 정국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통합진보당 심상정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빨리 매듭을 지어줘야만 우리도 움직일 수 있다”고 압박했다. 이해찬 대표도 여러 차례 “애국가를 부정하는 세력과는 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경고에도 두 의원 제명안이 부결됨에 따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야권연대 폐기론’이 한층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야권연대는 4ㆍ11총선에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득표율 합계가 여당 득표율보다 앞서게 한 비결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 의원을 제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60% 선에 이르고 있다.
물론 대선이 임박해지면 야권연대 카드가 다시 거론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오늘 결정을 국민들이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대단히 의심스럽다”는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의 말처럼 적어도 상당 기간 야권연대 균열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민주당이 그나마 연대할 수 있는 통합진보당 신당권파 역시 당장 이번 사태 수습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옛 민주노동당 시절을 포함해 8년 만에 당권 교체를 한 신당권파 지도부의 운명도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됐다. 당장 이번 사태를 놓고 강기갑 대표와 심상정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책임론이 고개를 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심 원내대표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이 정도로 끝나기엔 사태의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여기에 조건부 지지 입장을 밝혔던 민주노총 등의 도미노 탈당 사태가 현실화되면 단순한 책임론으로 끝나기 힘들어 보인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두 의원 제명안 처리가 지지부진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미 탈당계를 제출했었다.
◇ 야권 연대 균열… 새누리당엔 ‘호재’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내에서 이석기ㆍ김재연 의원 제명이 부결된 것을 계기로 야권 연대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홍일표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이 아직도 통진당과의 야권연대를 대선 전략으로 활용하겠다는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통진당과 손을 잡는다면 국민은 민주당의 손을 뿌리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민주당은 개원하면서 약속한대로 7월 국회가 끝나기 전에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안을 조속히 처리하는데 협조해야 한다”며 “자기 입맛에 맞는 안건 처리만 촉구하고 불리한 것은 외면한다면 이중 잣대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은 두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 청구안을 반드시 민주당과 함께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홍 대변인은 “원구성 협의 과정에서 새누리 15인, 민주 15인이 동수로 청구안을 제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며 “의원 제명에는 재적 의원 2/3가 동의해야 하는데 새누리당 단독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만큼 민주당이 약속대로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이번 이ㆍ김 제명 부결 사태는 새누리당에 오히려 호재”라고 분석했다. 그는 “만약 그들이 제명됐다면 통합진보당은 ‘종북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씻어낼 수 있었을 것이고, 민주통합당도 그들과의 연대를 계속해, 총선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애국가를 부정하는 의원이 속한 정당, 그들과 손잡은 또 다른 정당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새누리당 입장에선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