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자유,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정해용 / 기사승인 : 2009-08-03 14: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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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잠잠해졌지만, 한때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는 재일 한국인의 지문날인 문제로 민족감정이 극히 대립되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에는 일반 국민들에게 지문을 찍어 등록하도록 하는 제도가 없다. 유독 일본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 대하여 지문을 날인한 ‘외국인 등록증’이라는 걸 소지하도록 강제하는 법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외국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헌데, 헌데 궁금한 게 있었다. 대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지문 날인을 강요하기에 이것을 인권유린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을까.


우리나라 안에서는 모든 국민이 만 17세가 되면 동사무소에 나가 주민등록이란 걸 한다. 열손가락 지문을 찍고 사진을 붙여 ‘주민등록 원부’라는 걸 만든 뒤 이 원부를 근거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모든 국민이 상시 휴대하도록 되어 있다. 시커멓고 찐득한 잉크를 열손가락 끝에 바르고 나서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손을 맡겨 원부에 열 개의 지문을 찍던 일은 지금 생각하면 번거롭기 짝이 없지만, 그 시절 우리에게는 당연하고도 단순한 행정절차로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전 세계가 차별이니 인권유린이니 하여 일본을 성토하고 나선 것을 보면 아마도 외국인들을 대단히 거칠게 다루는 모양이다 - 라고 우리는 상상하였다.


그러나 막상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의 설명을 들으니 그곳에서의 지문 채취과정은 오히려 국내에서 한국민 누구나 하는 과정보다 월등 간단한 것이었다. 일본의 동사무소 같은 곳에 가서 외국인 등록증을 만들 때는 양쪽 엄지, 두 개의 손가락을 찍을 뿐이며, 시커멓고 찐득한 잉크가 아니라 물과 같은 종류의 액체를 손가락 끝에 묻혀 종이에 찍는 것이고, 지문을 찍고 나면 담당 직원이 옆에 흰 수건을 받쳐 들고 서 있다가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하면서 당장 손가락을 닦을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아는 인권의 기준과 일본에서 문제가 된 외국인 인권의 기준은 차이가 나도 한참 나는 것이었다.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기관이 개인의 지문을 채취하는 것은 체포된 범죄자에 국한된 일이었다.


여기서, 일본은 엄지 두 개만 강요해도 인권유린이란 문제가 생기고 한국은 전 국민이 열손가락을 다 찍어도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는 것을 두고 일본은 상대적으로 인권국가요 한국은 인권이 없는 국가였다고 단순 비교해 단정 지으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라에 따라, 인권이나 자유의 개념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주목하려 하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 또는 자유라고 믿고 있는 언론 출판 통신의 자유가 새삼스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당장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 구글이 운영하는 ‘유튜브(You Tube)'라는 사이트는 한국정부가 새로운 법에 따라 요구하는 모든 가입자 실명제 전환을 거부한다는 공식 결론을 내렸다. 한국 내에서 업로드(자료를 올림)할 수 있는 서버를 모두 제한하고, 대신 한국의 이용자들이 외국 사이트를 통해 유튜브를 한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론이다.


이 사건은, 지구상 모든 나라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실명제와 같은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있는 구글의 정책과 ‘어떻게든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책임감을 갖도록 강제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공식 대립한 사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자연스럽게 세계 주요 언론의 관심도 집중되었다. 구글 측이 공지한 안내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희는 평소 저희가 일하는 모든 분야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우선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중략) 사용자들이 원한다면 익명성의 권리는 표현의 자유에 있어 중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나라에서 언론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지켜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바깥 세계의 글로벌 기업이 생각하는 언론 표현의 자유는,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기준을 ‘상당한 제한적 자유’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나라마다 자기 실정에 따라 기준을 달리 정한다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기준이 자기 경계 안에 갇힌 ‘우물 속 자유’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를 이참에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개 일반인들의 자유로운 표현과 통신을 제한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정부보다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정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노벨상을 받은 영국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 (Bertrand Russell)의 말이 떠오른다. “당신에게 유해하다고 생각되는 견해들을 억누르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 견해들이 당신을 억누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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