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못생기고 가난하고 촌스러운 ‘천사’

정해용 / 기사승인 : 2009-08-03 14: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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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는 잘난 편이 아니고, (그러니 무엇을 입어도 마찬가지겠지만) 입은 옷도 촌스럽고, 투박한 목소리에 말씨도 세련된 편이 아니고, 교육도 대강 받았고, 사는 곳도 ‘깡촌’이나 다름없는 변방의 한 마을(village)에서 올라온 중년.


지난주 세상을 웃기고 울린 화제의 인물은 듬직한 체구를 지닌 한 시골 여인이었다. 그녀가 런던에 올라와 TV 장기자랑 프로그램 녹화무대에 올라서자 방청객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반쯤은 실망할 준비가 된 눈으로 그녀를 주시한다. 이 프로그램은 단지 재주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그 재주로 프로 무대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선발대회의 성격을 띄고 있다. 나이는 이미 47세나 됐고, 남자친구는커녕 키스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매력 제로’의 여인에게 이 무대는 일단 호의적이지 않다.


그녀가 ‘블랙번’에서 올라왔다고 말하자 심사위원은 ‘그 곳이 큰 도시냐’고 묻는다. 이를테면 그녀가 말한 ‘블랙번面’은 ‘어느 道 어느 郡’이라는 수식어가 없이는 런던 사람 누구도 알아듣기 어려운 시골인 것이다. 방청객들이 가볍게 웃는다. 그녀가 나이를 밝히자 방청석이 술렁댄다. 한숨 쉬는 심사위원에게 그러나 그녀는 ‘나이란 나의 한 측면일 뿐(one side of me)’이라고 말하며 몸을 흔들어댄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꿈이 뭔가요?” “전문 가수가 되는 일이에요” 방청석에선 웃음소리가 새나온다. 클로즈업된 방청객들의 얼굴엔 뜨악한 표정이 역력하다. 아마도 속으로는 ‘저 나이에?’ ‘저 얼굴에?’ ‘저 몸매에?’ ‘저 시골뜨기가?’하는 질문들을 던지고 있을 것이다.


“왜 여태 가수가 되지 않았나요?” 심사위원이 다시 묻자 그녀는 “기회가 없었다”고 답한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기다려온 절체절명의 기회가 바로 지금이라는 듯 그녀는 당당하게 덧붙인다. “엘렌 페이지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말에 객석은 마침내 웃음보를 터뜨리고 그녀는 노래를 시작한다. ‘나는 한 꿈을 꾸네(I dream a dream)'란 노래를 시작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들어있는 곡이다.


전주가 나오고 그녀가 노래를 시작한다.


‘난 지난 시절에 한 꿈을 꾸었지. 희망은 높고 인생은 아직 살아볼만한 것이었을 때.’


첫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온다. 방청객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엘렌 페이지 부럽지 않은 깔끔하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천사의 음성이었다. 노래가 끝났을 때는 모든 청중이 일어서서 발을 굴렀고,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잔 보일. 이전까지 그녀가 사는 고향마을 외의 사람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47세 스콧틀랜드 노처녀는 그녀의 말대로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바꾸었다. 그녀가 도전한 ‘브리튼즈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라는 TV 프로그램은 영국에서도 유명한 프로다. 그녀의 도전 장면을 담은 UCC 동영상이 전 세계 천만 네티즌들에게 전파되고 각국의 TV와 신문에 앞다퉈 소개됐다. 동영상을 보는 사람마다 감동받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 프로의 심사위원들이 고백했듯, 그녀가 무대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절반쯤 그녀를 비웃었다. 이런 선입견과 편견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건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12살 때부터 노래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워온 ‘준비된 재능’ 덕이었다.


하지만, 이 시골 여인의 꿈을 하루아침에 현실로 만들어준 데에는 자신들의 편견을 곧 사과하고 재능을 재능으로 보아줄 수 있는 영국 사회의 성숙한 분위기 덕이라는 해석도 있다. 나이 많고, 노래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남장 여자가 아닌가 할 만큼 외모도 별로인 여자가 이 프로그램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만일 기회조차 열어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고향마을에서 그럭저럭 노래 한 자락 뽑을 줄 아는 여인으로 늙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움직이는 심사위원들은 솔직함 공정함 그리고 관대함으로, 전 세계가 환호할 수 있는 감동을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근래 한국의 정치지형을 보면, 사회를 쥐고 흔드는 사람들의 관대함과 솔직함과 공정함이 너무나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의 공을 치하하기 보다는 끈질기게 깎아내려야만 내가 살아날 수 있다는 강박감은 천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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