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퍼거슨 감독에게 젊은 호날두가 대들었다며?

정해용 / 기사승인 : 2009-08-03 14: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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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가 퍼거슨 감독에게 대들었다? 지난 1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2대0 승리로 끝난 영국 프리미어리그 對 맨체스터시티전 직후 스포츠 언론들은 이 흥미로운 장면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올해로 3년째 득점왕 자리를 노리고 있는 호날두는 이번 시즌 경쟁자들과의 실적 격차가 아직 근소하여 애가 타는 참이다. 이날 첫 골을 성공시킨 뒤 한참 ‘끝발’ 오르는 경기 중반에 불쑥 교체 지시를 받은 것이 발단이었다. 성급한 마음에 화가 치밀었던지 중얼중얼 불평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스태프가 건네주는 겉옷을 땅바닥에 내던져버렸다.


그러나 퍼거슨이 누군가. 알렉산더 챔프맨 퍼거슨(Alexander Chapman Ferguson)은 맨유를 맡은지 20년 동안 영국과 유럽의 리그에서 연간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챔프 타이틀을 놓친 적이 거의 없다. 일찍이 영국 내 프리미어리그와 FA컵, 그리고 유럽(UEFA) 챔피언스 리그까지 3대 리그를 동시에 완벽히 휩쓴 1999년에는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도 받았다. 축구 감독 중 유일하게 이름에 sir(卿)라는 경칭이 붙는 귀족이 된 것이다. 능력과 신뢰도, 팀 통솔력과 카리스마에서도 가히 세계 정상급인 환갑 나이의 감독에게 이제 스물다섯살 선수가 대놓고 불쾌감을 표시한 건, 그가 아무리 유럽 제일의 득점왕이라 하더라도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퍼거슨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버릇없는 호날두’을 징계한다는 따위의 말도 없다. 그건 개인감정에 따라 대사를 그르치는 삼류 감독들에게나 해당할 법한 옹졸한 얘기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 한 게임만이 아니라 오는 28일로 예정된 FC바로셀로나와의 유럽(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비롯하여 프리미어리그의 수많은 게임들을 헤쳐나갈 마스터 플랜이 들어있을 뿐이다. 퍼거슨에게는 이 경기들을 앞두고 호날두의 골 욕심, 골 갈증을 극대화시키려는 전략만이 중요했을 것이다. 팀에도 좋고 선수에게도 좋을 길을 그는 내다봤다.


유럽 정상 20년이란 영예가 거저 주어졌겠는가. 그에게는 상황 따라 인정 따라 즉흥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어설픈 구상이 아니라, 치밀하고도 정교하게 계산된 목표와 원칙이 있을 뿐이다. 세계가 경탄했던 전설적 스타선수들, 이를테면 로이 킨이나 데이비드 베컴, 판 니스텔로이 등 대 스타라도 최상의 팀 전력을 위해 버려야 한다고 판단될 때는 냉정하게 시장에 내놓았던 퍼거슨이다. ‘자기 사람’에 대한 어설픈 인정이나 의리에 끌려 큰 목표를 잃는 아마추어들과는 心地가 다르다. 그러나 평소 그가 직접 영입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의 관계는 ‘노사관계’를 뛰어넘는 단단한 신뢰의 관계, 존경과 포용의 관계를 그는 잃지 않는다.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과 말만이 아니라 실적으로 입증하는 지휘능력, 잠시도 꾀를 부리지 않는 성실성과 배짱, 그 위에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날카로우며 적재적소를 놓치지 않는 용인술. 평론가들은 이것을 세계 제일의 팀을 이끌어온 명품감독 퍼거슨 카리스마의 원천으로 꼽는다.


우리가 아는 거스 히딩크 현 첼시팀 감독은 가히 퍼거슨에 비교할 만하다. 그 역시 간판선수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정교한 게임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치밀함을 지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떤 차이일까.


일단 ‘인상비평’을 시도해볼까. 히딩크가 젊은 선수들의 가슴에 용기와 투지의 불을 지피는 열정형(火)이라 한다면 퍼거슨은 상대적으로 냉철한 계산에 의해 승부를 치르는 치밀형(金) 지도자다. 히딩크가 상대적으로 약체 팀, 無名 선수들을 품어 기적을 창출하는 감동의 ‘외인구단型’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퍼거슨은 강팀, ‘명품 선수’들을 조화시켜 완벽한 하모니를 이끌어내는 ‘명품구단型’ 리더십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두 감독의 능력이 딱 여기까지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주어진 여건과 환경이 달랐으니, 각각 그에 맞는 유형의 지도력이 필요했을 터. 두 사람은 각각의 환경에 맞는 최상의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정치에서의 리더십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적 물적 자원이 빈약하던 60~70년대에는 이 쓸쓸한 재료를 가지고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형’ 리더십은 그런 환경에 부합하였고, 대한민국은 보릿고개를 넘어 중진국의 대열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그것을 일종의 ‘외인구단형’ 리더십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어떤 리더십이 필요할까. 어쨌든 온 국민이 아는 게 많아지고 잠재역량도 몇 배로 높아진 지금, 더 이상 통제의 패러다임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강력한 지도자에게 의존하던 ‘리더십’의 시대는 이제 다양하고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가 보다 중요한 ‘시티즌십’(citizenship)의 시대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자발적 시티즌십을 지원하는 헌신적 리더십이 무엇보다 적절한 리더십이라 할 것이다. 외인구단형도 아니고 딱부러지게 명품구단형이라 하기에도 어설픈, 지금 우리 사회의 리더십은 과연 정체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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