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주의’, 재기를 노린다

유상석 / 기사승인 : 2012-08-10 09: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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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 앞둔 대우일렉…"백색가전 자신있어”

대우일렉트로닉스(이하 대우일렉)가 ‘탱크주의’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워크아웃 중인 대우일렉이 ‘5전6기’ 매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래 5번의 매각 실패의 아픔을 겪었던 대우일렉은 1990년대 삼성ㆍLG와 함께 가전 3사로 꼽혔던 대우전자의 후신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탱크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냉장고ㆍ세탁기 등의 소위 ‘백색가전제품’에서 한때 국내 시장점유율 30%를 차지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킨 가전 회사다. 하지만 1999년 ‘대우 사태’로 그룹에서 분리돼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화려한 과거는 막을 내렸다. 연간 매출은 4조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하락했고, 1997년 1만2000명이던 직원 수는 2002년 4000명, 2007년 2500명, 2012년 1300명으로 줄어들었다. 전성기의 10분의 1에 불과한 직원만 남아있는 것이다.



◇ 재무 경쟁력 아쉽지만 기술 경쟁력은 ‘청신호’
한동안 적자를 면치 못하던 대우일렉은 지난 2008년부터 간신히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50억 원에 지나지 않는다. 당기순이익으로 따지면 여전히 적자다. 게다가 전 세계를 강타한 경기 불황은 좀처럼 사라질 모양새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우일렉은 화려했던 과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주목받지 못하는 소형 가전 업체로 남을 것인가.


기업의 경쟁력 보여주는 재무 성과로 따지자면, 대우일렉의 현 모습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회사 측에서는 4년 연속 흑자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만족스러워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매출액은 2008년 1조4793억 원, 2009년 1조4378억 원, 2010년 1조6073억 원, 2011년 1조6854억 원으로 소폭 상승에 그쳤다. 영업이익은 2008년 316억 원, 2009년 401억 원에서 2010년 177억 원, 2011년 50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영업이익은 4년 연속 흑자지만 당기순이익은 4년 연속 적자인 것이다.


2008년 1464억 원, 2009년 887억 원, 2010년 1852억 원, 2011년 1~5월 646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구조조정 손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우일렉 측은 “부실한 해외 법인 정리 과정에서 순손실이 대거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쟁력의 또 다른 척도인 기술력이나 제품력은 여전히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우일렉 측도 “39년간 축적된 제조 경쟁력과 연구ㆍ개발(R&D) 기술력”을 강조한다.


물론 R&D 투자 여력을 글로벌 업체들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대우일렉 관계자는 “워크아웃 중이라서 투자가 충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가능한 한 최대의 R&D 비용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백색가전은 휴대전화나 IT 기기처럼 트렌드가 빠른 속도로 변하거나 반도체처럼 기술 수준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이 아니다. 튼튼한 제품을 만드는 제품력이나 원가 경쟁력이 중요한 백색가전 사업은 투자가 아닌 혁신의 질이 승패를 좌우한다. 물론 스마트 가전 시대가 열리면서 R&D 투자가 필요해지고 있지만 이 또한 자금력 있는 인수자를 만나면 해결될 일이다.


◇ ‘지역 밀착’ 전략으로 개도국 시장 ‘집중’
글로벌 시장에서 쌓아온 경험과 네트워크도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국내시장은 한정된 데다 삼성ㆍLG 등 막강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다. 세계적인 가전 업체들도 국내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을 정도다. 해외 진출에서 승부해야 할 이런 상황에서 대우일렉의 경쟁력은 빛을 발한다.


대우일렉 측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자사 세탁기가 시장점유율 1위(65%)에 올라 있고 페루에선 양문형 냉장고와 드럼세탁기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칠레에선 양문형 냉장고, 베네수엘라에선 전자레인지가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마케팅 비용과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중남미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까닭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화한 제품을 생산하고 지역 밀착 마케팅을 전개한 것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페루의 전통 문양인 나스카 디자인을 채용한 세탁기와 칠레의 전통 모마이 디자인을 담은 양문형 냉장고가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 25기(2011년 1~5월) 감사 보고서를 보면 17개 해외 법인 가운데 중국 법인(DEMOJIN) 등 9곳이 순손실을 기록했다. 개별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높더라도 수익성은 좋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


대우일렉 측은 이에 대해 “사업장 재배치 과정에서 법인 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올 들어 전 판매 법인에서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대우일렉의 최대 강점은 생산 법인이 개발도상국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라며 "유럽 가전사들이 가장 취약한 곳이 개도국 시장인 만큼 대우일렉의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 약한 브랜드 경쟁력… ‘아이디어’로 뛰어넘다
대우일렉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막강하다고는 하지만, 세계 가전 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이 돼버린 지 오래다. 연평균 성장률도 3~4%에 불과하다. 게다가 앞에선 삼성전자ㆍLG전자ㆍ월풀 등 최강자들이 버티고 있고, 하이얼 등 중국 가전사들이 맹렬히 쫓아오고 있다.


대우일렉 관계자는 “브랜드가 상대적으로 약하긴 하지만 품질에서 차이가 없고 오히려 시장에서 원하는 아이디어 상품이 많은 데다 지속적으로 원가 경쟁력을 높여 왔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대우일렉은 마케팅력과 R&D력의 열세를 아이디어 상품으로 돌파고 있다. 올해 출시한 대형 3도어 냉장고와 벽걸이 세탁기가 대표적이다.


대우일렉이 지난 4월 말 출시한 3도어 냉장고 ‘클라쎄 큐브’는 10주 만에 누적 판매대수 5000대를 돌파한 바 있다. 클라쎄 큐브는 오른쪽 냉장 공간을 상ㆍ하 두 부분으로 나눈 업계 최초의 제품으로. 상단부는 독립 냉장 공간, 하단부는 김치 냉장고로 쓰인다.


지난 5월 초 출시된 ‘벽걸이 세탁기’는 8주 만에 4000대 이상 판매됐다. 이 제품은 작은 부피의 빨래가 잦은 1~2인 가정, 기저귀ㆍ환자복 등 청결함을 유지해야 하는 가정을 공략한 3kg 미니 드럼 세탁기다.


◇ ‘궁합 맞는’ 인수자 만나 옛 영광 재현할까
채권단의 대우일렉 매각 시도는 이번이 여섯 번째다. 지난 2006년 인도 비디오콘컨소시엄과의 첫 매각 협상이 결렬된 후 2008년 모건스탠리 프라이빗에쿼티(PE), 2009년 리플우드컨소시엄, 지난해 이란계 다국적기업 엔텍합그룹과 일렉트로룩스와도 각각 협상을 벌였지만 무산됐다.


2012년 4월 재매각 공고를 냈고 인수전에 동부그룹이 참여한 케이더인베스트먼트, 삼라마이더스(SM)그룹, 미국 사모펀드 원록, 스웨덴 가전 업체인 일렉트로룩스 등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오는 21일에 본입찰을 실시해 늦어도 8월말에는 우선협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백색가전 기업으로 변신한 대우일렉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인수자를 만나면 화려한 부활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권성률 우리투자증권 가전 담당 애널리스트는 “대우라는 브랜드와 제품력, 기술력, 해외 네트워크 등을 감안할 때 확실한 주인(인수자)을 만난다면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국내 3대 가전사에서 워크아웃 기업으로 전락한 대우일렉이 옛 명성을 탈환할 수 있을지 이번 매각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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