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대세고 화제이며 이슈라고 한다. 나야 알 턱이 없다. 지난달에 이사를 한 이후 TV설치를 하지 않은 탓이다. TV는 있되 지역 케이블방송 따윌 신청하지 않다보니 TV볼 일이 없다. 하지만 올림픽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는 하등 부족함이 없다. 각종 포털사이트, 뉴스사이트는 올림픽 정보로 넘쳐난다. 굳이 중계를 찾아보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는 모두 획득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들이 올림픽 보느라 전기를 많이 쓴다”는 대통령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중계’에 열광하는 것은 내가 올림픽의 ‘결과’만 보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혹자는 여기에 ‘국가주의’가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의 팟캐스트 방송 ‘김종배의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서 진행된 김성식 전 의원과 진중권 동양대 교수 간 대담에 따르면, ‘한국인’이 올림픽에 열광하는 것에는 ‘공동체 정서’가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공동체 주의’는 극단적으로 표출될 시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2일 스포츠 칼럼니스트 정윤수씨도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승부에의 탐닉이 과도한 국가주의와 맞물리면서 ‘올림픽 정신’을 일그러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말한 ‘과도한 국가주의적 행위’는 펜싱경기에서 한국의 신아람 선수가 ‘마법의 1초’ 덕분에 메달을 강탈당한 것에 분노를 느낀 네티즌들이 상대 선수였던 독일 하이데만 선수의 페이스북을 ‘방문’해 신상을 털고, 나치의 후예라고 조롱했다.
정윤수씨는 이를 “학살자가 버젓이 행세하는 나라에서 상대의 사적공간을 침범해 ‘나치의 후예 같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는 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이라고 언급했다. 진중권 교수 역시 이들을 ‘사이버 훌리건’이라 지칭했다.
지금의 올림픽 열기는 과거 대규모 스포츠행사들이 항상 그래왔듯이 ‘국가주의’가 분명하다. 그러나 주체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는데, 국민들이 ‘국가주의’에 도취되어 있는 것이 아닌, 국가가 국민들에게 ‘국가주의’를 강요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마치 애정결핍 환자처럼 국민들에게 ‘과도한 애정’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을 ‘국가주의’에 빠뜨림으로서 얻는 효과는 막대하다. 대선을 앞두고 ‘전체주의’·‘우경화’따위로 상징되는 ‘보수성’을 강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또 국민들이 사회의 불의에 느껴야할 감정들을 ‘올림픽’에 ‘쏟아 붓게’ 만들어 다른 사안들(민영화, 론스타, 공천헌금, 용역폭력)들 ‘묻어’버릴 수 있다.
<월든>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그의 저서 ‘시민의 불복종’에서 “좋은 국가(책에서는 정부)는 적게 다스릴수록 좋으며 궁극적으로는 전혀 다스리지 않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명 현명하고 사려 깊은 시민, 혹은 국민, 혹은 사람, 또는 인간이라면 무생물인 ‘국가’의 조종에 놀아나지 않고 자신만의 체계화된 사고로 ‘올림픽’을 진정 즐겁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즐긴다’라는 것이 뭔지 스스로 고민해볼 필요는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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