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CEO '경제위기론' 진실 혹은 거짓

황지혜 / 기사승인 : 2007-03-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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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위기론' 언급, 재판 의식한 여론몰이? 구조조정 예고편?

지난해 말 '부동산 버블(거품) 붕괴론'이 거론되면서 한국경제를 위협하더니 올해에는 '샌드위치론'에 이어 '이건희 위기론'까지 가세해 재차 경제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재계총수부터 전·현직 경제부처 공무원, 금융권 등 경제 리더들이 지적하고 있는 경제 위기는 무엇인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4~6년 뒤에 우리나라에 큰 혼란이 올 것이다." 지난 9일 투명사회협약 대국민 보고대회에 참석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말 한마디가 경제위기론에 불씨를 댕겼다.

삼성전자의 주력업종 이익률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비단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글로벌 그룹 총수가 던진 부정적인 경제전망의 파장은 무서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말을 흘려보내기에 이번 경고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고에 앞서 이 회장은 지난 1월 우리나라를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샌드위치 신세"라고 비유하며, 한국기업의 경쟁력 추락을 크게 우려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회장에 이어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도 '샌드위치 위기'를 강조하고 나서자 위기감은 사회 전반으로 고조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16일 기아차 주총 영업보고서에 실은 인사말을 통해 "세계 자동차산업은 내일의 승자를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무한경쟁이 계속되고 있다"며 "일본업체는 주요시장에서 우리에 대한 견제수위를 더욱 높여가고 있고, 중국 등 후발업체들은 빠른 속도로 턱밑까지 추격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재계 1, 2그룹의 총수가 차례로 한국경제를 우려하는 전망을 내놓자 경제위기가 구체적 현실로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경제위기론에 대한 공감대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조원동 재경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지난 13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그 분의(이 회장) 지적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으며, 그만큼 우리의 성장잠재력을 걱정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삼성 회장의 위기론은 사회 생활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도 공감하고 있는 졈이라며 이 회장의 발언을 옹호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삼성과 경쟁하는 기업은 국내가 아닌 국외고, 세계에서 밀린다면 삼성의 입지는 줄어들 것”이라고 전제한 뒤 “삼성이 대한민국의 버팀목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만일 삼성이 흔들리면 당연히 한국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이 회장의 위기론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한국경제 위기 경고는 지난해부터 재계뿐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정체상태에 빠진 한국경제가 도약하지 못할 경우,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게 경제리더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지난해 연말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은 채 드러누워 있다" 지적한데 이어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경쟁과 관련된 패러다임 변화속도가 과거에 비해 한층 빨라지고 있으며, 국내 경제 침체와 환율 상승 등 수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며 밝지만은 않은 잿빛 미래를 암시했다.

윤종용 삼성전사 부회장은 지난달 "무한경쟁 시대에 한국 경제는 저성장에 허덕이고 있으며, 한국기업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약하려면 창조적 리더십 확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 역시 지난해 "제2금융권발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는 등 산업계 뿐만 아니라 금융계의 우려도 적지 않다. 전직 경제장관들도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7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국제경영원 주최 신춘포럼에서 "정부와 기업, 근로자 등 모든 경제 주체가 각기 방향을 잃어 경제가 외환위기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호(號)는 망망대해에서 진로를 잃고 해매고 있다"고 진단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도 지난 1월 "한국은 지난 10년간 선진국 문턱에서 주춤하고 있다"면서 "지금의 한국 경제는 비전과 자신감을 잃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재무부 장관 출신) 지난 1월 18일 한 세미나에서 "현재 우리나라는 유연하지 못한 노동 시장, 변하지 않는 정부 규제, 갈수록 커지는 사회복지 부담 등으로 경제가 활력을 잃는 '독일병'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연구소에서도 관련 보고서를 내놓으며, 경제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11일 '일본 잃어버린 10년의 교훈' 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가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붕괴된 1990년대 일본 경제와 닮은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 연구소도 지난달 '통상대국 한국의 위상과 진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의류, MP3플레이어 등 일부 분야의 산업경쟁력을 중국에 이미 추월당했고, 2010년에는 이동통신장비,디지털 TV, 철강 경쟁력도 역전 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연 한국 경제에 위기는 온 것인가.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주력 산업마저 경쟁력을 잃고 있는 이중고를 겪는 상황의 심각성을 지목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월 국내기업 286곳을 대상으로 신규사업 추진 현황을 조사할 결과, 절반 이상이 '3년 후 미래 수익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53.5%)고 응답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뒤에 먹고 살 수 있는 사업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은 단 1%에 그쳤다. 문제는 이처럼 미래가 불투명한데도 40% 가량의 기업은 올해 투자할 계획도 없어 미래는 더욱 어둡기만 하다는 점이다.

상품의 생존 주기가 짧아지고, 경쟁무대는 세계로 넓혀지면서 기업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또 외환위기 이후 고용 및 임금 감축으로 개별 기업에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줬을지 모르나, 가계 소득을 제자리걸음 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기업이 상품을 팔 여지는 더 줄어버렸다. 결국 신규사업을 창출하는 것 밖에는 기업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신규산업에 대한 리스크나 정부 규제 환경적인 요소 등을 핑계로 이를 꺼려하고 있다.

이경상 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신규사업추진이 부진해지면 미래의 성장 동력을 잃고 우리경제가 장기적으로 침체국면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 밖에 한국 경제는 수년째 세계경제 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의 경기 침체가 계속 되고 원화강세, 고유가, 가계부채의 급격한 증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등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형편이다.

정부가 외쳐 온 신(新)성장동력 창출이 물거품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정부 관계자는 "현재는 경제 기초를 튼튼히 다져온 단계라 차기 정권부터는 그 혜택을 볼 것"이라며 이 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한편 이 회장의 발언에 또 다른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거 여러차례 경제위기를 언급해 온 이 회장이지만 이번만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경고를 날린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증여사건과 관련한 이 회장의 기소여부 결정을 눈앞에 두고, 재판을 의식해 면죄부를 받기 위한 여론몰이에 나선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지난해 법원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구속 후 현대차노조의 부분 파업, 경영난과 경제위기론 등 현대차 안팎의 분위기가 크게 작용하자 구속 2개월 만에의 보석을 허가한 바 있다.

당시 정 회장의 보석 결정을 내린 김동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재벌회장이라고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고민이 컸지만 현대차 그룹이 국제적인 거래가 많은 기업이라는 점을 참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한 네티즌은 “(이건희 위기론은) 지배구조에 대한 삼성의 독단을 정부에서 관여하지 말라는 경고로 기업오너를 구속하면 나라가 거덜나는 것처럼 말하는 저의는 자신의 잘못을 희석시켜 법적으로 옳아매지 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제 이 회장을 어떤 방식으로 조사할 지, 기소할 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만이 남았는데 마지막 순간, '변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지난 16일 석 달만에 다시 재판은 공소장 변경 논란만 벌이다 싱겁게 끝났다. 재판부가 다음달 19일에 속행하겠다고 했지만 당초 지난해 12월 선고까지 예정돼 속도를 내던 재판이 다시 표류하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희 위기론'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면서 ‘(이 회장의 구속이)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 여론이 형성될 시에는 검찰도 이 회장의 소환 조사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도 점차 이 회장 조사방침에 회의적인 시각이 커져 가는 게 사실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정부가 재계의 일방적인 주장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계속도면서 법원과 검찰의 판단에 영향을 줄까 우려된다"며

"건전한 신장경제 질서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법원과 검찰이 불특정다수에 피해를 주는 기업범죄를 엄히 다스리는 판단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지난 7월 범무부 장관을 그만둔 천정배 의원은 지난 15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 이회장의 발언이 사건재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

"검찰 측이 부담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재판은 이 회장의 발언과 수사는 무관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검찰은 원칙에 따라 공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 회장이 회사 내부 구조조정의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건희 위기설'을 언급한 날 이 회장은 삼성전자 사업부문 중 가장 실적이 떨어진 생활가전사업에 대한 대해

"내수는 하겠지만 수출은 어려우며, 한국에서 할 업종이 아니다"면서 "개도국으로 넘겨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수년째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는 생활가전사업에 대해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 내부에선 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계열사 단위로 사업을 축소하거나 인력을 감출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삼성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는 광주공장에서 내수용과 수출용 가전제품을 모두 생산하고 있지만 앞으로 수출품은 전량 해외생산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청와대는 '경제 위기론'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고, 대신 이를 보도하는 언론을 에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최근 한 대기업 회장의 '정신 차려야 한다'는 발언을 침소봉대해 위기론을 중요한 논거로 삼아 더욱 호들갑을 떨고 있다"며 "(보수언론은) 우리가 경제 분야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편협한 시각으로 폄하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참여정부 출범 초기 620선 초반이었던 주가 지수가 두 배 가까이 올랐으며, 올해도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 주가를 기록하면서 아무 문제없이 가고 있다"며

"지난 4년 동안 수출은 지난 2002년 1600억달러에서 2006년 3200억달러로 증가하는 등 각종 경제지표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며 경제 위기론을 부인했다.

이어 일각에서 제기되는 이 회장의 재판 영향설에 대해선 "경제를 정치 논리로 풀어내는 재주가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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