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은 지난달 말부터 매일 최측근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주요 현안에 대해 경영지시를 하는 등 사실상 그룹 경영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삼성전자는 냉장고 폭발사고로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던 냉장고에 대한 대대적인 리콜을 실시했다. 이에 이건희 전 회장은 크게 화를 냈고, 그 입김이 이번 조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 전 회장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거기다 삼성 임원들은 최근 이 전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공식석상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다. 삼성의 ‘황태자’ 이재용 전무의 자질 검증이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전 회장의 복귀를 점쳐보고 있다.
최근 폭발 문제로 시끄러웠던 지펠 냉장고의 대대적인 리콜 조치는 이 전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시선이다.
해외에서 이미 두 번이나 발생하고 지난달 말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이례적인 냉장고 폭발 사고에 그동안 삼성전자는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 이건희 전 회장이 이 문제로 인해 ‘대노’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직후 삼성전자는 해당 제품의 자발적 리콜을 실시했다.
실제로 이런 대대적인 리콜 조치는 분명 회사 경영의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다. 재계는 리콜 조치가 이 전 회장의 ‘대노’ 기사 보도 직후 이뤄졌다는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과정상 이번 리콜 조치에 이 전 회장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이 ‘이건희 복귀론’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지만 현재 이 전 회장은 ‘집행유예’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섣부른 복귀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지난 5월 29일 대법원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과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회장에게 무죄를, 삼성SDS의 BW 값 매각에 대해서는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했다. 이로써 10년이나 걸린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하지만 그룹안팎에선 여전히 이 전 회장이 경영 일선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경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는 이건희 전 회장의 경영 복귀를 주문하고 나섰다. ‘카리스마’ 경영의 대명사였던 이 전 회장이 다시 재계에 나서준다면 현 경제 불황 속 국민들의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최근 경제개혁연대(이하 ‘경개련’)가 주장하고 있는 ‘과거 전략기획실 임원들이 그룹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내용도 ‘복귀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태다. 이 전 회장 시절 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전략기획실이 이름만 바꿔달고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참모조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이건희맨’ 이학수 전 부회장 역시 현재 관련된 총괄업무를 계속 수행 중이라고 한다.
일선의 전면 복귀가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국제무대에서의 활동만큼은 보장해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단 이 전 회장의 복귀를 간절히 바라는 목소리가 높은 곳은 스포츠 분야다. IOC위원으로 활동하는 이 전 회장이 그동안 스포츠 외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도 영향력이 높은 이 전 회장이 스포츠 외교력을 집중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1996년 IOC위원이 된 이후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위상 정립을 위해 분주히 움직여왔다. 단적으로 국제 스포츠 거물 인사들과 활발한 접촉을 하면서 강원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노력해 왔고, 삼성전자를 스포츠 마케팅에 적극 나서도록 해 국가 브랜드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만능 스포츠맨으로 운동에 관심이 많은 이 전 회장은 국내 스포츠계는 물론 국제 스포츠계에서도 거물 인사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전 회장의 빈자리가 가장 아쉬운 곳은 강원도 평창이다. 강원도민을 넘어 국민적 유치 염원이 높은 평창동계올림픽이 8부능선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무대의 영향력이 높은 이 전 회장의 사면복권이 절실하다는 게 강원도의 염원이다.
17일 김진선 강원지사는 이 전 회장의 사면복권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IOC위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이 전 회장에 대해 국내 사법 절차에 따른 IOC위원 자격 문제가 부상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태권도의 문대성 선수위원만이 IOC위원으로 활동하는 현실에서 이 전 회장의 IOC위원 자격까지 박탈된다면 스포츠 외교력은 취약한 형국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김 지사의 주장이다.
김 지사는 "이건희 위원은 삼성의 회장을 맡았지만 지금은 공식적으로 모든 직에서 떠나 있어 정부가 유력한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 이 문제를 고려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의 경영복귀에 대한 그룹 내부에서의 요구도 높다. 경제불황에 따른 삼성의 경영현황 등에서 확실한 의사결정으로 결단을 내려줄 오너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이유에서다.
냉장고 폭발사고의 경우도 이 전 회장의 의사결정이 아니었다면 사태가 커질 수 있었던 사안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몇 번의 폭발사고가 발생했지만 삼성 경영진에서 빠른 리콜 조치를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물론 삼성그룹이 오너 체제를 다시 가동하기에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 지금도 이 전 회장의 복귀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데다 법적인 문제가 마무리됐다고는 하지만 시기상 너무 이르다는 분위기도 높다.
한편, 삼성그룹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최측근들로부터 일일 경영보고를 받고 있으며 매일 신문 스크랩 자료도 받아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보름 전부터 이 전 회장에게 이 같은 보고를 하고 있다"며 "주요 현안에 대해 직접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그룹 측은 이 같은 내용에 관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하며 아직까지 이 전 회장의 ‘복귀설’이나 ‘자택 경영’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그룹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은 집행유예 중이어서 사면복권 된 뒤에 경영일선에 복귀하는 형태를 바라고 있다"면서 "관례적으로 집행유예 중에 등기이사로 복귀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 전 회장이 당분간 이 같은 자택 경영을 계속하면서 올 연말을 전후로 이재용 전무에게 중책을 맡기는 등 경영권 승계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업무를 재개함에 따라 이 전 회장은 주말마다 삼성의료원장에게 직접 건강 체크를 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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