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형저축’이 부활한 지 열흘이 지났다.
은행에서는 “재형저축 팔아봐야 돈 안된다”며 울상이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시중 은행 수석부행장들을 소집해 과당 경쟁을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돈 안된다’며 울상을 짓는 이면엔, 실적 할당ㆍ‘꺾기’ㆍ‘자폭통장’ 등의 수단이 동원된 과당 경쟁이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다.
‘애물단지’ 재형저축 상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시중은행들이 살벌한 경쟁을 펼치는 배경을 살펴봤다.

◇ ‘만원통장’ㆍ‘자폭통장’… 유치전 과열양상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오전 시중 은행 수석부행장들을 급하게 소집했다. 제주은행을 뺀 15개 은행의 부행장들이 모두 모인 이 자리에서, 금감원은 “지난 6일 출시된 재형저축이 일주일이 안 돼 각종 잡음에 휩싸였다”고 경고했다.
재형저축은 출시 3일 만에 60만명의 가입자를 끌어들였는데, 이와 관련 “가입자 수 중에 허수(虛數)가 많다며, 과당 경쟁을 하지 말라”고 주문한 것이다.
금감원은 ‘만원통장(일단 재형저축 최소 입금 금액인 1만원만 입금해 놓고 가입 실적에 포함한 계좌)’, ‘꺾기(은행 거래 기업의 근로자들이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가입한 계좌)’, ‘실적할당(본점 직원은 10개 유치, 지점 직원은 100개 유치 식의 의무적인 할당)’, ‘자폭통장(自爆ㆍ은행원이 실적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나 친척ㆍ친구의 이름으로 가입하는 통장)’ 등에 대해선 언제든지 금감원이 검사에 들어가 징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감원은 또 각 은행에 7년 고정금리 재형저축 상품을 내놓으라고 주문했다. 현재 은행의 재형저축 상품은 3년 동안만 고정금리를 주다가 이후엔 시장금리에 연동해 금리가 변하는 구조인데, 3년 뒤 은행들이 금리를 대거 내릴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것이다.
◇ “중도해지 많아 역마진 걱정 없어”
은행들은 재형저축의 높은 금리 때문에 팔면 팔수록 역마진이 난다고 울상이다. 하지만 출시 첫날 가입 결과만을 가지고도 ‘재형저축 시장점유율 1위’라는 대형 현수막을 내거는 은행이 있는 것을 보면 역마진 우려는 은행의 엄살이라는 견해가 많다.
은행들은 왜 재형저축에 일반 적금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제시하며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는 걸까. 그 비밀은 장기 절세 상품의 높은 중도해지율에 있다는 분석이 많다.
한 시중은행의 직장인 대상 5년 만기 적금의 해지율은 60%에 달한다. 10년을 부어야 비과세인 연금저축을 3년도 안 돼 깨는 비율은 45%에 이른다. 불입금에 대한 비과세 혜택뿐 아니라 소득공제까지 있어 재형저축보다 오히려 나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장기주택마련저축도 비과세 기준인 7년 동안 유지한 비율이 3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마음 굳게 먹고 장기투자 상품에 가입했다가도 이를 끝까지 유지하는 비율은 별로 안 된다는 뜻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재형저축에 4% 중반 금리를 주는 것이 당장은 부담이 되겠지만, 절반 정도는 중간에 해지할 것으로 보여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형저축을 중간에 해지하면 은행들은 애초 약속했던 4% 중반의 고금리를 주지 않는다. A은행의 경우 1년 만에 해지하면 연 1%, 2년 만에 해지하면 연 1.4% 금리만 쳐주는 식이다. 은행마다 중도해지 이율을 계산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크게 이 틀을 벗어나진 않는다. 7년 안 돼 깨면 그동안 내지 않았던 이자소득세도 내야 한다.
◇ “7년 고정금리 줘도 밑지지 않아”
금감원의 주문에 따라 은행들은 늦어도 5월까지는 가입 기간인 7년 동안 금리가 고정되는 재형저축 상품을 내놓을 전망이다. 7년 동안 금리가 고정되면 은행들은 금리 변동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향후 금리가 오르면 은행들 입장에선 별탈이 없지만, 저금리 상황이 장기화되면 은행 입장에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은행들은 금감원의 일방적인 지시에 별 불만이 없다. 금리변동 위험을 은행이 지는 대신 금리를 연 3%대로 낮추면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7년 동안 고객을 월급계좌와 신용카드로 묶어 놓으면 부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면도 있다.
다른 시중은행 부행장은 “은행과 지속적으로 거래하는 이른바 ‘활동고객’이 줄어드는 게 요즘 가장 큰 문제”라며 “개인고객 한 사람을 유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낀다고 생각하면 7년 동안 고정금리를 줘도 은행이 밑지지 않는 장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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