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유지만 기자]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국민행복기금’이 당초 대선당시의 공약과는 달리 크게 축소됐다. 공약 당시 “18조원의 기금을 마련한다”고 밝혔으나 1조 5천억으로 줄었고, 채무 회복 대상자 역시 322만 명에서 32만 명으로 줄었다. 공약 당시에 비해 1/10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국민행복기금'은 금융채무연체자의 신용회복 지원 및 서민의 과다채무 해소를 위해 마련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역점 사업이다.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내세운 ‘기초노령연금’, ‘영유아 무상 보육’과 함께 복지 분야의 핵심 공약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25일 금융위가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발표하자 ‘선거때와 다르다’는 비판여론이 일어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5일 오후 '국민행복기금 주요내용 및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2월말 현재 6개월 이상 연체자는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최대 70%까지 채무 감면혜택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금융회사 및 대부업체에 연체중인 채무자 134만명 중 약 21만명, 공적 자산관리회사에 연체채무가 있는 211만명 중 11만4000명 등 총 32만명이 채무조정 지원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당초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측에서 발표한 ‘총 322만 채무 감면’이라는 파격적인 공약에 비해 1/10로 줄어든 것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채무불이행자 322만명 구제’라는 제목으로 공약을 발표하면서 “국민 세금 없이 예산 18조 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연체채권 매입 비용 7,948억원, 전환대출 보증재원 6,840억원 등 1조4,788억원에 불과했다. 기존 발표의 10분의 1정도의 예산만 마련된 것이다.
예산이 줄어들다보니 지원 대상자 역시 크게 줄어들었다. 금융위원회는 29일 출범하는 국민행복기금의 채무 감면 대상을 약 32만6,000명으로 추산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내걸었던 '채무불이행자 322만명 구제' 공약에서 대폭 후퇴한 것이다.
◇낮은 매입가율, 대부업체 참여율 저조...‘실효성 의문’
금융권 장기연체채권 매입가율도 논란거리다. 금융위는 금융회사에서 매입하기로 한 59만 5000 명분 채권의 액면가는 9조5000억 원 정도다. 장기채권 매입비용을 8천억 원 정도로 잡은 걸 감안하면 매입가율은 대략 8~10% 정도로 예상된다.
금융회사 입장에서 너무 낮지 않느냐는 지적에 정은보 사무처장은 "구체적인 가격은 금융기관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개별 채권 평가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경험적으로 봤을 때 현 수준이 높은 것도 낮은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부업체 참여율이 34%에 불과한 점도 문제거리다. 금융위가 채무조정 협약을 맺은 대부업체는 전체 160개사 가운데 54개에 불과하다. 대부업체는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데다 연 30%대 고금리 채권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런 만큼 악성 채무로 허덕이는 서민들이 구제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무리한 공약을 추진하다 현실적 제약이 부딪히자 ‘급한 불 먼저 끄고 보자’는 심정으로 정책을 발표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연체채권을 얼마에 매입할지 결론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행복기금을 출범시킨 것은 넌센스"라며 "박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라는 점을 의식해 성급히 밀어붙이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공약에 나온 숫자는 말 그대로 지원 대상이었을 뿐이다. 이들을 모두 채무 감면 대상으로 본다면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며 "앞으로 추가적인 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채무탕감과 같은 조치는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걸어 예고할 것이 아니라 전격적으로 시행해야 할 사안"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논란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고 꼬집었다.
◇시민단체, 야당 반발 거세...‘국민불행기금 될 수도’
공정위의 국미행복기금 발표자 있자마자 야당 정치권과 금융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먼저 이상직 민주통합당 의원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가계부채 1000조시대 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은 '국민행복기금이' 내일 출범한다. 일단 환영한다"면서도 "그렇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국민행복기금의 문제점으로 △역차별 문제 △우선순위의 문제 △금융민주화를 들었다.
그는 "그동안 성실히 채무를 상환했던 다수 채무자에 대한 역차별 문제가 있다. 국민행복기금이 국민'천불'기금이 될 수 있다"면서 "금융정책과 금융 감독실패에서 비롯된 저축은행 피해자와 키코사태로 3조2000억 피해를 본 우량 중소기업, 한미FTA로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있다. 무차별적 국민행복기금 지원이 아닌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을 먼저 배려하는 구체적 플랜이 나와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익 민주통합당 의원도 "작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320만명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을 위해 18조원 국민행복기금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지만 국민들의 인기는 상당했고, 박 후보는 공약을 밀어붙였다"며 "그런데 지난 25일 금융위가 발표한 국민행복기금 추진계획에 따르면 총 지원규모가 1조5000억으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또 "(지원대상도) 322만명에서 32만명으로 10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며 "잘못된 공약을 대폭 줄인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이걸 보고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4대중증질환 치료비 100% 전액보장과 기초연금, 부채탕감이라는 박 후보의 '3대 민생공약'이 '3대 민생거짓말'로 완성된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의 문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소비자협회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행복기금에 대해 ▲기금축소로 인한 대상자 축소 ▲대부업 대출 제외 ▲은행 담보대출제외 ▲높은 채권매입가율 및 금융회사 이익분배 등의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협회는 "국민행복기금은 지원대상을 2월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자로, 신청기간을 10월 31일까지 한정짓고 있어 국민행복기금은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날 확률이 높다"면서 "국민행복 기금 대상자 중에는 이미 채무 재조정으로도 새출발이 불가능한 사람도 상당수여서 이들에게는 채무 조정이 아니라 개인 파산과 면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협회는 또 "지나치게 오래된 채권이 거래되거나 거래 과정이 채무 당사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면서 "채무 당사자에게 채권이 거래되는 과정에 대해 동의를 구해야 하며 거래 횟수 또한 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비싼 금리로 빌려놓고 차후에 낮은 금리로 전환해주는 정책은 금융회사의 배만 불려줄 뿐이다. 최고금리를 20%로 인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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