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마천루의 저주

유상석 / 기사승인 : 2013-04-08 10: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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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지구 개발사업 제동 걸리며 '저주론' 부상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개신교의 경전 중 하나인 <구약성서>의 창세기 편에는 바벨탑에 대한 짧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번영과 발전을 계속하던 인류는 ‘하늘 끝까지 닿는 아주 높고 거대한 건축물을 세워보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곧 이를 실천에 옮기게 된다.


▲ 유상석 기자

그러나 이를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여긴 신은 분노했고, 인류에게 원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더 이상 서로간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자, 탑을 세우려고 했던 인류는 불신과 오해 속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바벨탑의 저주’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현대에 이르러 ‘마천루의 저주’라는 이름으로 다시 회자되고 있다. 도이치방크의 리서치책임자였던 앤드류 로렌스는 1999년 ‘마천루 지수(skyscraper index)’라는 재미있는 지표를 제시했는데, 건축 기술의 발달로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던 초고층빌딩이 등장한 이래, 마천루 건설이 추진되면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의 예외 없이 경제위기 등의 불행이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이 지표에 따르면 미국 뉴욕 맨해튼에 47층(187m) 높이의 싱어빌딩이 건설되던 1907년, 미국에 20세기 첫 금융공황이 등장했다. 같은 장소에 102층(381m) 높이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지어지던 1929년엔 세계대공황의 폭풍이 전세계를 강타했다. 그 후, 110층(417m) 높이의 월드트레이드센터를 짓던 1973년엔 제1차 오일쇼크를 피할 수 없었다. 미국 맨해튼에서만 마천루를 짓던 중, 세 차례에 걸쳐 경제위기가 등장한 것이다.

이 밖에 말레이시아가 88층(452m) 높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건설하자,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등장했고, 두바이가 163층(828m) 부르즈할리파를 짓던 2008년엔 글로벌 금융위기가 등장했다.

최근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 제동이 걸리면서 우리나라도 ‘마천루의 저주’를 피해갈 수 없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용산 지구의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트리플원(111층ㆍ620m)의 건설 가능 여부가 불투명해졌고,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의 랜드마크 빌딩(133층ㆍ656m) 사업도 중단된 상태다. 당초 계획됐던 마천루 건설사업 중, 현재 정상적으로 진행 중인 곳은 사실상 롯데월드타워 정도가 유일하다.

신의 영역에 근접하고자 했던 인류의 지나친 욕심이 바벨탑의 저주를 불러일으켰다는 개신교 경전 속 이야기처럼, 건설을 통한 개발에 지나치게 욕심 낸 탓에 우리나라도 ‘마천루의 저주’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건 아닐지 염려되는 부분이다. 이번 ‘용산 개발’ 이후, 다시는 ‘마천루의 저주’라는 표현이 한국에서 나타나지 않길 바란다면 이 또한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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