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유상석 기자] 벽에 부딪힌 용산역세권개발을 놓고 이촌동 주민 간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한쪽에선 사업 정상화를 바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고 다른 한쪽에선 용산개발의 종지부를 찍을 구역지정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향한 비방전도 시작됐다. 반대파 사람들은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찬성주민들을 향해 “더 고생해봐야 정신차린다”며 날을 세우고, 찬성파 측에선 “서로 간 의견취합도 못한 채 무작정 반대만 외치고 있다”고 반대파를 향한 지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영근 개발동의자대책협의회 위원장은 사업을 책임져온 코레일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지난 6년간 개발에 찬성하던 주민들에게 한 마디 사과 없이 한 달 만에 “정리하겠다” 고 일방적으로 발표한데 따른 것이다.
주 위원장은 “위원회를 통해 먼저 사정을 설명하고 사업을 정리하게 된 배경을 털어놓는 게 순서였다”며 “이는 2300여 가구를 기만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일 11개 구역 개발동의자대책협의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용산개발사업 청산 절차가 이어질 경우 그동안 피해에 대한 2300여가구의 집단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사업이 좌초할 경우 개발구역에 포함된 서부이촌동 주민의 재산 피해가 자칫 제2의 용산 참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하기도 했다.
무료 변론에 나서기로 한 법무법인 한우리에 따르면 이번 소송 규모는 최소 2200억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소송 내용은 △이주비 명목으로 빌린 가구당 약 4000만원의 은행대출금 △구역 내 상권 황폐화로 인한 상가의 매출감소 △개발계획 발표 뒤 상승한 공시지가에 따른 재산세 인상분 △새 주거지에 전입신고를 하지 못해 입은 피해에 대한 위자료 등이다.
찬성 측 주민들은 서울시에 대한 악감정도 털어놨다. 무리하게 서부이촌동을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포함시켰단 이유다. 주 위원장은 “박원순 시장은 취임 후 1년이 넘도록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사업에 적극성을 보여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산관리회사(AMC) 박해춘 용산역세권개발 회장과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에 대해서도 “용산개발 사업 정상화는커녕 사업을 망치는 데 일조했다”며 “더 이상 주민을 기만하는 행동을 자제하고 자숙할 것”을 요구했다.
찬성 측 주민들이 이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지난 6년 동안 재산권이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8월 30일 시가 이주대책기준일을 정하면서 주민들은 집을 팔지도, 사지도 못 하게 됐다. 사실상 6년 동안 부동산거래가 제한된 채 살아온 것이다.
김재철 대책협의회 총무는 “2009~2010년 시 홍보물에는 2010년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보상 및 이주가 완료한다고 돼 있었다”며 “주민들은 그것만 믿고 생활비ㆍ학자금ㆍ이사 등을 이유로 대출받았는데 이제는 금융 이자에 발목이 잡혀 집을 경매에 넘기는 이웃이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부이촌동 경매 매물은 지난 2007년 28건에서 지난해 113건으로 4배 가량 늘었다. 현재 진행 중인 경매 건수는 15건, 앞으로 경매를 기다리는 물건은 150여개가 넘는다. 그것도 거래가의 60% 미만에 낙찰되고 있다.
한강 조망 프리미엄과 주변 낙후지역 개발 등의 호재로 한 때 10억원을 훌쩍 넘었던 서부이촌동 아파트값은 이미 반토막이 났다.
김갑선 서부이촌동 아파트 연합 비대위 총무는 “33평, 27평 아파트들이 지구 지정 전에는 13억, 또 10억 안팎에서 거래가 이뤄졌었다. 그런데 지금 경매로는 5~6억원 정도에도 경매에 넘어갈 정도니, 재산적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찬성 측에선 사업 후유증으로 상권도 죽어버렸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0년 철도정비창, 용산 우편집중처리국 이전으로 3000여명의 고정 고객들이 빠져나가면서 350여개이던 상가는 현재 150여개 정도만 남았다. 비어있는 상가가 전체 상가의 70%에 육박한다. 그나마 남은 곳 중 20여 곳도 조만간 문을 닫을 예정이다.
호프집을 운영하는 한 60대 여성은 “예전에는 하루 매출이 30만원을 넘었지만 지금은 1만~5만원 정도”라며 “월세를 내지 못 하니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 “이대로 살고 싶다. 이제라도 그만 두라!”
반면 개발을 반대해 온 주민들은 두 손 들어 환영했다. 이촌동 시범아파트 자치위원회 관계자는 “개발사업 청산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를 곧 내걸 예정”이라면서 “서둘러 도시개발구역을 해제해 그동안 묶여 있던 주민들의 재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 한복판에서 도시개발법을 근거로 주민들을 강제수용하려 한 것부터 잘못”이라고 했다.
이복순 반대총연합회 위원장은 용산개발 좌초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6년간 고통을 받았던 것이 억울하긴 하지만 사업이 무산되길 바라며 계속 싸워온 성과”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이제 ‘구역지정 해제’에 힘을 쏟겠다고 언급했다.
용산개발에 종지부를 찍는 작업으로 지난 11일에는 서울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부도가 난 마당에 구역지역 해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서울시가 이를 막을 경우 주민들과 검토해 법적 대응도 준비하겠다”고 언급했다.
이 위원장이 이끌고 있는 연합회에는 당초 용산개발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2012년 8월 보상안이 나온 직후 반대로 돌아섰다. 사업초기인 2008년 제시된 보상안과 2012년의 보상안의 내용이 달라졌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정상화 방안을 마련 중인 협의회측에 대해서는 “다들 개인재산 처분이 필요한 상태로 여기에 거주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 실패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주민들이 거짓된 보상안에 속아 무지하게 동의서를 제출한 결과”라고 비난했다.
구역지정 해제 후 재산권 행사가 가능해진 이후에는 내부 논의를 거쳐 자체 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구역지정 해제만 이뤄진다면 서부이촌동 사람들은 자유를 얻게되는 셈”이라며 “개발을 위한 또 다른 방안이 추진된다면 이제는 5~6년이 아니라 10년 이상의 피해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개발 때문에 이웃 사촌이 원수로…
개발 찬반 문제와 관련, 주민들 사이에서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이웃 간의 정도 찢어지고 말았다. 일부 주민들 사이에선 “서부이촌동은 증오만 가득한 ‘유령 도시’가 돼 버렸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열쇠가게를 운영해 온 전 모(55) 씨는 “이곳 주민들 대부분 20~30년간 살아온 토박이라 서로 형님 아우, 언니 동생하던 사이였다”며 “개발에 대한 입장차 때문에 서로 인사는커녕 삿대질과 폭행으로 고소ㆍ고발이 이어지면서 동네 분위기가 살벌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주민 최 모(58) 씨는 “개발 찬성ㆍ반대로 주민들이 갈리면서 40년간 죽마고우로 지낸 사이가 등을 돌리고 사는 삭막한 동네가 됐다”며 “모든 게 개발로 인한 것이다. 누가 우리 동네를 이런 유령도시로 만들었나”라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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