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고전읽기]술로 채운 연못에서 벌거벗고 뛰놀다

정해용 / 기사승인 : 2013-04-15 13: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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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주지육림(酒池肉林)

北里之舞 靡靡之樂 북리지무, 미미지악
기생들의 저속한 춤과 음탕하고 퇴폐적인 음악 (<史記> 殷本紀)
은(殷)이 망하기 직전 주왕(紂王)이 즐긴 음란하고 퇴폐한 춤과 음악

중국 고대사에서 요순(堯舜)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도와 덕을 따라 살았던 태평성대의 임금들을 일컫는다. 그 반대의 의미로 오르내리는 폭군의 대명사는 걸주(桀紂)다. 하의 마지막 왕 걸과 은의 마지막 왕 주, 두 사람은 사치향락과 오만, 포악하며 황음무도한 정치로 백성을 괴롭히다 끝내 나라를 망하게 한 망군(亡君)이다.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 처음엔 ‘잘난’ 영웅호걸이었다.
‘주제(紂帝)는 타고난 바탕이 총명하고 말재간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일처리가 신속하며, 힘이 보통사람보다 훨씬 세서 맨손으로 맹수를 때려잡을 정도였다. 또한 지혜는 신하의 간언이 필요치 않을 정도였으며, 말재주는 자신의 허물을 교묘하게 감출만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여 천하에 명성을 드높이려고 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 못하다고 여겼다.’ (<사기> 은본기)

둘째, 술과 여자를 좋아했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 했던가. 은나라 걸왕이 여자에게 빠져서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다가 망했다고 했거니와, 주왕 역시 국사를 돌보는 일에 싫증이 났는지 여자가 너무 좋아서였는지 나랏일은 제쳐두고 오직 노는 일에 몰두했다. 점잖은 궁중의 음악으로는 흥을 돋우기에 부족했던 모양이다. 몸이 녹아내릴 듯한 저속한 춤과 음탕한 음악들을 짓게 했다. 이를 <사기>에서는 ‘북리지무 미미지악(北里之舞, 靡靡之樂)’이라 했다. ‘북리’란 당시 기녀들이 머무는 집으로 옛 아랍의 할렘과 같은 곳이니 ‘북리지무’는 기녀들의 요염한 춤을 이르는 것이고, ‘미미지악’은 걸왕의 악사장인 사연(師涓)이 작곡했다는 음탕하고 퇴폐적인 음악을 이른다.

셋째, 사치스럽고 황음무도했다. 주왕이 특히 좋아한 여자는 달기(妲己)라는 여자였는데, 점령지인 유소(有蘇)국에서 바친 여자다. 얼마나 요사스러웠던지 천하영웅 주왕이 달기에게 빠진 이후로는 아예 국사를 팽개치고 오직 사치향락에 빠져 낮과 밤을 잊었다. 음란한 춤과 음악을 짓게 한 것도 모두 달기를 위해서였다. 궁 안에 연못을 파서 그 위에 배를 띄우고 놀았는데, 어느날 달기가 술을 뜨러 왔다갔다 하는게 귀찮으니 아예 연못을 술로 채우자고 했다. 왕이 그 말을 따랐다. 달기는 또 안주 또한 아무 때나 집어먹을 수 있도록 널어놓고 먹자 하니 왕은 말린 고기를 연못가 나무에 잔뜩 널어놓게 했다. ‘주지육림’(酒池肉林; 술로 채운 연못과 고기나무 숲)이란 말이 여기서 생겼다. 옷을 입고 벗는 것도 귀찮았다. 주왕은 시종과 하녀들로 하여금 주지육림 가운데서 발가벗고 뛰어다니며 어울려 놀게 했다. 악공과 광대들은 밤낮으로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넷째, 백성의 고혈을 쥐어짰다. 주왕은 누각을 새로 짓고 그곳에 진귀한 보석이나 곡식으로 채우도록 했으며, 기이한 야생동물과 애완동물들을 구해다가 정원에 풀어놓아 지상낙원을 꾸미고자 했다. 게다가 전례 없는 잔치를 밤낮없이 좋은 음식으로 먹고 마시자니 백성에게 더 많은 세금과 공물을 부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째, 오만하여 하늘과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없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여섯째, 포악하여 원칙 없이 사람을 많이 죽였다.
국사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 있는 혼군에게도 충심으로 간(諫)하는 신하가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말이 왕의 귀에 들릴 리 없다. 처음에는 역정만 내던 왕은 점차 귀를 막고 화를 내고 마침내는 벌을 가했으며, 그래도 바른 말 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은 갈수록 포악해졌다. 주왕은 국사를 위해 서백(西伯)과 구후(﹑九侯) 악후(鄂侯)를 삼공(三公; 후대의 정승과도 같은 세 사람의 최고 관직)에 임명하고 있었는데, 구후의 딸이 아름다웠으므로 주왕이 비로 삼았다. 그런데 비는 정숙하게 자란 여자여서 주왕의 음탕한 놀이에 따르지 않았다. 수치심을 느낀 왕은 화를 참지 못해 왕비를 죽여버렸고, 그 아비이자 정승인 구후까지 죽이고 포를 떠서 소금에 절였다. 이를 본 악후가 만류하면서 격렬히 나무라자 주왕은 그 또한 죽여서 포를 떴다.

일곱째로, 충신을 잃어버린 왕에게는 간신들만 남았다. 삼공(三公)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서백 창은 구후와 악후의 최후를 전해 듣고 혼자서 한숨을 쉬었다. 이를 본 간신 숭후 호(崇侯虎)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에게 달려가 고자질했다. 주왕은 서백을 체포해 성루에 가두게 하였다. 그런데 서백의 가신들이 온갖 미녀와 보물을 갖춰 주왕의 심복 비중(費中)을 통해 용서를 구하자 주왕은 간사한 비중의 변호를 듣고 서백을 풀어주었다. 서백은 후일 민심을 모아 주를 정벌한 주(周) 무왕의 아버지다.


- 이야기 Plus
주왕이 밟은 망국의 길은 일찌기 하나라 걸왕의 예를 그대로 답습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인간이 다른 짐승들과 다른 것은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을 반성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역사라는 거울이 있어도 그것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은 옛사람의 잘못된 길을 똑같이 되풀이하고야 만다. 특히 그가 국가나 어떤 집단의 운명을 책임진 지도자라 할 때, 역사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지도자의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 가운데 청소년기 학교에서부터 민족의 역사를 잘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 줄곧 지적되고 있다. 고급 관료와 외교관, 사법관을 뽑는 공무원 고시에서부터 대학입시나 공사(公私)기업의 취업과 승진에 이르기까지 국사지식을 묻는 시험은 거의 없다. 자기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끄는 조직이나 사회집단이 어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쳇바퀴 돌리듯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동안 퇴보해갈 것은 분명하다.


주왕(紂王)은 머리가 뛰어나고 힘도 강한 ‘잘난 남자’였으나 곧 달기와 함께 주색에 빠져 황음무도해졌다. 술로 채운 연못에 배를 띄우고 벌거벗은 남녀들을 뛰어다니게 했으며 반대하는 중신들은 포를 떠서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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