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유상석 기자] “IMF 때 보다 더 어려워요. 옆 가게는 업종이 올해에만 벌써 두 번이나 바뀌었어요.”
서울 송파구 문정동 아파트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채소 좌판을 벌이고 있는 김 모 할머니(68)는 “하루 종일 앉아있어 봐도 값을 물어보는 사람도 별로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사람들이 도무지 돈을 쓰려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기업들도 일 년을 벌어도 이자를 제대로 못 내는 데가 속출하는 한편, 지역 경제도 IMF 환란 때보다 불황이 더 심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정도로 극도로 침체돼 있다.
◇ ‘있는 사람’까지 돈 안 써… 경기침체 ‘심각’
IMF 때는 불요불급한 소비는 안 하더라도 꼭 써야 할 곳엔 주머니를 열었고, 부유층은 오히려 그 이전보다 돈 쓰는 재미를 톡톡히 누리며 백화점을 휩쓸었다. 소위 ‘있는 사람’들의 소비로 경기가 살아났고, 결국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게 해준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고소득층들까지 돈을 쓰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돈이 돌지 않으니 자연히 경기침체가 더욱 심화되고, 이것이 자영업자들의 목을 바짝 조르고 있다.
소비가 크게 위축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통계 조사결과도 나와 있다. 지난 5월27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가구당 월평균 보건비 지출이 17만1481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했지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증가세를 보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외래 치료 서비스는 2.2% 감소했고, 의약품 지출도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도 병원 가기를 거부하고, 약도 사먹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죽을 지경이 아니면 고통을 참고, 병원과 약국도 안 갈 정도이니 음식점을 비롯해 동네 슈퍼, 간이주점, 노래방, PC방 등 전통적인 서민형 자영업자들은 불황의 늪에 빠져 헤어날 희망이 없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10대 공약의 하나로 ‘지역균형발전’을 내놓은 바 있다. 또 세수 확대를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하우스푸어 구제에 나서는 등 경기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좀처럼 효험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대형마트 규제론 도움 안 돼
경기침체 장기화는 상인들에게 그 체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형마트 주말 영업 규제, 역세권 근처 대형마트 제한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 상인들의 속은 타들어가고만 있다.
국회와 정부는 ‘대형마트 의무 휴업제’를 앞 다퉈 실행에 옮기고 있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의 대형마트 규제 이후 전통시장 및 골목상권을 찾는 고객 수는 크게 변함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대형마트의 매출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강제 휴무에 대응해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일 이전에 세일을 하는 등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시설 측면에서 전통시장은 기업형 대형마트와 경쟁이 어렵다. 소비자들은 조금 비싸더라도 시설이 잘 갖춰진 편하고 쾌적한 대형마트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더구나 날씨가 무더워지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고객은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릴 확률이 높다.
골목상권의 경우 주차공간과 편의시설 부족, 교통체증 등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정책의 효과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단순히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해서 전통시장을 찾고 근처 작은 상점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네거티브적인 정책만으로는 골목상권을 활성화시키는데 분명한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며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상권 자체의 내부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지역 특성 살린 다양한 사업
대기업 산하의 대형마트나 대기업 계열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경우, 높은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규모 광고나 홍보로써 고객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반면, 골목상권의 마케팅 활동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청이 적극적으로 나서 전통시장 및 상권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상인과 지자체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현재 중기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이 주도하고 있는 ‘상권활성화 지원사업’이 그것인데 이달 중에 2012년도 사업을 마무리하고, 7월부터는 2013년도 사업을 이어간다.
지역상권 활성화 사업의 명칭은 ‘문화관광형 시장사업’으로 ‘전통시장에 문화 혹은 관광을 접목시켜 침체된 시장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활기를 불어 넣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지역 특성을 최대한 살려 다양한 형태의 사업으로 현장에 적용하고 있는 이 사업은 해당 지역의 인근 관광지와 연계한 시장투어를 비롯해 문화이벤트 등을 통해 전통시장을 살리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시범지역 6곳 선정 중점 지원
중기청 산하의 시장경영진흥원(시경원)은 2004년에 제정된 재래시장육성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된 기관으로 전통시장 및 상점가를 지원하는 전문기관으로 침체돼 가고 있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조사연구, 정책개발 및 지원, 시설 및 경영에 대한 자문과 교육 등을 서비스하고 있다.
시경원은 그간 전통시장에만 국한되어 있는 사업의 규모를 확대하고 지역상권 전체를 묶어 통합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전통시장과 상점가를 개별적으로 지원하던 종래의 방침을 바꿔 전통시장 및 주변 상점가 구역 전체의 상권 활성화를 지원하는 ‘상권활성화구역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시경원측은 “이 사업은 지역 상권이 대형 유통업체들과 맞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성공적인 상거래 공간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상권활성화구역사업은 2011년 상권활성화 사업계획 검토 후 설립된 상권활성화기구를 바탕으로 전통시장ㆍ상점가ㆍ지하상가ㆍ상업지역 등 특정 지역 내 상권 전체를 하나로 묶어 지역상권 전체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실질적인 사업 착수는 지난해 6월에 2012년도 사업이 출범하면서 본격화했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이벤트 사업 부문은 3년간, 시설현대화 부문에는 5년간 구역 당 최대 국비 100억원을 연차적으로 지원한다. 지자체들이나 상인들이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규모이다.
이 사업의 핵심은 종전에 시행해오던 전통시장지원 방식과 차별화해 선정된 상권활성화 구역에 기초 인프라 구축(시설 개선)과 경영개선 사업을 연계해 지원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시경원은 서울 마포(도화동ㆍ용강동 상점가), 경기 성남(수정로), 강원 동해(동해중앙시장), 충북 청주(육거리시장ㆍ성안길상점가ㆍ남주동시장), 부산 동구(조방 앞 상점가ㆍ자유시장), 경남 창원(오동동-창동 통합상가ㆍ수남상가ㆍ정우새어시장ㆍ마산어시장ㆍ부림상가) 등 6곳을 시범지역으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사업구역으로 선정된 시ㆍ군ㆍ구 지자체는 상인들과 협의해 상권관리기구를 설치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한 후, 시ㆍ도와 중기청으로부터 사업계획 승인을 받아 시행하는 절차를 거쳐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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