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조영곤 기자] 김균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취임 1년(11일)을 눈앞에 두고, 불명예 ‘낙마’했다. 지난 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자력발전소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파문의 책임을 물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김 사장을 이례적으로 면직 조치했다.
정부 관계자는 “김 사장이 사태를 마무리 짓고 물러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즉시 면직 조치가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며 “그만큼 정부와 청와대가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7일부터 후임 사장이 선임될 때까지 전용갑 부사장이 직무대행을 맡는다.
불명예 퇴진한 김 사장은 ‘비리백화점’, ‘원전 마피아’로 불리는 한수원 재정비의 막중한 임무를 맡았지만 사상유례없는 전력난이 예고된 상황에서 원전 가동 중단 참사를 불러왔다.
◇위조 부품 사용…원전 가동 중단
주요 원전에 성능이 조작된 부품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나 지난달 28일 신고리 원전1·2호기 등의 가동이 중단된 가운데 신고리 원전3‧4호기에서도 성능이 조작된 부품이 사용됐다는 정황이 포착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5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제어케이블 성능을 위조한 새한티이피가 신고리 원전3‧4호기에 납품된 부품의 성능 검증작업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또 다른 성능위조 여부는 없는지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원안위 관계자는 “새한티이피가 지난 2006년부터 신고리, 신월성, 원전 등에서 최소 23건의 성능 검증작업에 참여했다”며 “다른 부품의 성능도 위조하지 않았는지 일일이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검증 결과에 따라 추가 원전 가동 중단 등 파문이 확산될 수 있어 원안위 전수조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수원 관계자는 “현재 추가 위조 부품 사용여부와 관련, 정부와 함께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최악 전력난 예고…한수원 ‘진땀’
위조된 불량 제어케이블이 사용된 사실이 드러나 가뜩이나 전력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100만 kW급 원전 2기(신고리 호기, 신월성 1호기)가 가동을 중단함에 따라 올 여름 전력대란이 우려된다.
5일 현재 원전 23기 가운데 모두 10기 멈춰섰다. 또한 위조 부품 사태로 인해 원전 가동 스케줄 모두가 뒤죽박죽돼 한수원이 ‘진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달 8일부터 계획 예방 정비를 위해 가동을 중단했던 신고리 1호기는 정비기간을 연장해 불량 부품을 교체토록 했다.
현재 운영허가 심사단계인 신월성 2호기는 운영허가 전까지 불량 제어케이블을 교체토록 지시했다. 원안위 등에 따르면 위조된 케이블 교체 소요기간만 4개월~6개월이 걸린다.
한수원발 전력 대란은 ‘블랙아웃’이라는 끔찍한 사태의 가능성마저 대두되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난의 핵심이 될 산업계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수원이 저질러 놓은 일을 산업통상자원부가 수습하는 꼴이다.
산업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산업계를 돌며 전력 감축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읍소하고 있다.
전력난을 야기하는데 공헌(?)한 한수원은 사상 최악의 사태를 불러왔으면서도 변명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한수원의 한 관계자는 “책임은 통감한다. 하지만 전력공급예비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한 뒤 “원전 건설에 보통 15년이 소요되는 상황인데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김균섭 한수원호 1년 동안 뭐했나
김균섭 한수원 사장은 지난해 5월 고리원전 정전 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종신 사장 후임으로 같은해 6월 11일 취임했다. 김종신 전 사장은 표면적으로 정전 사고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납품비리 등 문제가 누적돼 사퇴 수순을 밟았다.
김균섭 사장 취임이후 한수원은 모두 10차례 이상의 이사회를 개최했지만 비리 재발 등을 방지 위한 안건은 조직개편 방안 1건에 불과했다. 그 사이 한수원은 사장 및 임원 보수와 직원 임금을 올렸으며 부사장 직제를 신설했다.
아울러 직원 복리후생 증진 및 사기 고취를 위해 순이익 144억원을 추가로 사내복지기금에 적립하기로 의결했다.
최근 2년 사이 터진 원전 관련 사고와 비리를 방지하기 위한 자체 정화 노력의 의지가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한수원 관계자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외부 전문가 영입을 통한 투명성 확보 노력, 경영혁신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설명한 뒤 “전사구매통합시스템을 구축해 본사에서 구매를 통합 관리하는 한편, 내부승진인사 역시 외부에서 평가 받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강조했다.
한수원은 자정 능력 상실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동업자 의식, 상명하복 이른바 ‘원전 마피아’ 조직 문화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2월 발생한 고리 원전 1호기 정전 은폐 사고를 조사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보고서를 통해 “직장 상사에 대한 과도한 존경심이 만연해 조직 운영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며 한수원 조직문화를 꼬집었다.
이와 관련, 한수원 관계자는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마피아’ 지적과 관련, 사실도 더러 있지만 언론이 오해한 부분도 있다”며 “종합적인 대책 마련 과정에서 이 부문도 언급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판단”이라고 말했다.
◇한수원 대기업 눈치보나 후속조치 ‘눈살’
한수원이 원자력발전소 부품 검증서류 위조에 연루된 기관 및 관련자들을 고소하면서 ‘원전 마피아’와 대기업 오너 일가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6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원전비리 사건이 터진 직후 불량 케이블을 생산한 JS전선 황모 전 대표와 새한티이피 오모 대표, 이 회사 전 직원 문모씨 등 3명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일반적으로 법인 대상 고소 사건은 현재 대표가 대상이 포함된다. 하지만 한수원은 JS전선의 현직 대표 대신 2년 전 이미 퇴사 한 전 대표를 고소했다. 현재 JS전선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은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인 구자엽 LS전선 회장이다.
이와 관련, 한수원측은 “검증서류 위조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시기의 회사 대표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성적서를 위조한 새한티이피에 대해서는 위조 당시 대표를 고소 대상으로 제외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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