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김경탁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29일 대선출마를 선언한 후 첫 번째 정책 이슈로 ‘탈원전 반대’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는 혼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이전 직장에서 정말 징글징글할 정도로 많이 썼던 ‘탈원전’ 관련 가짜뉴스 반박 기사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평생 검사로 살다 정치인이 되려고 여러 사람을 만나 단기속성 과외를 받는다는 뉴스를 한동안 접한 것 같은데, 역시나 단기속성으로는 한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윤 전 총장의 강력한 대체제로 주목받고 있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떠올랐다.
헌법기관인 감사원 원장에서 사직한지 18일 만에 국민의힘에 입당한 최 전 감사원장이 ‘탈원전 이슈’ 하나로 지금의 주목을 만들어냈던 걸 생각하면, 윤 전 총장이 탈원전 이슈를 자기 것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욕구 자체에는 나름 납득되는 측면이 있다.
다만, 윤 전 검찰총장이든 최 전 감사원장이든 만약 나중에 정말로 대선후보가 되어서 ‘탈원전’ 이슈를 주요 정책공약으로 만들기 위해 관련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거나, 그 이슈로 경쟁후보와 토론하게 되면 반드시 “내가 왜 탈원전 이야기를 꺼냈지?”하고 후회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점은 장담한다.
지난 4년간 언론들이 쏟아낸 그림과 실제 현상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들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해 무수히 많은 가짜뉴스를 쏟아내 왔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전기·전력과 관련해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이 모두 ‘탈원전’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는 식이다.
정부 대변인 격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운영하는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이라는 사이트에서 ‘탈원전 무관’으로 검색하면 85건의 보도자료가 나오는데 1건을 제외하고 모두가 언론의 잘못된 탈원전 관련 보도에 대한 반박을 다룬 내용이다.
정말 참담한 대목은, 언론들이 새로운 레퍼토리를 계속계속 발굴해서 새로운 해명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십차례 설명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는 일이 지난 4년간 반복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인 16일자 설명자료 [올 여름철 낮은 수준의 예비율은 탈원전 정책과 무관하며, 원전 정비 및 가동은 관련 법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짐]을 살펴보자.
같은 날 세계일보, 문화일보, 매일경제 등에서 보도한 [“폭염 시작됐는데...” 벌써부터 전력대란 비상]이라는 취지의 보도기사에 대한 반박이다.
이 언론 기사들의 취지를 요약하면 “문재인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고집하느라 멀쩡한 원전을 멈춰 세우고 예정됐던 원전건설까지 중단하니 원활한 전력수급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올 여름철 낮은 수준의 예비율은 탈원전 정책과 무관하며, 전력공급 능력은 작년과 유사한 수준이나, 산업생산 증가 및 기상영향 등으로 전력수요 전망치는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재 고장·정지중인 발전소의 정비가 예정대로 완료되면 전력공급능력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며, 전력예비율 하락에 대비한 추가 예비자원을 확보하여 안정적 전력공급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산업부는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원전 설비용량이 줄지 않았고 이미 계획된 원전건설은 진행하고 있으므로 원전 설비용량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원전 설비용량은 2017년의 2만2529MW에서 올해 2021년에는 2만3250MW로 늘어났다.
산업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라 원전은 ‘신규 원전 건설 중지와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의 원칙에 향후 60년 이상에 걸쳐 점진적으로 감축될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전력공급원으로서 일정 역할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또한 “원전 정비는 원전 가동의 최우선 가치인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 산업부는 “원전안전법령상 기술기준과 안전성에 대한 규제기관의 점검 등 관련 법령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며 정부가 인위적으로 정비를 이유로 원전을 세워놓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장기 정비 중인 한빛4호기와 5호기의 경우, 격납건물 철판부식 및 공극, 원자로헤드 관통관 용접 오류 등에 따른 정비인데, 격납건물과 원자로헤드 관통관은 원전의 핵심 안전설비로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철저한 정비, 점검 및 검증이 필요한 상태이다.
읽어보면 ‘그렇구나’하고 쉽게 이해되는 내용이다.
그러나 산업부는 이 내용과 거의 똑같은 해명을 지난 14일과 2일에도 했고, 지난달 17일, 16일에도, 3월 17일에도 했다. 아무리 해명·설명을 해도 언론들이 전혀 개의치 않고 똑같은 오보·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말이다.
한 언론사가 오늘 탈원전 관련 오보를 내고, 정부에서 차분하게 그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다음날 혹은 그 다음 주 아니면 그 다음 달에 똑같은 오보가 다른 언론사 혹은 오보를 냈던 바로 그 언론사에서 다시 나오는 일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지난 4년간 끝없이 반복돼왔다.
구성원들의 믿음 그 자체가 믿음이라는 자산을 만들고 유지한다는 신용창출의 원리가 국내 언론들의 ‘탈원전’ 관련 보도에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언론사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게 맞는 소리인지 굳이 팩트체크를 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끝까지 탈원전 정책(공식 명칭은 ‘에너지전환정책’이다)의 기획자이자 주체인 정부가 뭐라고 말하는지 무시하고 국민의 눈을 가릴 수만 있으면 이 가상자산의 높은 탑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한 마디로 “탈원전 코인 가즈아~”라고 할 수 있으려나.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산업부가 자료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꼭 짚어야하는 문제가 있다.
한전 적자의 중요 원인중 하나로 꼽히는 문제이기도 한 원전 정비 증가의 핵심 원인이 이명박 정부 때 주로 벌어지고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원전비리라는 것이다.
지난 7월 12일 오전 6시 12분쯤 부산 기장군 고리3호기 원자로가 자동정지하는 일이 있었다. 올해만 총 9번 째 원전 고장이었다. 5월 24일의 신고리 4호기 화재 원인조차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전해진 소식은 주변 지역의 시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원전사고가 터지고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후쿠시마원전사고는 여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참사’이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원전 밀집도 △개별 원전 부지별 밀집도 및 규모 △원전 규모 대비 30km 반경 내 인구수 등에서 세계 1위 국가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다고 한다. 원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훨씬 치명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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