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화가 박혜령, 캔버스 위에 새긴 인생이야기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3-09-18 11: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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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임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마음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가수 송창식의 노랫말이다. 제목은 선운사다. 노래라기보다는 한 편의 시다. 송창식은 동백꽃을 보고 시인이 됐다. 동백꽃의 슬픈 사연을 애잔하게 표현했다.

시는 천재가 쓰는 거라 했다. 송창식은 노래의 천재다. 노래만 천재가 아니다. 시에도 천재다. 선운사 한 곡으로 여실히 보여주었다. 

 

▲ 박혜령, 동백의 향연

 

동백꽃은 어떤 꽃일까. 어떤 사연이 있기에 송창식의 마음을 울렸을까.

동백꽃은 슬픈 꽃이다. 곱디고운 붉은 색은 피눈물 같다. 동백꽃은 꽃송이 째 떨어진다.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활짝 핀 모습 그대로 사라진다. 가장 아름다울 때 삶과 이별한다. 아쉬움도 없이 떠난다. 떨어진 꽃들은 양탄자와 같다. 죽어서도 아름다움을 놓지 않는다.

동백꽃은 바람 불어 설운(서러운) 날에 보면 더 슬퍼진다. 떨어지는 꽃송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인다. 삶의 끈을 놓는 자태가 서럽게 느껴진다. 피눈물을 흘리며 살았던 여인의 삶이 떠오른다.

동백꽃을 한마디로 정의하자. 눈물처럼 지는 동백꽃이라고.

동백꽃을 그리는 화가가 있다. 박혜령(67) 화가다.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어떤 사연일까. 사랑하는 남편을 보냈다. 남편은 동백꽃처럼 떠났다. 인생의 절정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만 남긴 채.

 

 

▲ 동백꽃 화가 박혜령

 

박혜령의 동백꽃에는 남편과의 추억이 담겨 있다. 남편은 2015년 11월에 조영남의 ‘모란 동백’을 들려줬다. 무뚝뚝했던 남편이 준 선물이었다. 아마도 죽음을 예고했던 것일까. 남편은 2016년 8월에 떠났다. 다시 못 올 그 먼 길에 발을 내디뎠다. 눈물처럼 떨어지는 동백꽃 삶을 살다 갔다.

박혜령의 동백꽃에는 아쉬움이 피눈물처럼 흘러내린다. 그녀의 동백꽃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다. 자신의 슬픈 마음을 모른 채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도 숨겨져 있다.

박혜령은 동백꽃을 그릴 때 행복하다. 남편과 함께했던 여행길이 떠오른다. 동백꽃 사진을 찍기 위해 다녔던 오동도 숲에 빠져든다. 빙그레 웃으며 격려했던 남편 모습에 웃음 짓는다.

박혜령은 미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서양화를 전공했다. 1978년 졸업했다. 졸업 이듬해 결혼했다. 결혼과 동시에 붓을 놓았다. 가사에 전념했다. 미술세계에서 멀어졌다.

우연히 다시 붓을 잡았다. 1994년 서울대 미대 동문 전시회에서 출품요구가 왔다. 수채화를 출품했다. 그리고 또 캔버스와 멀어졌다.

미술은 그녀에게 운명이었나 보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2000년 캔버스 앞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졸업 후 22년 만의 귀향이었다.

 

▲ 박혜령, 그곳에 가면 (동백꽃 Ⅲ)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 개인 교습을 받았다. 꽃을 그리는 선생님이었다. 4년간 교습을 받았다. 자존심을 버린 채 열심히 배웠다. 수도승의 자세로 수련했다.

2006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80여 점을 출품했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호사다마일까. 2007년 암이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귀찮은 손님이었다. 문전박대를 할 수 없었다. 어르고 달래기를 2년여. 암세포와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암은 박혜령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떠났다. 투병 기간 중 동백꽃을 만나게 해줬다. 오동도에 들렸을 때다. 꽃송이 째 떨어지는 동백꽃. 눈물처럼 떨어지는 동백꽃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한을 간직한 채 떨어지는 듯했다. 떨어지는 동백꽃의 설움이 뼛속을 파고들었다.

박혜령은 동백꽃을 그리기로 했다. 동백꽃을 통해 한민족의 한을 표현하고 싶었다. 어쩌면 자신의 숨겨진 한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2010년과 2012년 개인전을 열었다. 동백꽃 전시회였다.

“동백은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봄을 잉태하는 꽃나무이다.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지닌 동백꽃은 우리민족의 한과 그리움을 간직한 꽃이기도 하다. 나는 동백의 생명력과 붉은 꽃잎과 노란 꽃술에 반해 동백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 작가노트 중에서

 

▲ 박혜령, 그곳에 가면-물확동백Ⅱ

 

박혜령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보냈다. 암과 지루한 사투를 벌였다. 이제는 모두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한낮의 신기루였다. 가고 오는 것이 인생임을 몸소 체험했다.

박혜령의 동백꽃 그림에는 인생이 녹아있다. 기쁨이 충만해 있다. 살아있음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 차 있다. 회한의 눈물이 숨겨져 있다. 인고의 고통이 내재했다. 생사를 넘나든 끈질김이 나타나 있다.

동백꽃 화가 박혜령. 그녀의 소망은 무엇일까. 아주 소박하다.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화가로 남는 것이다.

 

토요경제 /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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