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숲에 색을 입히다…환상의 숲을 그리는 화가 '홍림'

김병윤 기자 / 기사승인 : 2023-09-11 12: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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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다. 아니다. 이미 병들어 있다. 열이 난다.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치료가 어려울 정도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난다. 나 좀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피를 토한다. 시뻘건 피는 흙탕물로 변한다. 흙탕물은 아귀로 변모해 지구를 삼키고 있다.

지구가 위기에 처해 있다. 이상기후에 시달리고 있다. 빙하가 녹고 있다.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다. 바닷물이 들끓고 있다. 사람의 체온보다 더 뜨겁다. 사막에 눈이 내리고 있다. 홍수로 삶의 터전이 없어지고 있다. 가뭄으로 풀마저도 죽어가고 있다. 먹을 식량이 부족하다. 산모는 영양실조에 걸려 기력이 없다. 말라붙은 젖을 빠는 아기의 몸부림이 애처롭다.

이 모두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인간은 편안함과 안락만을 추구했다. 석탄과 석유를 마구 퍼냈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사용했다. 에어컨과 난방 기구를 쉴 틈 없이 돌려댔다. 탄소배출이 지구를 달구고 있다.

푸르른 숲도 파괴했다. 나무를 무자비하게 잘라 냈다. 우거진 숲에 불을 질렀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다. 새와 곤충이 노닐던 숲은 잿더미로 바뀌었다. 지구가 숨 쉬던 허파에 병이 들었다. 온난화는 끝났다. 열대화 시대에 돌입했다.  

▲ 홍림 화가는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숲을 아쉬워하며 환상의 숲을 그린다.<사진=홍림 화가>


사라지는 숲에 눈물짓는 화가가 있다. 환상의 숲을 꿈꾸는 작가다. 특이한 경력의 홍림(67) 화가다.

홍림은 지난 6월 개인전을 열었다. 2번째 개인전이었다. 주제는 판타지였다. 40점을 전시했다. FANTASY FOREST(환상의 숲). 미지의 세계로 여행. 정물화 3 분야로 구성했다.

“FANTASY FDREST”는 기후 변화와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려 했다. 쉴 틈 없는 동식물들의 변화를 묘사했다. 자연의 근원과 생명존중의 공감대를 표현했다. 햇빛 물 공기 생명이 서로 이로움을 주는 숲의 중요성에 중점을 뒀다. 진솔한 환경운동가의 모습이다. 숨어있어 더 빛나는 진주와 같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은 쿠바를 소재로 했다. 안 가본 나라에 대한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덥고 열정적인 나라. 먹거리가 좋은 시장풍경을 그렸다. 작가의 도전성을 미화시켰다.

정물화는 따뜻함을 나타내려 했다. 꾸준히 잘 팔리는 꽃을 묘사했다. 상업적 개념에서다.

작가의 자연 사랑과 상업적 생각이 잘 어우러진 전시회로 평가 받았다.

홍림의 작품은 독창적이 아니다. 상대방의 필요성을 충족시켜 준다. 상업적 부분이 뛰어나다. 색감이 예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집에 걸어놓기 좋은 그림이다. 오랜 직장 생활의 결과인 듯하다. 이런 요소가 미술의 대중화에 한 몫하고 있다는 평이다.

홍림은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다. 소질도 있었다. 주변의 칭찬이 대단했다. 꿈도 유명한 화가였다. 공부도 잘했다. 가정형편상 미대진학을 포기했다.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활이 재미없었다. 미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2학년을 마친 후 휴학했다.

1년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미대에 대한 욕망이 용솟음 쳤다. 미대로 편입했다. 살 것 같았다. 재미있었다. 열심히 공부했다. 이유가 있었다. 장학금을 타야만 했다.

졸업 후 의류회사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결혼 후 퇴사했다. 2년 근무했다. 집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1984년 재취업의 기회가 왔다. 삼성그룹에서 주부사원 공채를 했다. 재미로 응시했다. 예상 밖으로 덜컥 붙었다.

신세계백화점으로 발령이 났다. 디스플레이를 담당했다. 20년 근무했다. 짬을 내 대학원에 진학했다.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다. 50살에 퇴사했다.

퇴사 후 2005년 디자인 회사를 설립했다. 신세계, 현대백화점의 물량을 수주했다. 사업이 번창했다. 직원이 70명에 이르렀다. 격무에 몸은 파김치가 됐다, 피안의 안식처를 찾고 싶었다. 갈매기 울어대는 외딴 섬이 그리웠다. 꽉 진 주먹을 보자기로 만들었다. 주먹을 펼치니 망망대해가 밀물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63살에 회사 문을 닫았다.

홍림은 회사운영을 하면서도 화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사장실에 미술도구를 갖추었다. 틈틈이 붓을 놀렸다. 회화를 배우러 화실에 다녔다. 개인교습도 받았다. 회화에 대한 미련을 덜기 위해서였다.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이런 노력으로 2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홍림은 공모전에 큰 관심이 없다. 개인전을 우선시 한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으면 개인전을 계속할 계획이다.

“사업을 잘해 돈은 좀 벌었습니다. 좋은 점은 경제적 안정감이 생겼어요. 반면에 헝그리 정신이 없어진 걸 느껴요. 근성으로 지탱하고 있습니다. 저는 욕심이 많은 성격이거든요.”

홍림의 꿈은 소박하다. 어린 시절 유명 화가의 꿈은 접은 지 오래다. 세월이 녹아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밝고 긍정적 그림을 그리려 한다.

홍림의 수줍은 한 마디가 천상 여자임을 느끼게 한다.

“여자니까 예쁘게 그려야죠.”

또 다른 판타지를 꿈꾸는 홍림의 변신이 기대된다.

▲ 그림= 홍림 화가

 

토요경제 /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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