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칼럼] 일본을 보라?

이정선 / 기사승인 : 2018-06-27 0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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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대한민국 경제는 이른바 ‘3저(低) 호황’을 만끽하고 있었다. 연간 경제성장률이 10%를 웃돌고 증권시장에서는 주식값이 치솟고 있었다. 월급쟁이들의 월급봉투도 두툼해지고 있었다. 만성적이던 경상수지 적자는 큰 폭의 흑자로 돌아섰고, 외국에서 들여온 빚보다 외국에 꿔준 돈이 더 많은 순(純)채권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수입 자유화를 확대하고 해외여행 규제를 완화하는 등 ‘흑자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러면서 중남미 국가를 우습게 여기기 시작했다.

어떤 장관의 경우는 “중남미 국가를 보라”고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과다한 외국 빚 때문에 고전하고 있었다.

21세기 들어서는 “일본을 보라”며 의기양양하기도 했다. 2012년 LG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일본 기업의 실패와 성공의 교훈’이라는 보고서다.

보고서는 일본의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 ‘6중고’를 꼽고 있었다. ▲엔고 ▲높은 법인세 ▲과도한 노동규제 ▲전력수급 불안 ▲자유무역협정 체결 지연 ▲지진 등이었다. 일본을 ‘반면교사’고 삼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에 대한 일본 내 평가’라는 보고서를 내고, 우리 기업의 3가지 강점과 일본 기업의 6가지 약점을 비교하기도 했다.

일본 기업은 ▲글로벌 전략 부재 ▲의사결정 구조의 경직성 ▲미흡한 설비투자 ▲연구개발 효율 저하 ▲글로벌 인재 부족 ▲비즈니스 인프라 취약 때문에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고 했다. 반면, 우리 기업은 ▲탁월한 선택과 강력한 집중 ▲신시장 창출 ▲현지화 전략 등 3가지 장점으로 세계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2014년 현대경제연구원은 ‘2015년 국내 10대 트렌드 10+1’이라는 보고서에서 2015년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3만8760달러로 일본의 3만9108달러에 근접하고, 2016년에는 3만9828달러로 늘어나 일본의 3만9669달러보다 많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일본을 보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최악의 ‘청년실업’으로 허덕이고 있는데, 일본은 되레 사람이 모자라는 ‘구인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의 도요타와 소니 등 246개 주요 기업의 올해 평균 임금인상률은 2.41%로 1998년 이후 20년만의 최고라고 했다. 물가상승률이 0.5%에 불과한데 임금은 그 4배나 오른 것이다.

‘대졸 신입 연봉 1000만 엔’을 내걸고 직원을 모집하는 기업이 이미 드물지 않다는 아사히신문 보도도 있었다. 연봉 1000만 엔이면 우리 돈으로 ‘억’이다. ‘억대 연봉 신입사원’까지 뽑고 있다는 보도였다.

다른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뽑아오면 보상금을 주는 기업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이를 ‘리퍼럴(referral) 채용’이라고 했다. 어떤 기업의 경우, 학자금 이자를 지원해주고 나서 입사하면 학자금 전액을 대신 갚아주는 제도를 도입했고, 또 어떤 기업은 집세를 보조해주는 혜택을 내걸고 있다. 젊은이들이 직장을 골라서 선택할 정도가 된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의 학력을 보유하고 있는 실업자가 지난달 현재 40만2000명에 달하고 있다. 전체 실업자 112만1000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5.8%나 되었다.

‘일자리 정부’가 무색해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 경제팀도 바뀌고 있다. “일본을 다시 보라”는 얘기를 누군가가 또 꺼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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