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경제=이정선 기자] ‘매천야록’에 나오는 얘기다.
“남인 최우형(崔遇亨)은 잇달아 청직(淸職)에 발탁되어 이조판서, 홍문관제학, 봉군 등의 요직을 거쳐 충훈부까지 관장하고 있었다. 그는 일찍 수레를 타고 북촌(北村)에 도착하여 코를 가리며, ‘노론의 냄새가 어찌 이리 고약한가’ 하였다.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노론이 살았다. 그 남쪽은 남촌이라고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당(三色黨)이 살고 있었다.”
‘매천야록’은 나라가 기울던 조선 말 기록이다. 당시 고위층에 있다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이랬다. 힘을 합쳐서 나라를 살려볼 생각은커녕, 당쟁을 일삼고 있었다. 아예 상대편의 냄새조차 싫다며 기피하고 있었다. 냄새가 싫어서인지 서로 사는 동네까지 달리하고 있었다.
사는 곳뿐 아니라, 옷차림도 달랐다. 노론은 저고리 깃과 섶을 둥글게 접었다. 소론은 모나게 접었다. 그 아내들의 옷차림도 남편을 따르고 있었다. 노론의 여자는 치마 주름을 굵게 했다. 소론의 여자는 치마 주름을 얇게 했다.
말투마저 달라서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왕래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랬으니,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딴 나라 사람이었다.
심지어는, 임금도 예외가 아니었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고종 임금은 스스로를 노론으로 자처하면서 신하들을 삼색(三色)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노론은 ‘친구’라고 부르고, 소론일 경우는 ‘저쪽’이라고 했다. 남인이나 북인의 경우에는 ‘그놈’이라고 지칭했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벌써부터 ‘딴 나라 현상’을 개탄하고 있었다.
“…하나가 갈려 둘이 되고, 둘이 갈려 넷이 되고, 넷이 갈려 또 여덟이 되었으며, 대대로 이어져 구름처럼 불어났다.… 길한 일, 흉한 일에 조문을 가면 다른 당파 사람과 내통한다고 비방하고, 혼인을 하게 되면 무리 지어 모여서 배척하고 공박한다. 언동과 의복까지 다르게 하기 때문에 길에서 만나도 뚜렷이 알아볼 수 있으니 풍속이 ‘딴 나라 사람’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왕통’을 이을 원자(元子)를 얻는 것은 나라의 경사였다. 원자가 태어나면 옥에 갇혀 있던 죄수를 풀어주고, 특별 과거를 베풀어서 경축했다.
숙종 임금은 어렵게 득남할 수 있었다. 첫 왕비 인경왕후와,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에게서는 아들을 얻을 수 없었다. ‘장희빈’을 만나고 나서야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당쟁은 임금의 득남을 경사로 여기지 않았다. 아이는 ‘남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태어나야 했다. 아이의 어머니가 남인이기 때문에 아이 역시 남인이어야 했다. 극심한 당쟁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까지 편을 가르고 있었다.
이 ‘편 가르기 유전자’가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듯싶어지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표된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설문 결과가 그랬다. 미혼남녀 361명을 대상으로 ‘연인의 정치성향’을 설문했더니, 남성 가운데 20.2%가 ‘정반대의 정치성향인 연인과는 결혼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는 ‘결혼 불가능’이라는 응답이 남성보다 높아서 36.8%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34.2%나 되었다. 34.7%의 여성은 연인이 정치성향을 강요할 경우 헤어진다고 응답하고 있었다. 결혼을 하려면 배우자가 될 사람의 정치성향까지 따져봐야 할 판이다.
하기는 그럴 만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과서’마저 정권에 따라 ‘좌향좌, 우향우’다. 그 바람에 아이들은 판단을 헷갈리고 있다. ‘결혼 적령기’가 되기 훨씬 전부터 편 가르기를 배우고 있는 셈이다.
정치판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언론은 또 어떤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진보언론, 보수언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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