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신화에서 많이 알려진 인물 가운데 나르키소스(Narcissus)가 있다.
아메이니아스라는 청년은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지만, 나르키소스는 아메이니아스에게 매정할뿐더러 칼을 선물하는 존재였다. 혼자 짝사랑에 마음 아파하던 아메이니아스는 나르키소스의 집 앞에서 칼로 자살을 한다. 그리고 보복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나르키소스가 짝사랑의 고통을 알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르키소스는 어느 날 연못에 비친 어떤 이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입맞춤을 하려 했으나 할 수 없었다. 사실 그 모습은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슬픔에 빠진 나르키소스는 짝사랑의 고통에 아메이니아스와 같이 자살한다.
이 나르키소스에서 ‘나르시시즘’이 유래했다. 자기 도취증이나 자기애(愛)를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대 그리스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사는 현대에도 나르키소스가 있다. 지금은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나르키소스와 같은 사람을 나르시시스트라고 부른다.
정신의학신문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의 결여를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자신의 우월감을 항상 강조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무모하고 미숙하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하기도 하고 극단적인 경우 상대방에 대한 조종이나 착취를 일삼는다고도 한다.
이 특징은 어째서인지 국내 부동산 시장, 특히 아파트 브랜드에서 비친다.
지난해 국내 주택 수는 총 1812만호로 이중 1400만호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었다. 전체 주택의 77.2%를 차지한다.
아파트에는 이전까지 ‘자아’가 없었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누가 만들어냈느냐에 따라 본격적으로 ‘브랜딩’ 되기 시작했다.
롯데건설의 롯데캐슬, 삼성물산의 삼성래미안, 대림산업(현 DL 이앤씨)의 e편한세상 등 아파트 브랜드는 연예인이 등장하는 TV 광고와 함께 소비자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후 아파트는 자신 만의 이름이 없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름이 너무 길어지고 영문사용이 빈번해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파트 작명법’이라는 유머글도 돈다.
‘더퍼스트’ 근처에 아무것도 없다, ‘센트럴’ 근처에 4차선 이상의 도로가 있다, ‘리버·레이크’ 근처에 강이나 호수가 있다, ‘오션뷰·마리나’ 근처에 바다가 있다. ‘파크·파크뷰’ 근처에 공원이 있다, ‘포레’ 근처에 산이 있다, ‘메트로’ 근처에 지하철이 있다, ‘에듀타운’ 근처에 학교가 있다, ‘시티’ 근처에 노후건물이 많다 등이다.
OO퍼스트포레라면 근처에 산 말고 아무것도 없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이름에만 힘이 들어간 것이 아니다.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 홍보자료에서는 베이(bay, 기둥과 기둥 사이 한 구획), 팬트리(Pantry, 식재료 보관 저장창고), LDK(거실, 식사공간, 주방 이어지는 설계) 구조 등 영어, 전문용어가 뒤섞여 있다.
또 커뮤니티센터는 어떠한가. 헬스장이라고 불리는 휘트니스 클럽은 기본이고 사우나, 골프 연습장, 수영장, 게스트하우스, 도서관, 문화 교실, 소극장, 최상층 스카이라운지까지 주거공간인지 호텔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완성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이쯤 되면 집인지 호텔인지 언젠가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다시 이야기 시작으로 돌아가서 일부 아파트와 ‘나르시시스트’의 공통점을 짚어야겠다.
예를 들어 OO‘포레’아파트는 4베이(bay)에 팬트리를 갖췄고 게스트하우스에 스카이라운지를 갖췄다. 아파트명과 스카이라운지는 과장된 평가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보여준다. 모든 것을 갖춘 아파트에 거주한다면 “나 OO포레에 살아~” 한마디만으로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 보여줄지도 모른다.
일부 아파트 사건들은 입주민들의 나르시시스트적인 면을 보여준다.
아파트 경비원에 “짖어봐”라고 말하는 갑질, 경비원을 폭행하는 갑질, 사고 위험을 이유로 시작됐으나 수년째 택배 차량을 거부하는 아파트 단지에서는 극단적인 자신의 주장관철, 상대방에 대한 조종이나 착취를 드러내 보여준다.
인간이 어디까지나 만유의 영장이 아닌 하나의 지구상의 종이라고 가정할 때, 우리 또한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나긴 힘들다.
집이 나와 우리의 편의와 상생을 위한 공간이 아닌 나와 너 우리 중에 누가 더 우월하고 누가 더 권력 있는 존재인가를 방증하는 데 쓰인다면 한국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아파트는 결코 집이 아닌 경쟁의 도구로 쓰이는 데 그치고 말 것이다.
큰 돈을 대출해 월 부담을 떠안으면서 지속적인 자산 증식을 위해 장만한 경쟁의 도구에서 아이들이며 그 가족들이 행복을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나르키소스는 자기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만 물에 빠져 죽어버렸다.
서울 중소형 아파트가 2년 새 45% 오르는 이 시점에 아파트 나르시시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토요경제 / 김자혜 기자 kjh@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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