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대비 3.3%감소 102.2...주요 34개국 중 가장 많아
팬데믹과 복합위기 여파...연체율 급상승세 '위험수위'
|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집을 비롯한 보유 자산을 다 팔아도 대출을 완전히 갚을 수 없는 가구수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작년10월 서울 인왕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와 주택 모습. <사진=연합뉴스제공> |
초긴축도 결국 가계부채의 위험을 막지 못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2년도 채 안돼 3%포인트가 급등하는 등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있으나, 올 1분기 기준 GDP대비 가계부채율이 여전히 주요 34개국 중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우리 경제의 가장 심각한 뇌관이란 지적에도 불구,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가계부채 문제가 대한민국 경제를 위협하며 중장기적으로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올들어 금융권의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그 심각성을 더해준다. 최근엔 금리 급등에 따른 여파로 가계대출의 고정이하여신(NPL·부실채권)비율이 올해말 0.33%로 1년새 두배 가까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제기된 상태다.
설상가상 초긴축 상황 속에서 기업부채는 1년 사이 더 늘고 있다. 증가 속도도 세계 4위에 오를 만큼 속도가 빨라졌다. 이에 따라 하반기 코로나 금융지원 등이 종료될 경우 부실대출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불거질 것으로 우려된다.
■ 소폭 하락 속 조사국중 유일하게 가계부채가 GDP 웃돌아
지난해 2분기 이후 통화당국이 금리를 대폭 인상하며 사상 초유의 초긴축 기조가 1년넘게 유지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주요 34개국중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부채(Global Debt)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세계 34개국(유로지역은 단일통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102.2%로 세계 1위를 고수했다.
우리나라의 GDP대비 가계부채율은 1년 전(105.5%)과 비교하면 3.3%포인트(p) 낮아진 것이다. 작년 1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0.7%p 낮아진데 이은 2년연속 감소세다. 하지만, 여전히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가계부채가 경제규모(GDP)를 웃도는 나라다.
우리나라를 제외하곤 모든 나라가 가계부채과 GDP보다는 적었다. 홍콩(95.1%)이 2위를 차지한 가운데 태국(85.7%), 영국(81.6%), 미국(73.0%), 말레이시아(66.1%), 일본(65.2%), 중국(63.6%), 유로 지역(55.8%), 싱가포르(48.2%) 등이 10위권을 형성했다.
가계부채율이 압도적 세계 1위임에도 전년동기대비 하락폭은 6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 비해 가계부채율 하락폭이 우리나라보다 큰 나라는 폴란드(5.8%p), 말레이시아(5.5%p), 싱가포르(4.6%p), 태국(4.3%p), 영국(3.7%p) 등이다.
기업부채는 날로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초긴축 기조 속에서도 부채비율은 오히려 더 불어났다. GDP 대비 한국 비(非)금융기업의 부채 비율은 1분기 현재 118.4%다. 기업부채가 GDP보다 12% 가까이 많다는 얘기다. 1년 사이 3.1%p(115.3→118.4%) 뛴 것이다.
■ '영끌족'과 대출로 연명하는 자영업자 급증이 주원인
우리나라의 GDP 대비 기업부채율은 홍콩(269.0%), 중국(163.7%), 싱가포르(126.0%)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특히 세계적 긴축 기조에도 아랑곳없이 지난 1년간 기업부채율이 거꾸로 높아진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주요 34개국중 단 10개국에 불과하다.
기업부채 증가 속도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빠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기업부채 비율 상승 폭(3.1%p)은 베트남(8.5%p·103.4→111.9%), 중국(7.8%p·155.9→163.7%), 칠레(5.6%p·96.7→102.3%)에 이어 34개국 가운데 4위다.
이처럼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기업의 부채율이 높은 이유는 문재인 정권 말기에 터진 코로나 팬데믹 당시 경기회복과 서민경제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기준금리를 0.50%까지 대폭 낮춘 때문으로 분석된다.
사실상의 제로금리에 빚내서 집과 주식을 사는 이른바 '영끌족'이 급증, 결과적으로 가계부채를 크게 늘리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작년 3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을 계기로 글로벌 복합위기도 한몫을 했다. 정부가 물가가 치솟자 대대적인 긴축에 나섰지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에 실질소득이 감소한 가계의 대출상환 능력이 떨어지며 통화 긴축의 효과를 거의 보지 못한 것이다.
특히 심각한 경기침체 여파로 생사의 기로에선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대출로 연명하는 사례가 늘어나 전체적인 GDP 대비 가계 부채율을 크게 낮추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부동산, 주식, 암호화폐 등 영끌족들의 자산 투자 과열 현상과 코로나 시국 아래서 경영난·생활고가 겹쳐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팽창한 가계부채를 단기에 정상 수준으로 끌어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 ▲2년간 긴축에도 한국의 가계 빚 여전히 GDP 대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사진은 고금리 상태를 보여주는 시중은행의 금리상항판. <사진=연합뉴스제공> |
■ NPL 2배 이상 늘듯..양적, 질적 가계부채 위험수위 넘어
문제는 가계부채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단기간에 금리인하 조치를 단행할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고금리에 따른 금융기관 전반의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칫하다간 신용불량자의 대량 양산이 금융기관과 정부의 부실로 연결되는 등 가계부채의 뇌관이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실제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가계부채 중에서도 자영업자와 영끌족의 부채 문제는 '시한폭탄’에 비유된다. 신용과 소득이 낮아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기 힘든 중·저소득자와 코로나19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은 자영업자·소상공인은 물론이고, 과도하게 빚을 내 투자한 영끌족의 다중채무(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것)가 최근 들어 급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지언 선임연구위원은 28일 내놓은 ‘국내은행 가계대출 리스크 예측’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금리 급등 여파로 가계와 기업의 NPL(부실채권) 비율이 올해말 0.33%로 1년새 두배 가까이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NPL이란 은행 총여신 가운데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금융연은 “국내은행 가계여신 중 NPL은 지난해 4분기 0.18%에서 올해말 0.33%까지 급상승하는 것으로 예측됐다”라며 “이를 금액으로 보면 국내은행 고정이하 가계여신이 지난해 말 1조7000억원에서 올해말 3조원 수준으로 급증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잔액은 한국은행의 가계신용기준(가계대출+카드 판매신용)으로 3월말 현재 1853조9천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4분기(1867조6천억원)보다 0.7%(13조7000억원) 줄었다. 지난해 4분기(-3조6000억원)에 이어 두 분기 연속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판매신용을 제외한 가계대출은 2010~2022년 중 연평균 6.8%로 급격하게 증가한 데다 GDP 대비 전체 가계부채 비율도 100%를 상회하고 NPL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등 양적, 질적인 면에서도 모두 위험한 상태다.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대부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 이하다.
| ▲지난 1월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계부채 위기 대응을 위한 개인 채무조정 제도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제공> |
■ 금융안정과 경제에 큰 걸림돌...리스크관리 만전 기해야
이같은 가계부채의 뇌관이 당장에 폭발하거나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매우 낮다. 무엇보다 금융권이 현재의 가계부채 수준을 흡수할만한 여력은 충분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하지만, 고강도의 긴축이 2년가까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가계와 기업부채울을 100% 이하로 끌어내리지 못하는 것은 향후 금융 안정은 물론 경제 성장 자체에도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경고메시지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 한은이 최근 1960∼2020년 39개국 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가계부채 증가가 GDP성장률과 경기침체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한 결과,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3년 누적)이 1%p 오르면 4∼5년 시차를 두고 GDP성장률(3년 누적)은 0.25∼0.28%p 떨어졌다.
즉, 가계의 빚이 늘어나면 3∼5년 시차를 두고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며, 특히 가계신용 비율이 80%를 넘는 경우에는 경기 침체 발생 확률이 더 높다는 의미이다. 권도근 한은 통화신용연구팀 차장은 "가계신용 비율이 100%를 초과해 가계부채가 거시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 효과가 더 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가계신용 비율을 80% 이하로 낮출 수 있도록 어떻게든 가계부채를 줄여나가는 정책적 노력이 지속족으로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창용 한은총재도 이와관련, "가계부채율을 80% 수준까지 낮추는 것은 중장기 과제"라며 "가계대출은 부동산 정책과도 관련이 있어 범정부적으로 가계부채율을 어떻게 낮추고 구조개선 어떻게 해야 할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문제는 결국 부실대출로 이어져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며 "가계부채의 뇌관이 폭발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거시변수에 대해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NPL비율 변화도 예의주시하는 한편 가계대출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토요경제 / 조봉환 기자 ceo@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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