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루가 놓인다. 먹을 간다. 붓에 묻힌다. 화선지에 점이 찍힌다. 고요함이 흐른다. 붓놀림이 조심스럽다. 화가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힌다.
한국화 화가 박효선(54)의 작업실 풍경이다. 한국화는 예전에 동양화라 불렸다. 박효선은 한국화를 사랑한다. 서양의 화려함 보다 한국의 은은함을 좋아한다. 타고난 한국인 성품이다.
박효선은 외고 출신이다. 공부를 잘했다. 부모의 기대가 컸다. 모친의 교육열이 높았다. 교사가 되길 원했다. 당연히 인문계열로 갈 줄 알았다. 누구인가 말했다. 인생은 뜻대로 안 된다고.
박효선은 다른 길을 걸었다. 우연한 기회였다. 고1 방학 때 미술학원에 갔다. 한 달간 다녔다. 학원 선생이 말했다.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미술에 빠져 들었다. 한국화에 관심이 쏠렸다. 틈틈이 한국화를 그렸다.
2학년 때 전국학생 미술대회 우수상을 받았다. 한국화로 입상했다. 20여회 공모전에 응모했다. 여러 차례 입상했다. 부모도 딸의 소질을 인정했다. 미술을 전공해도 좋다고 했다. 교사가 된다는 조건이었다.
![]() |
| ▲ 박효선 화가는 공간기억을 주제로 한지에 채색과 분채를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사진=박효선 화가> |
미대에 입학했다. 한국화를 전공했다. 대학원을 졸업했다. 중학교 교사가 됐다. 부모의 뜻을 이뤄냈다. 2년간 근무했다.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퇴직했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서다. 시간강사 6년을 했다. 지루한 시간을 견뎌냈다. 교수 발령이 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일이 꼬였다. 교수 임용이 안 됐다.
가르침에 위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04년 안양평생교육원강단에 섰다. 지금까지 계속 강의를 하고 있다. 대학 강단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낀다.
교육과정은 1학기에 4개월이다. 수강생은 선착순 100명이다. 수강신청 경쟁이 치열하다. 여러 강좌가 개설돼 있다. 수강생도 여러 분야에 근무한다. 시청직원 교사 주부 구순의 할아버지 등 다양하다.
지금까지 배출된 수강생은 헤아릴 수 없다. 거의 2만명 정도는 된다고 한다. 안양에서는 유명인사다. 길을 걷다 보면 인사받기 바쁘다.
박효선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자신은 한국화 전도사라고 말한다. 우리의 전통을 살리는 초석이라고 밝힌다.
“예전에는 일반인들이 한국화를 몰랐어요. 서양화에 비해 덜 알려졌죠. 불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어려운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들 합니다. 이제 체계가 잡힌 거죠. 많은 수강생이 큰 힘이 됩니다.”(박효선)
박효선은 한국화 퇴보에 안타까워한다. 대학에 한국화과가 없어지는 현실에 한 숨 짓는다. 최근 들어 지방대 한국화과가 없어진다고 알려준다.
박효선은 이런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드리려 한다. 오히려 자신의 할 일이 많아졌다고 웃음을 보인다. 한국화 저변확대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힌다. 일반인들의 한국화에 대한 열정이 커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박효선은 한국화 저변 확대에 각 지자체가 힘을 쏟아줬으면 한다. 안양시의 지원 정도만 해줘도 한국화 저변 확대에 큰 힘이 될 거라 진단한다.
“한국화는 스며드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보일 듯 안 보일 듯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노후에 무언가 하고 싶다면 한국화를 배워 보세요.”(박효선)
한국화 전도사를 자부하는 박효선. 그녀는 한국화의 매력을 말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토요경제 / 김병윤 기자 bykim7161@hanmail.net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