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봉환 토요경제신문 발행인 |
서울대 교수를 지낸 고(故) 피천득 선생의 <인연(因緣)>이라는 수필집에 “보기에 따라서는”이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선생의 친구는 영어를 잘해 광복 이후 미군정의 적산(敵産)관리처에서 일했다고 한다. 친구는 맘만 먹으면 큰 것을 손에 넣을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친구는 몇 달이 지나도 셋방살이를 면하지 못했고 그나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불편한 일을 더는 볼 수 없었다 것이 친구의 항변이었다.
‘적산불하(귀속재산불하)’란 광복 후 일본이 놓고 간 여러 재산을 미 군정이 압수, 한국 국민에게 나눠준 것을 말한다. 이때 나눠준 기업을 적산기업이라 한다. 당시 적산불하 대상이 되었던 일본인 소유 공장은 총 6881개였다. 자본금 기준으로만 따지면 한국 전체 법인의 약 91%에 달했다.
물론 적산기업을 아무렇게나 나눠주지는 않았다. 해당 기업의 주주나 5년 이상 근속자 등 기업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자에게 우선적으로 기회가 주어졌다. 가격은 말 그대로 횡재 수준이었다. 계약금만 걸면 잔금은 최대 15년 동안 장기분할 할 수 있었다.
당시 인플레이션까지 고려하면 말 그대로 “줍는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이권이나 비리가 그치지 않았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당시에 적산기업 불하는 특혜이자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미 군정기와 이승만 정부 당시 불하된 기업 가운데 약 50여개는 아직도 존속하고 있다. 몇몇은 명실상부한 대기업으로 크게 성장했다. SK는 선경직물공장 공무과 견습기사에서 출발한 고(故) 최종건 회장이 불하받아 선경(SK)그룹의 모태가 됐다.
조선화약공판에서 다이너마이트생산계장으로 일하던 고(故) 김종희가 불하받은 화약 공판은 한화그룹의 모태가 됐다. 오노다 시멘트 삼척공장은 고(故) 이양구에게 불하돼 동양그룹의 모태가 됐고,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고(故) 이병철에게 불하돼 신세계백화점이 됐다.
소화기린 맥주는 당시 관리인이었던 고(故) 박두병이 불하받아 OB맥주가 되어 두산그룹의 모태가 됐고, 삿포로 맥주는 명성황후의 인척이었던 고(故) 민덕기가 불하받아 조선맥주(현 하이트진로)가 됐다.
말하자면 현대, 삼성, SK, 한화, 두산, 동양, 쌍용, 동국제강, 해태, 벽산, 대한전선, 조선맥주, 국제그룹 등과 같은 대한민국 기업사에 획을 그은 대기업의 상당수가 적산기업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적산기업은 일본이 가져가지 못한 것을 대상으로 했지만, 그 본질은 일제가 수탈한 국민의 피와 땀이었다.
이런 혜택은 박정희 정권의 산업개발기 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에 걸쳐 국가의 성장을 위한 당위성이란 이름으로 제공됐다. IMF 시기인 김대중 정부 시절엔 많은 IT 또는 벤처기업들이 수혜의 기회를 얻었다.
물론 이 기업들의 성공이 모두 당시 주어진 특혜나 기회라고 단정할 순 없다. 상당 부분은 그들의 치열한 노력과 혁신의 결과일 것이다. 다만, 그들의 도전에 힘이 되었던 특혜나 기회들은 국민 다수의 희생이나 힘이 모아져 제공된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그런 기업이 더 큰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논리는 큰 비약이라 볼 수 없다. 물론 오늘날의 기업활동에는 이미 이익 추구 이외에도 공적·사회적 역할론이 하나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 또 많은 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2022년 한해가 마무리하는 시점에 되짚어보는 것은 이들의 나눔 방식이 형식적으로만 비대 해지거나 이벤트 성 스포트라이트를 위한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연말이면 쏟아지는 이들의 공적활동에 대한 보도는 여러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토요경제 / 조봉환 기자 ceo@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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