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HD현대, H&L 1.2조 증자 추진…NCC 110만t 멈춘 뒤 승부는 원가

임종호 기자 / 기사승인 : 2026-09-04 20:43:34
  • -
  • +
  • 인쇄
4일 통합법인 공식 출범…국내 NCC 감축 목표 30~40% 담당
LDPE·EVA 5년간 가격·공급 제한…가격보다 가동률·원료비 절감이 관건
롯데 대산 차입금 1.62조 이관·HD현대케미칼 2025년 영업손실 4303억
▲ [롯데케미칼]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석유화학 설비를 줄이면서 통합법인에 1조2000억원의 자본을 추가 투입한다. 그러나 H&L어드밴스드가 수익성을 회복할 핵심 수단은 가격 인상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부 주요 제품에 5년간 가격·공급 제한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남은 설비의 가동률을 높이고 정유공정과 원료를 연결해 생산비를 어떻게 낮추는지가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 1호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HD현대케미칼과 롯데대산석화를 합친 H&L어드밴스드는 4일 충남 서산 대산공장에서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법인은 지난 1일 합병과 사명 변경 절차를 마쳤다. 조남수·천양식 공동대표가 회사를 이끌며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지분을 각각 50% 보유한다.

이번 통합은 지난 2월 23일 정부가 승인한 ‘대산 1호 프로젝트’의 결과다. 양사는 각각 6000억원씩 모두 1조2000억원의 증자를 추진한다. H&L어드밴스드는 사업재편 기간인 향후 3년 동안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의 연산 110만t 규모 나프타분해시설을 가동하지 않고 수익성이 낮은 범용 다운스트림 설비도 줄인다.

110만t은 정부가 제시한 국내 NCC 감축 목표 270만~370만t의 약 30~40%다. 첫 통합법인 한 곳이 전체 감축 목표의 3분의 1가량을 맡는 셈이다. 다만 승인안은 설비 철거나 영구 폐쇄가 아니라 3년간 가동중단이다. 감축 효과가 사업재편 기간 이후에도 이어질지는 후속 처리 방안에 달렸다.

1조2000억원은 생산능력을 늘리는 일반적인 성장투자와 성격이 다르다. 통합 전 양측 사업이 안고 있던 손실과 차입 부담을 낮추고 설비 재편을 실행하기 위한 자기자본에 가깝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6월 대산사업을 물적분할하면서 자산 2조2147억원과 부채 2조1077억원을 롯데대산석화로 넘겼다. 이관된 순자산은 약 1070억원이었으며 차입금은 단기차입금과 유동성장기차입금, 장기차입금을 합쳐 1조6212억원에 달했다. 분할 전 계획치보다 자산과 자본이 늘었지만 높은 차입 의존도는 그대로 남았다.

HD현대케미칼도 재무여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회사는 2025년 매출 7조2201억원을 올렸지만 영업손실 4303억원과 순손실 4831억원을 기록했다. 2026년 1분기에는 영업이익 49억원으로 흑자 전환했으나 순손실은 507억원이었다. 3월 말 총차입금은 약 4조4357억원, 부채비율은 494.3%였다.

따라서 이번 증자는 두 적자 사업을 합쳐 외형을 키우는 자금이 아니다. 통합법인이 차입금을 감당하면서 설비 중단과 공정 통합, 제품 전환을 진행할 시간을 확보하는 재무완충장치다.

정부가 2조1000억원 이상의 지원 패키지를 마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이를 현금 보조금으로 보면 안 된다. 채권금융기관의 신규 대출이 최대 1조원이고 기존 대출의 영구채 전환이 최대 1조원이다. 여기에 세금 감면과 인허가 간소화, 전기·열·LNG·원료비 절감, 기술개발 지원을 합친 구조다.

금융지원은 자금 압박을 늦출 수 있지만 부채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신규 대출에는 이자가 붙고 영구채도 발행 조건에 따라 금융비용이 발생한다. H&L어드밴스드가 자체 현금흐름을 만들지 못하면 정부 지원은 구조개선보다 만기 연장에 머물 수 있다.

수익성 회복의 첫 번째 조건은 설비 가동률이다.

석유화학 공장은 고정비 비중이 높다. 수요보다 많은 설비를 낮은 가동률로 돌리면 생산량이 줄어도 감가상각비와 인건비, 유지비 부담은 계속된다. 롯데 NCC 110만t을 멈추고 남은 설비에 생산량을 집중하면 톤당 고정비를 낮출 수 있다. 정부도 설비 감축을 통해 공급과잉을 완화하고 잔여 설비의 가동률을 높이는 것을 사업재편의 핵심 효과로 제시했다.

두 번째 조건은 원료비다.

H&L어드밴스드는 HD현대오일뱅크의 정유공정과 석유화학 생산을 연결할 수 있다. 정유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석유화학 원료로 투입하고 정제마진과 나프타 스프레드에 따라 정유·화학 생산량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HD현대케미칼의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설비는 탈황중질유와 부생가스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정유 부산물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한국신용평가도 이 구조가 일반적인 나프타 기반 설비보다 원가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이 원가 우위는 현재 업황에서 특히 중요하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2022년 이후 중국의 대규모 생산능력 확대와 범용제품 자급률 상승으로 수익성이 약화됐다. 중동발 공급 차질과 재고평가 효과로 올해 초 실적이 일시적으로 개선됐지만 주요 제품 스프레드는 5월 이후 전쟁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중국의 증설 기조도 뚜렷하게 바뀌지 않았다.

H&L어드밴스드가 가격 인상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어렵다.

공정위는 지난달 20일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저밀도폴리에틸렌과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에 5년간 시정조치를 부과했다. 두 제품의 국내 판매가격은 수출가격 변동률과 연동해야 한다. 수출가격이 오를 때 국내 가격을 더 큰 폭으로 올릴 수 없고, 수출가격이 떨어지면 국내 가격도 정해진 범위 이상 내려야 한다. 제품 공급 유지와 경쟁민감정보 교환 금지 의무도 붙었다.

제한은 H&L어드밴스드의 모든 제품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LDPE와 EVA에 한정된다. 그러나 해당 제품에서 시장 사업자가 줄어드는 만큼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격을 이용해 이익을 빠르게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통합법인은 가격보다 생산비와 제품구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세 번째 조건은 고부가 제품 전환이다.

H&L어드밴스드는 범용제품 비중을 줄이고 전선·케이블용 고기능 소재와 이차전지 전해액용 유기용매, 바이오 나프타 기반 친환경 제품 등을 확대할 계획이다. 에탄 원료 도입도 추진한다. 정부는 이런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기술개발 자금 260억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설비를 멈추는 것보다 고부가 제품을 이익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더 어렵다. 제품 개발 뒤 고객 인증과 장기 공급계약을 확보해야 하고 중국 업체가 따라오기 어려운 기술 초격차도 유지해야 한다. 범용제품에서 줄어든 매출을 고부가 제품이 제때 대체하지 못하면 증자 자금은 차입금과 영업손실을 메우는 데 소진될 수 있다.

50대50 공동경영도 점검할 부분이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가 자금과 원료·판매망을 함께 활용할 수 있지만 추가 감산이나 투자처럼 이해관계가 갈릴 수 있는 사안에서는 의사결정이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공동대표 체제가 실제 통합 속도를 높이는지 지켜봐야 한다.

H&L어드밴스드의 성적표는 출범식이나 110만t 가동중단만으로 나오지 않는다. 정부는 사업재편 기간이 끝난 뒤 통합법인의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서고 부채비율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는 전망이지 확정된 성과는 아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지표는 남은 설비의 가동률과 톤당 제조원가, 영업현금흐름, 순차입금, 고부가 제품 매출 비중이다. 이 숫자가 개선돼야 1조2000억원 증자가 구조조정 자금에서 성장 자본으로 바뀐다.

H&L어드밴스드가 4일 공식 출범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계획에서 실행 단계로 넘어갔다. 설비 110만t을 멈추는 것은 출발점이다. 가격에 의존하지 않고 원가와 제품구조를 바꿔 다시 현금을 만들어내는지가 대산 1호의 최종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토요경제 / 임종호 기자 yimjongho1969@gmail.com 

 

[저작권자ⓒ 토요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임종호 기자
임종호 기자 안녕하세요. 토요경제 임종호 편집국장입니다. 경제·산업의 주요 이슈를 깊이 있게 해설하겠습니다. 기자 페이지
뉴스댓글 >

많이 본 기사

HEADLINE

연중캠페인

토요경제 [로드인 포토로그]

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