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로 12년째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행사의 정체성마저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영화제를 찾아온 세계 영화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음악가를 홀대하는 결례를 범했다.
‘시네마천국’, ‘미션’등을 작곡한 영화음악가 엔리오 모리코네(79)는 자신의 첫 내한공연 기간에 열린 부산영화제 참석을 스스로 결정했다. 80에 가까운 노장이 한국의 영화인들을 만나보겠다는 일념으로 스케줄을 조정했다.
하지만 5일 비가 내리는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는 거장에 대한 예우가 없었다. 고령의 모리코네는 통역도 없이 복도에서 서성였고, 레드카펫에서는 빨리 걸어가라고 재촉 받기까지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영화 480여편을 작업한 전설적인 영화음악가가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때 개막식 레드카펫에서는 이제 막 영화 한 두 편에 출연한 신인 여배우들이 노출 의상으로 카메라 세례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특정 연예기획업체가 ‘얼굴 알리기’차원에서 내보낸 여자연기자가 대부분이었다.
모리코네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아카데미상은 일반 통역사에게 통역을 맡기는 것은 거장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 아카데미 감독상을 2회 수상한 또 다른 거물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통역자로 불렀다. 그에게서 모리코네의 이름이 불려지자 스코시즈, 디캐프리오를 비롯한 영화계의 별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분간 기립박수를 보냈다.
부산영화제에 진행요원은 모리코네를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모리코네는 의전에 불만을 표하며 개막파티에 불참했고 그대로 부산을 떠나 출국했다.
모리코네가 영화제 VIP 룸에도 들어가지 못했다는 주장도 뒤늦게 나왔다. 당시 VIP 룸은 정치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영화인도 아닌 이들을 VIP룸으로 모시면서 거장을 복도로 내쫓은 '국제' 영화제다.
모리코네를 몰라보고 질질 끌고 간 진행요원도 그의 음악은 들어봤다. 팬들이 환호한 스타들 가운데 상당수는 몇년만 지나도 잊혀진다. 모리코네의 음악은 그들의 자녀, 손자까지도 모두 들으며 영혼의 울림을 얻을 것이다.
모리코네는 현역이다. 아직도 지구촌을 누비며 연간 6~7편 이상의 영화에 관여하며 국제영화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슈퍼스타다.
부산영화제 기획 초기, 각국 영화제를 쫓아다니며 ‘발품팔이’홍보를 했던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렸다. 모리코네에 대한 문전박대 소식이 해외로 알려진다면 누구도 다시는 부산영화제를 찾아오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김 집행위원장이 이탈리아로 달려가 모리코네에게 사과해야 할 정도의 국제적 결례라는 지적이다.
<왼쪽 사진>은 영화제 개막식에서 비를 맞으며 굳은 표정으로 걷고 있는 모리코네, <오른쪽>은 개막파티에서 김동호 집행위원장과 함께 모리코네의 핸드프린팅을 들고 선 허남식 부산시장. 모리코네는 개막파티에 참석하지 않았다. (부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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