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스턴은 2002년 알츠하이머 투병 사실을 공개했다. 2005년부터 병세가 극도로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부터 최근까지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부인과 1남1녀 등 유족은 “사랑과 기도, 지지를 보내준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팬들에게 감사한다”며 “헤스턴은 누구보다도 가족과 일, 그리고 조국에 헌신적인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생전에 자신은 아주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며, 두 사람 몫을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고 전했다.
일리노이에서 태어난 고인은 10세 때 부모가 이혼하는 아픔을 겪는다. 뉴타이어 고교 진학 후 탁월한 연기 실력을 드러내며 노스웨스턴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다. 이어 대학 동창생 리디아 마리 클라크와 1944년 결혼한다. 같은해 미국 공군에 입대, 2년간 복무한다. 전역 후 아내와 함께 모델로 잠시 일한다.
연극배우를 꿈꾸던 헤스턴에게 1948년 브로드웨이 연극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조연 제의가 온다. 이를 시작으로 ‘멕베스’, ‘줄리어스 시저’등의 연극 무대에 서게 된다. TV로도 진출, 1950년대 인기 드라마인 CBS ‘원’등에 출연하며 성공을 맛본다.
영화 데뷔작은 1950년 ‘다크 시티’다. 1952년 ‘지상 최대의 쇼’로 비로소 영화배우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후 ‘잉카의 비밀’(1954), ‘10계’(1956),‘빅 컨트리’(1958), ‘악의 손길(1958)’등을 거쳐 ‘벤허’(1959)로 스타덤을 굳힌다. ‘벤허’는 남우주연상을 포함, 그해 아카데미 11개 부문상을 휩쓴다.
대형 서사영화에서 주로 위대한 영웅을 연기한 헤스턴은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에 반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다. 인권운동도 활발히 했다. 1970년대에는 환경보호 메시지가 담긴 영화 ‘오메가 맨’(1971), ‘소일런트 그린’(1973) 등에 출연했다.
다만,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총기협회장을 맡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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