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의 행복 조건… “사회에 환원하라”

토요경제 / 기사승인 : 2010-06-21 09: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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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삶? 그러나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무엇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바로 ‘경제력’에서 그 한계점을 찾는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자니 바로 돈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어보고 싶지만 그러자면 돈벌이를 포기해야 한다. 돈벌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쓸 돈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보지 못한다든가, 돈이 없어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기도 한다. 돈벌이가 없이는 마음에 드는 미남 미녀를 만나 결혼하기도 어렵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돈은 필수불가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들이 돈이나 돈벌이에 목매여 사는 것은 지극히 통상적이고 정상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돈은 과연 행복을 보장하는 수단일까. 얼마나 한 돈이 있어야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여기에 이르면 답은 간단치 않은 듯하다. 어느 정도까지는 돈이 많을수록 행복감도 높아지지만 그 적당치를 넘어서면서는 돈이 오히려 부담이 되기 시작하고 심지어 행복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돈은 진실을 가리고 정의를 곡해하기도 한다.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는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부자인 워런 버핏의 정신적 멘토다. 돈을 벌기 시작한 경력이나 생물학적 나이로는 버핏이 선배지만, 워런 버핏에게 ‘돈 걱정 없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이츠가 가르쳐준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누며 살라’는 것이었다. 게이츠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긴 대화를 나눈 뒤 버핏은 게이츠에게 많은 돈을 맡겼다. 빌 게이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사회사업 재단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그늘진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벌써 10년 전에 아내와 자신의 이름을 딴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만들어 개발도상국가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보건사업과 교육사업 등을 지원해왔다. 2006년 빌 게이츠의 나누는 삶을 목격한 워런 버핏은 그 즉시 자신의 전재산 460억 달러의 거의 전부를 이 재단에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비로소 돈만 보고 달려온 자기 인생이 행복의 비결을 찾아냈다는 것을 느꼈다. 워런 버핏은 이 비결을 미국내 다른 부자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워런 버핏이 앞장서서 벌이고 있는 사회환원운동은 이제 미국 내 갑부 서열 400위 이내의 부자들에게 공동 화두가 되었다. 두 사람의 주선으로 지난해 뉴욕에서 열린 400대 재벌 대상의 자선파티는 석유재벌 록펠러가의 대표자가 공식 호스트였다. 여기에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과 오프라 윈프리도 참석했다. 이후 억만장자들의 모임은 공식적인 것만도 두 차례 이상 이어졌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의 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 모임이 추진하고 있는 사회환원 모금 대상액은 6천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천국 가는 방법을 설파하던 예수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따라다녔다. 그들은 배고팠고 헐벗었고 그래서 불행했다. 그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죽어 천국에 가는 길 밖에 없어보였다. 천국 가는 방법에 귀를 기울이며 따라다니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먹고 살만한 부자들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넉넉하게 살아서 행복을 누릴 뿐 아니라 죽어서도 천국에 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국 가는 방법을 엿듣기 위하여 부자들도 예수의 설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예수는 말했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그 말은 이 땅에서 잘 살든지 저승 가서 잘 살든지 택일하는 길 밖에 없다는 말처럼 가혹하게 들렸다.
그런데 오늘 미국 최고의 부자들이 부의 사회 환원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말은 부자들에게도 천국 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최고부자들의 기부가 전통처럼 전해오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각종 사회문화 사업의 대다수가 연방정부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개인 기부자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카네기 홀, 록펠러 재단, 귀에 익은 이름들의 대다수가 기부자들 개인의 이름이다. 이들은 평생에 번 돈을 사회에 내놓음으로 해서 사회에 도움 되는 이름으로 남았다. 사실 그들 개인을 위해서도 손해는 아니다. 자신의 명예는 물론 자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물려준 이름만으로도 어느 가문의 후예라는 영예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상속세까지 교묘히 속여가며 현금으로 재산을 물려주려 애쓰는 한국 재벌들의 행태는 비할 바가 아니다. 사회에 지탄받을 짓을 하고나서 명예회복용으로 마지못해 내놓은 면피성 기부 같은 것도 천박하기만 하다. 언제쯤 실속과 명예를 함께 물려주는, 지혜로운 조상의 길을 깨달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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